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프롬(1900~1980)은 한 사회의 경험은 특정무의식적인 내용이 의식화되는것을 사회적인 여과장치로 거르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적인 여과장치는 이데올로기속에 숨겨져 위험한 또는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사상에 대한 사회적인 억압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에리히프롬은 이런 사회적인 억압을 도피하기 위한 메커니즘으로 권위주의, 파괴성, 자동화기계라는 사회심리학적 개념을 이야기 한다.
권위주의는 인간이 자아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타인을 지배하거나 복종하는 관계가 되어 사회적인 고독감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용도로 발휘된다고 한다. 파괴성은 자신과 비교가 가능한 대상을 제거할려고 발휘되며, 개인이 자동화기계로서 역할을 하며 타인과의 갈등을 소멸시키고 고독감으로부터 보호받을려고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이념적인 정치사건들을 보면서 이념을 대체시킬 정신적 해방구의 필요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권력과 권위,지배 이런 단어들이 제시하는 관점으로부터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다. 조선왕조의 봉건적인 지배복종관계, 일제시대의 억압적인 통치, 연이은 권위주의 정부형태등으로 인해 시민의 자발적인 주체성이나 독립적인 사회정신을 함양하는 기회를 갖지 못한 탓인것 같다.
에리히프롬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랑의 기술'을 제안하며 사람들이 자신에게 '진실된 마음'을 쏟을것을 제안하고 있다. 에리히프롬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자신을 희생시키는 극단적인 형태도 아니며 자신에게 살아있는것을 전해주며 서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는 가운데 사회가 풍요로울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는 격렬하다. 억압을 하거나 반발한다. 이기거나 진다. 동지가 되거나 적이 된다. 희생을 하거나 착취한다. 지배하거나 지배당한다.살거나 죽는다.
사실 한국의 격렬한 사회심리상태는 어떤 정신적인 도움도 받지 못했던것 같다. 억압하는 자는 격렬하게 비난받고, 맞선자는 영웅이 되며 사회정신을 이끌고 있었던것 같다. 종교는 사회정신의 부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억압수단이 되기도 한다. 수고스럽더라도 자신이 중요하다는것을 인식하는 길만이 해방구로 나아가는 길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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