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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9일 월요일

무신정변 / 안정성과 발전지향성의 대결


1170년 고려 의종때 일어났던 무신정변은 중국 송나라의 문치주의(文治主義)의 영향을 받은 고려 귀족사회의 문제점을 시정하려고 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것 같다. 한국현대사에서도 비숫한 일이 발생했지만 문민사회가 장기화 되던지 무인집권이 장기화 되던지 편향적인 문제점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것이 옳다고 극단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문제인것 같다.

대체로 유목민족에게는 외부투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민사회라는것이 존재할수가 없었고, 문인들은 무인들이 국가를 건설하고 안정화 시키는 기간에 국치(國治) 의 보조자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안정된 농경사회에서는 외부투쟁보다는 내부의 안정과 지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안정된 시스템속에서 문민이 우월한 상태를 약속할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듯 하다.

문민의 우월함을 표현하자면 지혜, 안정등을 말할 수 있겠고, 무인의 우월함을 표현하자면 개척, 변화등을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문제점이라면 서로 우월함의 반대를 표현하면 될것 같은데, 어느 상황이던지 서로 양극적인 분류로 몰고가는 한국사회의 특성은 언제든지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열정을 내포하고 있는것 같다.

이념문제등도 깊게 생각해보면 문민적인 상상력이 내면의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고, 무인적인 성향들이 실천을 앞장서는 분업을 달성하고 있는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말과 글이 난무하여 현실을 왜곡시키는 현상을 무척 싫어하곤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전에 무인적인 억압과 수직사회를 싫어했던적이 있어서 장기화된 사회흐름의 성향을 마음으로 담아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회는 어떨까. 한국사회는 지정학적인 입지조건과 남북대치상황등이 문민정치의 잇점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태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무인집권의 반민주성등을 역사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문민성향의 문제점을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문제의 근본을 살펴보면 문민우월이냐, 무인집권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면에는 안정성과 발전지향성의 대결이 잠재해 있는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번성,과학자나 기술자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 매스컴의 지나친 대중성, 직업선택에 있어서 지나친 안정화 경향등은 문민사회적 폐단을 보여주는것 같다.

냉전논리에 휘말려 분배의 문제를 주장하기 힘든것처럼 행복의 정의에 휘말려 사회가 정체되는 현상도 시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무신정변의 이면에는 사회정체성(社會停滯性)에 대한 반란의 모습을 비중있게 내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아날로그적 선(善)과 디지털 악(惡)


지난 정부초기에 나의 디지털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특수임무수행자가족의 입장에서 더 이상 이념의 피해자가 되지는 말아야한다는 생각에 이념문제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모습이 새로 들어서는 정부를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했던것 같다. 집권초부터 이념을 이용하고, 특수임무수행자를 최대한 이용을 해서 반대편에 위협감을 주는 '도구'로 이용했던 점은 지금도 마음을 안좋게 만든다.

이 문제에 대해서 특수임무수행자가족보다도 당사자분들이 더 느끼는 바가 많았으리라고 생각하며, 내 문제에만 국한해서 생각을 해봐도 내 전화나 컴퓨터가 패킷도청(스니핑 : sniffing)당하는 상황은 별천지를 느끼게 하였다. 하필이면 새벽에 사격훈련을 시작하면서 정상회담만 있으면 경기용공기총을 모두 영치시키는 정부의 포퍼먼스도 시간적으로 일치되어 나갔는데, 평범하고 선량한 개인이 시스템을 틀어쥔 악인앞에 얼마나 하잘것없이 무력한지를 느끼기도 하였다.

더 기가 막힌것은 정권의 정신적인 배후에 부패한 종교인사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면서,'어디 한 번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가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결과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것 같다. 문제가 깊어질때가 되서야 블러그상으로나마 문제를 거론하는 무기력하고 왜소한 내 자신을 느끼기도 하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섭리를 확신하기도 한것 같다.

