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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5일 금요일

인간주의 경제 / 하이예크

얼마전 버스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중의 한가지는 버스운전자의 자격조건이 30세 이상으로 제한되어 있었던 이유다. 즉 기성세대의 모습을 진실되게 볼 수 있는 현장이라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청년층들과 함께 하는 일터에서 지내온 결과 뭔가 불균형한 관점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비교적 아름다웠으며 나쁜 현실은 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갈 무렵이면 생명력있고 깔끔한 세상이 만들어지리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후 7년동안 개선은 되야 하지만 퇴출되어서는 안되는 산업현장에서 일하면서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래서 젊은이들도 별로 없는 어두운 세계속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노동하는 사람들은 건강한 몸과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근로현장은 건강하지 못한 모순이 있었다. 반대로 근로현장이 존중받고, 사회적인 지위를 인정받는 곳에서는 개인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모순이 있었다.     

오랫동안 법률을 공부하거나 사설학원에서 헌법, 행정학등을 지도하며 책을 놓지 않아서 그런지 정치권이나 법조계의 현실은 항상 친밀(?)했다. 요즘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고위검찰간부의 성적일탈문제나 대법원장의 일탈, 여배우의 자살사건과 연루된 구세대 엘리트들의 광란적인 행태는 동조와 사회교육의 형태로 신세대 아이돌까지도 교육시켰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혐의사건, 배우 장자연씨 자살사건, 승리,정준영 사건은 '근본적으로' 얽혀있는 사건인것 같았다.

22년전에 주물공장의 용광로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혁신이란 없었고, 인건비와 노동력에서 모든 이익을 얻을려고 했다. 500만원을 들여 그라인더 몇개만 도입해도 품질은 뛰어나게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사업주는 인건비에만 신경쓰고 있었고, 인건비를 아끼겠다고 중국에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후 회사가 폐업을 했다. 세월이 20년이 흘렀는데도 한국경제의 스타일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도 인간이고 기업주도 인간이며 상품을 구매하는 수요자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는 경향이 있다.

한 번은 소규모의 버스회사에서 일하면서, 운행횟수를 줄이고 버스기사의 휴식시간을 더 부여하면 어떤 이익이 있을지를 시험해봤다. 혁신적인 기업주와 혁신적인 간부, 혁신적인 기사들이 삼위일체가 되서 나온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승객은 운전이 안정적인 버스를 선호했고, 승객들에게 쓸데없는 불평거리를 주지 않은 덕에 버스기사들의 정신적 복지도 좋아졌다. 물론 사고도 없어졌다. 서비스상품의 품질이 매우 향상되었음은 물론이다.

오스트리아태생이고 영국경제학자인 하이예크(Hayek, Friedrich August von)는 계획경제나 지나친 공리주의를 경계했다. 그리고 과학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실증주의도 경계했다. 인간을 위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보니 하이예크가 케인즈의 경제사상을 비판하는 일까지 있었는데, 아마도 하이예크는 정부의 재정지출 증대로 복지정책을 추구하는 케인즈의 경제사상이 지나치게 확대되어 큰 정부가 완전히 사회주의화될것을 우려한것 같다. 그러면서도 헌법학자 켈젠의 (Kelsen,Hans) 법실증주의를 '법의 역사적 형성'이라는 관점을 포기한, 달리 표현하면 자연법적인 인간주의를 말살한, 지나치게 과학성이 담긴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하이예크는 경제학자지만 사회철학자의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내 자신이 저번 글에서 몇 번 썼던 단어인 '가치규범성'을 중시하는 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몇 개월전 몇몇 경제학자들의 영문원서를 구입하여 읽으면서 이렇게 부지런히 경제학책을 읽으면 나중에 좋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위도 받을 수 있겠으나 내 생각은 점차 실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명분하에 인간적인 생각이 날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잠시 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하이예크는 이런 우려를 해결해주고 있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교수나 한국의 김상조교수처럼 경제학자가 가치규범성이나 사회철학적인 모습을 띄면 진보주의 경제학자로 매도당할 수 있지만 하이예크교수는 실증성을 반대하면서도 보수주의 성향을 띈다. 결국에는 진보주의 경제학자나 보수주의 경제학자나 경제학은 인간을 위한다는 가치규범성을 띄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겠다. 

극도의 자본주의,극도의 사회주의,광신적인 종교는 모두 인간성을 상실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생각은 모든 것의 결론일 것이다.

케인즈가 하이예크의 저서 [노예에의 길]을 읽고서 칭찬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당신에게 동의하오. 문제는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 것이오." "당신은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지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소."  

아마 인간이 극단으로 가는 길을 경계한 것은 하이예크나 케인즈의 일치된 생각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2019년 3월 8일 금요일

북한과 미국의 인내심


북한의 입장이나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북한은 핵이 체제를 지켜주는 유일한 '수(means,a trick)'였고, 미국은 세계평화를 끌고 나가는 미국중심의 질서안정에 미국에 적대적이었던 북한이 유일한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북한은 경제적 재난을 겪고있는 약점이 있고, 미국은 트럼프대통령의 임기내에 평화적 정세를 이루어야 한다는 약점이 있는듯 하다. 이런 것들을 협상의 도구로 사용하는데, 두 국가의 관점이 다른 것이 문제인듯 하다. 자본주의 계산법과 독립주의 계산법의 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은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문제로 외부세력에 대해서 쉽게 계산의 결과를 보여주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독자적인 생존 기술을 터득해 온 것 같다.


