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용어인 에피스테메는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지식으로서 감성에 바탕을 둔 억견(臆見: doxa)과 상대되는 '참의 지식'을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상상속의 이상향의 세계와 구별(대립)되는 개념으로서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을 이야기 하였다.
19세기 중반까지 과학의 세계는 존재론(Ontology)에 의해 지배받고 있었는데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라는 프랑스철학자는 과학의 창조적이고 역사형성적인 성격을 정립시켰다. 말하자면 그 이전까지 과학이란 중세부터 내려오는 신학적인 목적이나 규범의 내부에서 타성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임에 반해서 과학이란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능력이 있음을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
종교적 관념이 많은 문제를 보이던 시기에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뉴우튼을 시작으로 과학이 역사의 헤게모니를 잡기 시작하면서 과학을 바라보는 인식론까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종교적 관념과 대립되는 이념인 마르크시즘이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탄생하여 오랫동안 관념론으로 변성(變性)을 거듭하면서 인류사회에 큰 해악을 끼쳤던 사건도 이때쯤 시작이 되었다.
인간의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지식을 포함하는 과학의 세계와 이념이나 종교같은 doxa에 가까운 맹목적인 관념세계의 문제는 철학의 범주를 넘어서 현실의 곳곳에서 고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이념이나 종교로 어지러운 한국의 현실로 볼때 에피스테메보다는 독사(doxa)가 지배하게된 배경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원래 에피스테메가 지배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시스템속의 안정적인 내면을 가진 인간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주체적이고 이성적이며 강력한 인간 내면은 안정된 환경이나 적어도 내적 단련을 통해서 안정화 시킨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사고의 유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위협을 받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 사회에너지의 헛점 속으로 독사(doxa)가 스며들어 지배하게 되는데, 옛부터 이를 '혹세무민'이라는 표현으로 경계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도 북한의 '지옥과 같은 국가건설'이나 한국의'국기문란'의 주범이 되는 경우를 본다.
구구절절이 철학적인 표현이라서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어려운 사회일수록 이념이나 종교가 혼란을 주게되고, 그 혼란으로 인해서 흔들리는 사회는 더욱 이념이나 종교에 포섭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구성원들이 게으르거나 마음이 어지러울때는 더욱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이성적이고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들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교육시스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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