이념과 종교의 부작용이 한반도의 고질적인 병폐라는 생각은 개인적으로나 거국적으로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문제인것 같다. 특히 북한의 비극은 역사적으로 최악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때로는 그 둘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놓고 투쟁을 벌여 사회전체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옳고 그른것을 판단하는 힘은 아날로그적이다. 인간의 본심에서 우러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 디지털화 되다보니 악인의 역할도 디지털화되어간다. 가끔 북한 사이버부대의 관심을 유도해서 반주체사상과 같은 탈이데올로기의 씨앗을 뿌릴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인간성의 교류가 디지털세계를 통해서 얼마나 작용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국가의 에너지가 꺾인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지난 정부가 실정(失政)을 안했으면 개인적으로 콩심은데 콩나지 않는다는 모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런지도 의문이다. 정치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정신의 실상이라는 말이 실감이 되기도 한다.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갈매기 날다

         갈매기 날다
                                        이형춘


  갈매기 두 마리가 파도위를 날았다
  태풍이 가고 태양이 타오르던 새벽
  음산한 바람소리 속으로 한 마리가 사라졌다

  날아도 날아도 끝없는 하늘
  날아도 날아도  망망한 바다

  뜨고지는 태양처럼 날아서
  바람처럼 날아서
  숙명처럼 날아서.........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선수용스케이트와 연습용스케이트


선수용클랩스케이트는 부츠를 카본 몰드로 떠서 바이킹사나 메이플사의 특수합금으로 만든 클랩날을 붙여서 한 세트에 200만원정도 한다. 달러로 환산해도 2000달러 가까이 하는 고가의 제품이다.

저번에 '북한의 스케이트'란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북한으로서는 한국인들에게 4000만원이라는 값어치에 버금가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되기때문에 북한의 스케이트선수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이 된다.

어제 선수들이 내놓은 내발에 딱 맞는 중고클랩을 빙상장 구내 스케이트샵에서 발견했다. 엣지가 90퍼센트 이상이 남아있는 바이킹블레이드를 부착한 카본부츠세트를 50만원에 내놓았다.신어보고 곰곰히 생각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고, 그 중에서 스케이트인데 이 정도 호사는 부려도 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집에 오래된 바이킹클랩이 한 켤레 있는데, 워낙 오래 된거라서 스프링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전시만 해놓은 상태다. 샵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오래된 바이킹클랩이라도 네덜란드에서 스프링을 수입해 올 수 있다고 한다.


스프링이 끊어지면 고치기도 힘들고, 손질하기도 귀찮고, 장비에 지나치게 관심갖는게 싫어서 계속 연습용만 신었는데, 스프링을 구할 수 있다니 집에 묵혀놓은 클랩을 신고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샵 사장님에게 좋은 정보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샵 사장님은 80만원짜리 바이킹블레이드를 판매할 가능성과 선수가 맡겨놓은 50만원짜리 중고 클랩 스케이트를 판매할 가능성을 놓쳐버리고 만것 같다.

사실 연습용스케이트를 신고서도 펄펄 날아다니는 청춘이지만 모든 스포츠매니아들이 그렇듯이 장비에 대한 지름신이 강림해서 접신할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혹 좋은 장비에 대한 주위분들의 권유가 있으면 스케이트장에서는 사격이 주 종목이라고 말하고, 사격장에서는 주로 스케이트를 탄다고 말하는 얕은 지혜도 부려본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선수가 아닌바에야 '빠르기'보다는 자세나 균형감각으로 '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연습용스케이트의 불편함이 모두 사라졌다. 혹시나 샵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200만원짜리 선수용클랩과 15만원짜리 연습용스케이트의 판매수익성을 생각하신다면 장기적으로 연습용스케이트를 신고 부담없이 얼음판을 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선수용스케이트의 판매수익성도 창출되리라는 생각이다.

샵에서 신어 본 선수용클랩의 발에 밀착하는 감각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가 선수용스케이트의 '유효수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국정원 / 이웃집 앨리스


국정원의 정치개입문제로 혼란한 시국에 기독교계가 국정원정치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대통령은 기독교계의 원로들을 초청하여 국민통합에 힘써줄것을 당부했다. 같은 정당에서 비롯된 지난정부와 현정부의 연계성을 인정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국정원만 개혁했으면 좋겠는데, 좋지않은 상황으로 사태가 물려들어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국기문란으로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지난 정부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현정부까지 확대되어 한국경제나 사회분위기가 장기침체로 자리잡을까봐 우려되기도 한다. 사실 지난정부의 국기문란과 사회분열의 주범중의 하나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일부 인사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하고 상식적인 신자들과 부패한 지도층의 대립적인 구도는 기독교계에서도 예외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은 개인적으로 뱀보다 싫어했던 지난 정부의 비릿한 사회분열적 행태에 대한 또 한번의 궁시렁거림이었고, 국정원의 경직된 정보활동과 관련해서 이웃나라 미국의 앨리스라는 해병대 소령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현대의 첩보기관들은 공통적으로 산업사회의 조직구조인 관료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가 없어서 관료주의의 경직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상원의원의 정보특위 위원장이었던 배리골드워터 상원의원은 "적어도 금세기의 가장 훌륭한 장기적인 판단은 개인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반면에 최악의 판단은 첩보관료기구를 기반으로 한 정치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져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 호머리라는 군사작가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리도 절고, 몸도 약했으며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한 불평등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중국혁명과정에서 손문의 측근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가 쓴 [무지의 용기]와 [색슨의 시대]라는 작품은 일본의 육군이 필리핀 해안 어느곳을 선택해서 상륙할것인지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곧 잊혀졌다가 이름난 여성극작가였던 한 클레어 부스루스에 의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리말고도 영국의 풀러 육군소장과 리델하트대위, 프랑스의 드골같은 인물도 장래의 기계화전을 예측했는데 공통적으로 조직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유연한'사고의 소유자라고 한다.

