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 성격에서 경이로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자리에 있어도 그 상황과 동조를 잘하는 성향이 있다.아마 어린시절부터 안정된 가정환경을 모르고 자라서 그렇기도 하고, 성장을 해서는 개인적인 상황으로 어쩔수 없이 이일 저일을 산만하게 손을댄 습관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시절, 신자확보에 급급했던 어느 종교단체에 몇개월 앉아 있었다. 딱히 편한 시절도 아니었기에 신앙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평안함을 비롯한 여러가지 부가적인 수입을 탐하는 계산이 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몇개월동안 지극히 일체감을 가지고 종교인 이상의 신앙인으로 탈바꿈을 하는것 같았는데, 도무지 해당 종교인분의 설교 내용에는 공감이 안갔다. 초조해진 종교인분은 '순종'하라고 소리높혀 외쳤지만 순종이 안되는 상황을 낸들 어찌하냐고 함께 소리높혀 외치고나서 그만 두었다. 다음에 또 방문하니 맞지 않으면 오지 말지 왜 오냐고 또 소리높혀 외쳤다. 비용편익계산을 해보고는 시간이 많이 아까웠다.
다른 종교, 다른 종교인과의 관계에서도 '순종'을 권유받는 일이 있었는데, 다소 어려운 환경에서 이성이 강해진탓인지 신앙과는 별개로 종교인들에게 찰떡같이 순종하는 양이 되주지 못한것에 대해서 다소 죄송스럽기도 한것 같다. 문제는 내가 아니고 많은 신자들의 공허한 눈빛인것 같았다.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구하는 사람들,그래서 동조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면서도 구하고자 하는 삶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던것 같다. 한 편으로는 정신적인 권력관계를 엿본 까닭도 있는것 같다.
이념이나 종교같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허구성에 깊이 반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과거의 경험들이 바탕이 된것 같은데, 인과의 법칙은 콩심은데 콩난다는 말처럼 진리인듯 하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솔로몬 애쉬(1907~1996)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반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타인을 따르려는 성향이 있는데,이것을 동조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의견이나 행동, 심지어는 표정, 자세,목소리까지도 따라할려는 성향이 생기는데 이를 카멜레온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때로는 이념이나 종교의 내부에서 유난히 결집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동조현상은 집단의 결집이 강할수록 심해지며 반발자가 생기면 급속히 와해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애쉬는 동조의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첫째는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서 타인의 결정이 쉽게 참고 된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다수와 의견이 다를경우 집단으로부터 배척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1933~1984)은 복종에 관한 실험을 했는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신과 사회규범에 어긋날지라도 권위있는 인물의 명령에 복종하는 이유는 자신의 책임도 없어질뿐더러 자신의 행위에대한 결과보다는 복종관계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만약에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위자의 합법성이나 동기에 허점이 보이거나 누군가 복종하지 않는것을 보면 복종행위는 훨씬 줄어든다고 한다.
솔로몬 애쉬와 스탠리 밀그램의 연구결과를 보면 일본의 군국주의와 독일의 홀로코스트처럼 왜 사람들이 집단으로 엄청난 비윤리적이고 비 인간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지 이해를 할수 있을것 같다.
실제로 이념과 종교는 동조와 복종을 본질로 하는것 같다. 실제로 동조와 복종을 이루고 난 다음에 목표가 변질될 경우 많은 폐해를 발생할 수 있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일들이 이념과 종교같은 선량한 목적으로 탄생해서 동조와 복종을 이끌어낸 다음에 변질되어간 관념들의 부작용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하겠다.
주체적이고 스스로의 자아를 확립시킬 역사적 기회가 부족했거나 잘못된 교육으로 정신이 재산이나 명예,권력같은 저열한 가치에 지배를 받게된다면 동조와 복종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바탕이 되기도 하는것같다. 정치인은 이념을 이용하고, 종교인은 신앙을 이용하여 동조와 복종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주체적이거나 반대하는 소수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거나 사회붕괴나 갈등의 수단으로 사용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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