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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7일 일요일

학문의 부작용

학문에 지나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나태다. 그것을 지나치게 장식용에 쓰는 것은 허세다. 하나에서 열까지 학문의 법칙으로 판단하는 것은 학자의 버릇이다. 학문은 천품을 완성하고 경험에 의하여 그 자체가 완성된다. - 중략 - 그리고 학문이 경험에 의하여 한정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는 거기에 제시되는 방향이 너무 막연하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사람은 그것을 숭배하고,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한다. 즉 학문의 용도는 그 자체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떠난, 학문을 초월한 관찰로써 얻어지는 지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 -

학문적인 사고가 현실적인 합리성이랑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높은 학위와 전문적 지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사고가 결여되어 있거나 도덕적인 인성이 결여된 문제가 있어서 '일'을 할수 있는 지위에 들어서는데 많은 난관을 겪게되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독일의 작가 헤르만헤세의 소설[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보다 더 독하게 살아남은 수많은 한국의 한스들이 이끌어 가는 남한의 현실이나, 마르크스라는 학자가 만든 이론이나 그것을 개조한 주체사상이라는 이론에 발목잡힌 북한이 국민들의 시간과 인력을 비생산적인 사상학습에 소모하는 동안에 국가붕괴직전에 임박한 사태도 합리성이 결여된 학문의 부작용이 일으킨 사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합리성이라는 것이 말을 먹고 개를 먹지 않는 나라에서 개를 키워서, 개를 먹고 말을 먹지 않는 나라에 수출하고 그 댓가로 말을 수입하여 양국의 공리를 꾀하자는 야박하고 기계화된 합리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공익과 평화, 인간과 동물복지의 도덕적인 정신이 바탕이 된 합리성이라야 바람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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