1921년 미국 해병대소령이었던 앨리스는 호머리의 상상력을 발전시켜 거대한 분량의 작전계획서를 해병대사령관인 레준소장에게 제출하였다, 이 계획서는 2차세계대전때 미국의 상륙작전에서 큰 가치를 발휘했다고 한다. 앨리스는 신경증과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다 죽은 신경증환자였는데, 한 편으로는 천재의 자유분방한 사고력을 가진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 해병대조직이 애드호크라시와 같이 수평화된 면모가 있었기 때문에 레준소장은 앨리스의 가치있는 정보를 쉽게 반영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만약 지금처럼 거대화된 관료조직이었다면 비공식적인 정보로 폐기처분되었을지 모르는 사실이다.

호국과 안보를 위하여 애써주기를 기다렸지만 엉뚱한 일을 해버린 관료화된 국정원을 생각하는 국민의 모습이 24년동안이나 앨리스를 만날 기회를 기다렸는데, 리무진을 타고 떠나간 이웃집앨리스를 황당하게 바라본다는 스모키의 노래속의 주인공과 같다는 억지스러운 생각을 해보았다. 제목을 재미있게 만들려니.......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국정원 / 기계적 정보기관


국민의 기본권침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국정원의 정보활동방식에는 크게 개혁해야할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런 면은 한국의 국정원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CIA도 크게 지적당한 적이 있는 사실이다.

이란의 팔레비왕정의 붕괴때 프랑스정보부가 예측된 정보를 CIA에 제공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정보부의 분석을 받아들인다는것은 1954년에 CIA작전국의 공작으로 모사테크를 몰아내고 팔레비를 왕정에 복귀시킨 비밀공작을 뿌리채 부정해야하는 상황이 된다. 결국 이런 선례와 연결된 '정치적'고려를 하다가 팔레비왕정의 붕괴를 못막은 것은 물론이며, 테해란주재 미국대사관이 점령당하고 대사관원이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당한 사실이 있다.

한국의 국정원의 '이념적인 정치적 고려'는 유연한 소통과 정보수집에 많은 방해가 되고 있는것 같다. 미리 설정한 사고의 영역속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구속을 받고 있는것 같다. 국정원의 관료조직적인 성격 또한 유연한 정보활동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것 같다.  정치공작에 관해서는 국정원보다는 민간 조직을 사용했던 전 정부가 한 수 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콩심은데 콩나는 결과를 보는게 순리지만 의도했던 성과는 챙긴것으로 생각된다.

생각을 해보건데 좀 힘들기는 하지만 중립지대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분석하면 훨씬 좋은 결론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냉전시대 미국의 CIA와 소련의 KGB가 냉전논리와 비밀주의에 빠져서 기계적인 기술분야를 제외하고는 존재의 가치를 못얻었다고 하는데, 한국의 국정원이 그 덫에 걸려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시오니즘을 파괴할려고 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정보기관이 되었지만, 한국의 국정원은 대북정보력이나 대공정보력으로 입지를 좁힌것도 모자라 다수의 국민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하고 있는 자세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기계적 정보활동으로 인해 수집한 정보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2차세계대전중에  루즈벨트대통령은 정보부의 보고는 때때로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에 대통령은 모순되는 추측은 무시하고 직감에 따라 업무를 보아야 했다고 한다. 처칠 수상도 1941년에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지 않을것이라는 정보부의 일관된 견해를 반대로 해석해서 스탈린에게 경고했지만 스탈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기계적인 영국정보기관의 능력과 처칠의 열려있는 형이상학적 센스의 능력이 잘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어느 조직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공공기관의 민원컴퓨터에 내 블러그를 막아놓은 행태를 보고 궁시렁거려봤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목표를 확실히하고 세계를 상대로 해야할 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귀태 / 이쁘게 말하고 이쁘게 듣기


