임진왜란 직전에 조선의 조정 대신이 꿈을 꿨다. "커다란 나무가 폭풍에 쓰러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그 쓰러지는 나무를 등으로 버티고 있는 이가 있으니 이순신이라고 하였다." 그 시간에 일본의 전국을 통일한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조선과 중국을 아우르고 동남아까지 진출할 수 있는 대망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살기 위한 자와 가지기 위한 자의 투쟁이 시작되고 살기 위한 자의 저항이 가지기 위한 자의 욕망을 이겨낸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 또 얼마후 가지기 위한 자는 쓰러지고 기다리던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갔다. 고독한 성웅 이순신장군과 토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꾸가와 이예야쓰 세사람의 이야기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것에 너무 큰 가치를 두고 있는듯 하다. 그리고 욕망이 사회를 움직이는 동인(動引)이 된다고 말한다. 가진 자로부터 가지지 않은 자까지 모두 욕망의 정당성을 부르짖는다. 때로는 사회발전을 위해 촉진시키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욕망이 가져다 주는 효용은 필요가 가져다 주는 효용만 못하다. 의무감을 가진자의 노력은 성취감을 가진자의 노력을 이긴다. 살고자 하는 자는 배부르고자 하는 자를 이긴다. 그런데 기다리는 자는 더구나 '인생은 무거운 등딱지를 짊어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거북이와 같이 걸어 간 자는 이겼는지 졌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것을 가진다.
이순신 장군이 더 슬프고 고독해 보이는 것은 도구가와 이예야쓰의 존재 때문인듯 하다.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큰 빚을 졌다. 그런데 그 보다 이순신 장군을 더 고독하고 슬프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그렇게 힘들여 막아놓은 땅에서 서로를 이기고자 하는 아귀다툼이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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