언젠가 지난 정부의 배경을 합쳐서 '요물'이라고 표현했다가 지운적이 있다. 문제는 '요물'이 틀림없어도 그 말을 뱉으므로서 그들과 같은 세계속에 편입이 되는, 환언해서 말하면 같은 '요물'의 세계에 편입이 되어버려 '요물'의 이미지를 나도 뒤집어쓰는  불상사가 생길것 같아서였다.

때로는 주장하는 말이 맞아도 듣는 사람들의 감성을 어떻게 자극하느냐에 따라서 말을 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귀태'라는 단어가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좀 자극적인 면이 있는것 같다.

대선전에 박근혜후보와 이정희후보의 공방전에서 설령 이정희후보의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감정적 호응을 못얻었던 이치와 비숫한 경우라는 생각이든다. 아직 젊은 이정희후보로서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교적 보수성이 강한 중년이상의 세대들에게 삭막한 자극을 준것 같다.

'귀태'라는 발언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단어선택과 감성의 문제,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바탕에 깔려있는 스스로를 향한 인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서 자신들을 향한 질타적인 단어인줄 미리 설정하고 받아들인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양편이 다 잘못한것 같다. 이쁜 말을 사용하지 못한 쪽과 미리 겁먹은 쪽이 모두 잘못이다. 요즘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버렸는데, 저런 상황들을 많이 본 탓도 있는것 같다. 

2013년 7월 14일 일요일

정의를 향한 비판적 합리주의


중세시대 아더왕은 영국과 프랑스, 스칸다니비아,로마를 정복하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뛰어난 인물들이 그의 주변에 모였다. 왕은 그들에게 자리다툼이 일어나지 않고, 공정한 토의가 보장되도록 원형의 탁자에 둘러앉아 문제를 논의하도록 했는데, 오늘날 의회의 모습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경험한 사실을 귀납적으로 규명하는 빈학파의 논리실증적 탐구방법에 반대하여 영국철학자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1994)는 '반증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뉴우튼의 이론이 아인쉬타인의 이론에 의해서 반증되고, 아인쉬타인은 스스로의 이론을 반증하면서 결론을 끌어내는 연구방법을 추구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과학이 객관적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진정한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토의, 또는 깊은 고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검증과 발전을 추구하는 동적(動的)인 모습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념과 종교의 지배가 좋지 않은 이유는 토론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은 '발전'이던가 적어도 '과거로의 회귀는 아닐것' 같은데 한반도에서는 이 두 관념적인 지배가 현실의 모순을 핑계삼아 끊임없이 사회발전을 붙잡고 늘어지는 문제가 심각한것 같다

장마와 도시의 홍수


비행기를 타고 한국의 산하를 내려다 보면 산과 산 사이에 인간 삶의 흔적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국토의 70퍼센트 이상이 산이고, 그 사이에 인가와 도로가 밀도있게 박혀있는 형국이다. 산맥의 정상부분인 분수계(비가 오면 물을 양쪽으로 가르는 부분)와 분수계 사이가 좁아서 유역면적이 좁다. 비가 많이 오면 계곡에서 물난리가 나는것 처럼 지표면이 물을 흡수해주지 못하고, 계곡사이를 내리달린다.

한국의 산하는 계곡과 같아서 물난리가 나기 쉽다. 게다가 콘크리트 구조물과 도로포장으로 인하여 도시에서는 더욱 비를 흡수할 지표면이 부족하다. 도시의 급류는 예전보다 더욱 심해지는것 같다. 골프장등의 개발로 인하여 물을 가두는 기능을 하는 삼림이 소실되는것도 홍수가 심해지는 원인이 된다.

몇일 폭우로 강원도 춘천에서는 물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댐으로 가두어 놓은 호수가 폭우로 범람하면서 시내개천을 역류한듯 하다. 댐을 방류하면 좋겠지만 하류에서 물난리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두어놓은 물이 상류의 도시에 피해를 입힌 꼴이 되었다. 서울의 상류하천인 중랑천도 자주 범람을 하는데 하천이 직강화 되고 유역이 포장되어 한꺼번에 하천으로 물이 쓸려가는데 원인이 있다.

장마는 한국의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한랭다습한 오오츠크해 기단과 남동쪽에서 올라오는 온난다습한 북태평양기단이 만나 장마전선을 형성하면서 생긴다. 북태평양 기단이 점차 강화되면서 아래로부터 북상을 하면서 비를 뿌리는데,오오츠크해 기단이 강하면 장마가 남부지방에 머물면서 북상을 하지않고, 대신 중부지방에는 냉해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2013년 7월 11일 목요일

경제성장의 바탕은 신뢰와 활력


몇년전 직장을 얻기 위해 어느 나이 어린 인사담당자랑 인터뷰를 하였다.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인사담당자는 "돈이란 열심히 일하면 당연히 들어오는겁니다."하면서 인생선배가 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었다. 빙그레 웃으면서 좋은 말씀이라서 새겨듣겠다고 한지 몇년후에 알고 있는 사실도 모른척하는 습관이 발각이나서 서로 어색한 처지가 되었다.

아마도 그 인사담당자는 하는 일에 실패하고 의욕없이 이곳 저곳 흘러 다니는 내 모습이 회사에 마이너스요소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듯 싶다. 아이쉬타인은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 노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노동자란 사회에서 무기력함으로 일탈한 존재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것을 알았으면 표현을 달리 했을 것이다.

자꾸 지난 정부를 비판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4대강 감사결과도 나오고, 생각난 김에 하고 싶은 말은 해야겠기에 또 궁시렁거려본다.

내가 만났던 지지자들 대부분이 경제를 살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투표를 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을 잘 살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투표를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이면에는 '좌파'대통령으로 여겨지는 그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내포된 이념적인 성향도 있을 것이고, 검증되지 않은 경제업적에 세뇌 되어버린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성향도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건데 기본적으로 생산이 증대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경제가 살아나고, 부가 증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아했다. 더구나 종교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국정을 관리하는 모습도 아니다 싶었고, 개인적으로는 이념을 특히 나의 부친과 관련된 어떤 분들을 개인적인 정치권력을 얻는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에 심히 분노를 느꼈는데, 그걸 아는지 전화고 컴퓨터고 엉망진창이 된 상황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색다른 신세계를 경험한것 같다. 물론 스케이트 실력이 최고가 된 이익이 없는것도 아니다.

경제문제나 국민 생활수준 문제는 이념하고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하는 곳에서 부(富)를 찾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어야 하고, 한편으로는 남과 비교해서 가질 수 있는 부(富)란  국가전체적인 입장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지도자가 나만 잘 살게 해주겠는가'를 생각했으면 어리석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나이어린 인사담당자의 말은 진리인것 같다. 경제적인 부는 권모술수로 생기는것도 아니고, 신뢰와 활력에 바탕을 둔 근로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고, 그러한 근로는 개인적인 부의 증대와 국가전체의 부의 증대로 확산된다는 생각이다.  

2013년 7월 8일 월요일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


한국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의 표어이다. 표어가 무색하게 음지에서 음지를 지향하다가 비판의 대상이 되곤한다. 국정원의 미숙하고 편협한 업무행태는 여러번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것 같다. 오랫동안 외부소통이 힘들었던 관료조직의 특성상, 정치현실이나 국민감정에 부응하지 못한 문제가 자주 논란거리가 된다.

대통령은 국정원이 자발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불통의 조직이 된 국정원이 이미 외부감독이 불가능한 정치적 태스크포스조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섬찟한 느낌이 든다.  대북정보력이나 대외정보력이 손상되서는 절대 안되지만은 제한된 조직의 힘을 대내 정치공작에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업무능력을 상실하고 외부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독선적으로 운영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잘은 모르지만 첩보와 공작의 기본은 소통에서 시작되는거라는 생각이드는데, 소통을 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조직의 능력문제지 현실적인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구성원들의 절반을 적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의 화살은 언제 누구에게 쏘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국정원광고를 보면 섬찟한 생각이 들때가 있다. '좌익사범 신고'에 관한 광고인데 과연 국정원에 고발해야하는 '좌익'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내 스스로에게 질문했던적이 있다. 북유럽이나 캐나다식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북한정부의 이념적 국가관리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하는 내 자신은 '좌익'인지 '우익'인지 모를 일이다. 단지 국가나 정부가 지켜야 할 근본가치에 대해서 비판하는 문제는 적성행위(敵性行爲)가 아닌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 지향해야 할 양지는 어디에 있을까.

정부의 성실성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현재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기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볼테르보다도 집정관의 누구보다도 재능이 있는 누군가가 있다. 그것은 민중이다. 민중, 모든 사람의 이해에 관련된 투쟁이다. 발을 들여놓고 또 적어도 그것을 고집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더우기 현재에는 모든 정치상의 과오는 위험한 것이다.

1821년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이 귀족원에서 출판물 검열제도의 존속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 내용의 일부이다. 그러나 탈레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열법은 의회를 통과 하였다. 백성의 행복이 모든 진리의 궁극에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탈레랑은 '민중의 소리는 신(神)의 소리라고 한다.

국정원의 양지는 우파가 아니라 한국민인것 같다. 아주 작은 힘으로나마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할려는 개인도 있는데, 국록(國祿)을 받는 국정원은 왜 그리 어설픈지 모르겠다.

2013년 7월 5일 금요일

남도부(하준수) / 불의가 불의를 낳다.


남도부는 1921년 함양산이다. 공수도 고단자로서 전일본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그는 일본군 징집을 피해 지리산에서 '보광당'이란 독립군단체를, 부호였던 하씨집안의 가세(家勢)를 기반으로 이끌었다. 해방이 되자 이승만 전대통령의 경호대장역할을 하였는데, 친일파들이 득세하자 환멸을 느껴서 월북하게 된다.

남도부는 월북하여 오진우가 교장으로 있던 대남공작원 교육기관이자 인민군 장교교육기관인 강동정치학원에서 유격전을 교육시키다가 육이오 발발이후 인민군 유격부대 사단장으로 동부전선으로 남침을 하게 된다. 전세가 남한측의 우세로 기울자 대구 팔공산에 고립되어 빨치산활동을 하다가 부하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사형당하였다.

남도부의 일생은 한국역사의 왜곡된 단면을 보여주곤 하는데, 사상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독립군출신 경호대장으로서 친일파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이념적으로 변성(變性)되어 가는 과정을 겪은 대표적인 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리산의 경험과 개인적인 무골(武骨)성향으로 꽤 우수한 무장(武將)의 역할을 했는데, 체포되고 나서 국군쪽에서는 그의 재능을 아까워 해서 사형을 막을려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자유진영쪽에서 항상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공산주의의 인간을 경시하는 급진적인 유물사관은 남도부의 부하였던 인민군 소위 지춘란에 대한 사형집행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데, 이념앞에 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한것 같다.

대구 팔공산에서의 공작이 실패하자 책임추궁과정에서 남도부 사령관은 홍만식이라는 부관을 불러 첫임무가 실패로 돌아갔을때 실패한 동무에게 어떤 처벌을 내리게 되냐고 물었다. 홍만식은 생매장이라고 대답했고, 지춘란 소위는 파랗게 질렸다. 곧 남도부 사령관의 간이 군사재판이 열렸고, 마적단과 팔로군에서 총을 메고 10대시절을 보낸 지춘란 소위는 잘못을 인정하였다. 

사형은 집행되지 않고, 번복되어 지춘란소위에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는데,친일파와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려 인민군의 선봉에 섰던 남도부나 핍박받는 한민족의 운명을 몸소 체험하면서 이념투쟁앞에 생사의 갈림길에 수없이 서야하는 지춘란 소위의 운명이나 비숫하다고 할 수 있겠다.    


2013년 7월 3일 수요일

스노든과 미국식대통령제


미국정부의 개인정보수집문제를 폭로한 스노든이 모스크바공항의 환승구역에서 지내며 망명할 곳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확히는 망명할 곳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유럽각국이 강력한 국가인 미국의 위세에 눌려서 스노든을 감싸주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망명자에게 미국은 인권을 내세우며 도움을 주었던 적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가해자가 된 미국정부를 피해 망명하고자 하는 스노든에게 망명이 쉽지 않은 일은 아이러니 하다고 하겠다.

원래 대통령은 단어 그대로 크게 통치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다른 국가의 정치체제로 사용될때는 피치 못하게 강력한 집권적인 체제로 변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의원내각제적인 요소와 결합되지 않고서는 운영하기 힘든 문제가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별 문제가 없이 운영되어 온 바탕에는 연방제로 운영되는 미국의 각 주정부의 반독립성과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숙련된 시민의식, 그리고 정확하게 운영되는 3권분립에 힘입은 바 있는것 같다.

베트남전쟁때 있었던 반전운동은 미국내의 젊은 시민들을 정치적인 희생물로 삼는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국민감정에 확연히 와닿는 명분이 있었기에 나름 이적행위로 여겨지지 않은듯 하다.,

하지만 스노든은 아주 곤란한 문제에 있는것 같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강한나라의, 그것도 강력한 대통령제 정부를 가진 미국정부에 의해서 간첩행위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감청이나 도청, 또는 정보관련 문제는 음성적이라서 시민들에게 크게 공감을 주기 힘들다.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미국은 똑똑한 3%의 엘리트들과 다수의 낙천적이고 단순한 국민들로 구성된 국가라는 점이다.

정보관련 문제는 교육받은 국민이 많은 한국과는 달리 '민주주의'나 '정의'라는 기본적인 국민윤리와는 쉽게 접목되어 인식이 되지 않는것 같다.

어느 날 대학졸업까지 하고, 많은 공부를 했던 지인이 도감청문제는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질적인 손해나 상해, 폭력같이 구체적으로 겪는 피해가 아닌 사상의 자유 또는 사생활 보호의자유 같은 것은 보호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로 들렸는데, 한국에서 법학을 배운 대졸자가 그 정도니 미국 시민들의 스노든에 대한 호의적 반응은 안드로메다에 있다고 봐도 될것 같다.

스노든은 혼자서 지구전체와 싸워야 하는 외계인이 된듯 하다.

한국인의 변화와 경제정책


경제나 재정정책에 있어서 케인즈의 큰 정부론과 프리드먼의 작은 정부론은 좌파정책과 우파정책이라는 표면화된 이념대립으로 나타나게 되고, 급기야는 우적논리(友敵論理)로까지 비약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뭐 한국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것은 내내 섭섭하다.

케인즈의 큰 정부 경제정책론의 문제점을 먼저 보여준 나라는 최초로 '임상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영국이었다. 영국병은 심각하여 복지정책으로 인한 근로의욕상실문제는 두고 두고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는 쪽의 실증의 예가 되어 왔는데, 한국에서 성장하면서 한국민들의 인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함께 느끼면서 살아온 나는 어느 정도의 변화를 눈치채게 되었다.

항상 평범한 선거권자이면서 경제의 먹이사슬계층(이렇게 표현하면 가혹한 면이 있지만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부분이라는 표현이다.)의 최하층을 수평이동하는 나 자신에게는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누구보다 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제시스템이라는게 제대로 갖추어지지도 않아서 가난과 문맹이 만연하던 시절부터 국민들이 생각하는 삶의 이상적인 형태는 어땠을까. 티브이에 나오는 서양식 이층집에서 자가용을 타고서 출근하고, 재벌과의 결혼, 복잡한 사생활등을 세뇌받고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이루어줄 '돈'이 일을 하지 않고서 얻어낼 수 있다면 근로의욕이라는게 생길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부모세대 모든 분들의 소망 중 하나가 '일 안하고 편하게 살아봤으면'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때가 있었다, 근로의 현장에서 일하는 방법 외에는 어떤 지식이나 술책도 가지지 않은 천진한 동료들이 임금을 떼어먹히고 대형굴뚝에 올라가서 자살시도를 하면서 저녁뉴스의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집에 석달째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하니 징기스칸의 후손인 젊고 강한 이국의 처자가 아이를 데리고 몰래 도망간 일을 보며, 이건 좌파와 우파의 일도 아니고, 그냥 근로의욕을 꺾는 막막한 사건들이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고민했던 일도 있다.

어떤 지인은 10년을 법공부를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가지고 있는 법률지식을 이용하여 어둠의 세계를 방황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는데,정작 근로현장을 직접 목격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해갔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모든 분야가 합심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근로의욕을 북돋울려고 노력을 하는 결과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듯 하다. 근로의 댓가가 어느 정도 보장받을 만큼 변한 사회, 단순히 생계를 넘어서 자아실현까지 생각하는 높아진 교육수준, 링컨대통령의 말처럼 '노동은 모든 덕의 근원' 이라는 사실이 만연되어 있는 사회에서 복지정책이 문제를 일으킬 것 같지는 않다.

지금은 케인즈의 경제정책이나 프리드먼의 경제정책중 어느 것이 딱히 옳다고 할 수 없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한국에서만은 노동환경이나 복지정책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이념적인 편향성으로 오해받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퇴락한 정치나 경제 엘리트들의 일탈문제나 강성노조의 지나친 집단이기주의 같은 문제는 이념과는 다른 공리(共利)를 가르치지 않은 교육의 문제라는 측면에 무게를 두어야 하고, 국가는 근로 자체에 삶의 보람과 행복을 부여하도록 돕는다면 많은 문제들이 치유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에피스테메(episteme)와 독사(doxa)


철학용어인 에피스테메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으로서 감성에 바탕을 둔 억견(臆見: doxa)과 상대되는 '참의 지식'을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상상속의 이상향의 세계와 구별(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이야기 하였다.

19세기 중반까지 과학의 세계는 존재론(Ontology)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는데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라는 프랑스철학자는 과학의 창조적이고 역사형성적인 성격을 정립시켰다. 말하자면 그 이전까지 과학이란 중세부터 내려오는 신학적인 목적이나 규범의 내부에서 타성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임에 반해서 과학이란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능력이 있음을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 

종교적 관념이 많은 문제를 보이던 시기에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뉴우튼을 시작으로 과학이 역사의 헤게모니를 잡기 시작하면서 과학을 바라보는 인식론까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종교적 관념과 대립되는 이념인 마르크시즘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여 오랫동안 관념론으로 변성(變性)을 거듭하면서 인류사회에 큰 해악을 끼쳤던 사건도 이때쯤 시작이 되었다.

인간의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을 포함하는 과학의 세계와 이념이나 종교같은 doxa에 가까운 맹목적인 관념세계의 문제는 철학의 범주를 넘어서 현실의 곳곳에서 고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이념이나 종교로 어지러운 한국의 현실로 볼때 에피스테메보다는 독사(doxa)가 지배하게된 배경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원래 에피스테메가 지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시스템속의 안정적인 내면을 가진 인간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주체적이고 이성적이며 강력한 인간 내면은 안정된 환경이나 적어도 내적 단련을 통해서 안정화 시킨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사고의 유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위협을 받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 사회에너지의 헛점 속으로 독사(doxa)가 스며들어 지배하게 되는데, 옛부터 이를 '혹세무민'이라는 표현으로 경계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북한의 '지옥과 같은 국가건설'이나 한국의'국기문란'의 주범이 되는 경우를 본다.

구구절절이 철학적인 표현이라서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어려운 사회일수록 이념이나 종교가 혼란을 주게되고, 그 혼란으로 인해서 흔들리는 사회는 더욱 이념이나 종교에 포섭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구성원들이 게으르거나 마음이 어지러울때는 더욱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이성적이고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들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교육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7월 1일 월요일

국가 트라우마와 전이


10여년전 베스트셀러였던 '칼의 노래(김훈)'라는 이순신장군에 관한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한 나라를 책임지며 왜적과 임금을 함께 상대하는 고독한 무장(武將)으로서 이순신장군의 고뇌의 심정을 느끼기도 하고, 임진왜란으로 고통을 겪는 피폐한 조선백성들의 참상이 생생히 느껴지기도 하였다.

김훈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후각적인 감각에 많이 의존을 해서 저술했는데, 임진년의 전장이 백성들의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로 인식이 되어 한참 비위가 상해 있었던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트라우마를 입은것 같다.

나의 부모는 육이오 이념전쟁의 최 일선에서 고통을 받았는데, 그 날 이후 있었던 부모의 모든 결점들은 사건의 처참함이나 중대성으로 미루어 보아 충분히 이해되고 남음이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 자신은 지금도 부모를 충분히 이해하고, 마음 아파하곤 했는데, "우리나라에 나같은 사람이 한 둘이냐?"하는 모친의 이야기는 모든 한국인들의 고민을 대변해 주고 있는것 같았다.

Trauma란 후유증이되어 정신이나 육체에 영향을 주는 마음의 상처를 즉 정신적인 외상이다.  Transference란 성장기 동안에 자신과 밀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했던 느낌, 사고, 행동 유형이 현재 맺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전치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건데 "체제의 위엄을 손상 시킨다"고 엄포를 놓은 북한의 모습이나 레드오션적인 야박한 대내 경쟁상태에 몰입하는 한국의  모습에서 지나간 역사를 떠 올리는것은 나 또한 잊혀지지 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지, 아니면 끝나지 않은 문제를 사회에 전이 시키는 상처입은 마음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사는 있었던 사실이고, 국민들은 잊고 있었던듯 하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북한이나 한국에서 이념적 태도나 지역감정, 내부경쟁등의 습관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