북한이 핵무기를 쉽게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이 비현실적임을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북한의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하도록 할려면 미국은 좀 더 인내심있게 북한을 상대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협상을 전략적인 관점으로 끌고가는 것 보다 핵을 포기하고도 북한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북한이 느끼도록 해야할 것 같다. 국제정세와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북한내부에서의 김정은 체제의 유지등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과제가 있을 것 같다. 핵은 북한과 외부와의 관계에도 중요한 '한 방'이지만 북한 내부의 결속력 유지에도 중요한 '한 방'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개방과 개혁의 마음이 이미 설정된 김정은 위원장은 급격한 환경변화로 정세에 모래폭풍이 밀려오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전략'에 있어서 인내심은 중요하다. 다음은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에 나오는 '인내심'관한 내용이다. 

반격의 원리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진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적인 모든 환경과 모든 갈등 상황에 무한히 적용할 수 있다. 우리는 본래 인내심이 부족한 동물이다. 우리는 기다리는 걸 참지 못하며 우리의 욕구가 최대한 빨리 충족되기를 바란다. 이는 엄청난 약점이 된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돌진하다 보면 선택권은 좁아지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 

한 편 인내심은 전쟁에서는 특히 무한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인내를 통해 우리는 기회를 감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격을 가해 적의 허를 찌를 시간도 벌게 된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은 본성에 굴복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언제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 Robert Greene [The 33 Strategies of WAR]-   

미국정부인사들은 한국대통령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지나치게 서두른다고 말하는데, 한국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가 전략적인 갈등관계가 아닌 협력적이고 순항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 있어서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가능한' 갈등관계가 아닌 협력관계로 인식할려고 노력하는듯 하다. '김정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말을 강조함으로써 '결과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려고 최선을 다하는듯 하다. 

2019년 3월 1일 금요일

보편적 교양의 필요성 / 장하준

좀 연령대가 있는 정치인이 아무런 죄책감없이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밑바닥 인생을 살아 온 경험으로는 고정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말하자면 정치적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마케팅활동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곤 한다. 정치서비스의 수요자인 고객(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을 온 몸으로 체득하며, 누구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선거에 의해 정치인을 선택하는 한 표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한 표씩 주어지기 때문에 사회발전과 개선을 위한 의무감이 없어도 '선동'하여 표만 끌어내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요즘들어 아무나 붙들고 독서와 공부를 권하는 습관이 생겼다. 생활을 개선시키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는 목적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독서와 공부'는 중요하다. 특히 인문철학, 정치, 경제학적 지식이나 사고의 능력에 있어서는 학력의 평준화가 일찌감치 이루어진게 한국의 현실이기도 한 것 같다. 학력과는 상관없이 생각이 없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간간히 이념문제와 더불어 기성세대의 사고영역에 대해서 비판해 왔지만 이념이나 출세로 일관된 관점은 목적하는 것 외에 다른 곳으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전문성'을 이룬 것 같다. 

경제문제나 정치심리들을 말하는데, 나같은 비전문가의 분석은 어느 정도 맞을 수 있을까. 전문가와 일반시민들 중 누구와 마음을 연 토론이 가능할까. 많은 시민들이 한 표는 가지고 있으나 모든 정치경제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표는 어떤 정치인을 선출하고, 그 정치인은 어떤 정책을 내놓을까.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정치인들중 법조인 출신들이 있는데, 법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국민 누구나가 최소한의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교육받아야 자신의 권리 수준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Korea used to send its bureaucrats for extra training to - of all places - Pakistan and the Philippines untill the late 1960s. Pakistan was then a 'star pupil' of the World Bank, while the Philippines was the second-richest country in Asia after Japan. Years ago, as a graduate student, I had a chance to compare the early economic planning documents of Korea and India. The early Indian plans were cutting-edge stuff for their time. They were based on a sophisticated economic model developed by the world-famous statistician Prasanta Chandra Mahalanobis. The Korean ones, I am embarrassed to say, were definitely written by Professor Winter's usual complement of third-and fourth-raters'. But the Korean economy did far better than the Indian one. Perhaps we don't need 'first-best economists' to run good economic policy.

Indeed, Professor Winter's first-best economists are one thing that the East Asian economies did not have. Japanese economic officials may have been 'first-best', but they were certainly not economists - they were mostly lawyers by training. Until the 1980s, what little economics they knew were mostly of the 'wrong' kind - the economies of Karl Marx and Friedrich List, rather than of Adam Smith and Milton Friedman. In Taiwan, most key economic bureaucrats were engineers and scientists, rather than economists as is the case in China today. Korea also had a high proportion of lawyers in its economic bureaucracy  until the 1970. The brains behind President Pakr's Heavy and Chemical Industrialisation (HCI) programme in the 1970, Oh Won-Chul, was an engineer by training.

한국은 1960년대 말까지 관료들을 (많고 많은 곳 가운데 하필이면) 파키스탄과 필리핀으로 보내 추가 교육을 시켰다. 파키스탄은 당시 세계은행의 '촉망받는 학생'이었고,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부유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 대학원생이었을때 한국과 인도의 초기 경제 계획 문서를 비교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의 초기 계획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통계학자 프라산타 챤드라 마할라노비스가 개발한 정교한 경제학 모델에 기초한 것으로, 당시로는 최첨단을 달리는 것이었다. 반면 한국의 계획은 창피한 이야기지만, 윈터스 교수가 말한 '흔히 보는 삼류, 사류 경제학자들'이 입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인도 경제보다 훨씬 높은 성과를 거두었다. 좋은 경제 정책을 운용하는 데에는'일류 경제학자'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윈터스 교수가 말한 '일류 경제학자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 관료들이 '일류'였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이들은 대부분 경제학 교육을 받지 않은 법대 출신들이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그나마 알고 있는 경제학이라는게 대부분 '잘못된' 종류였다. 이들이 배웠던 경제학은 에덤 스미스와 일턴 프리드만의 경제학이 아니라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제학이었다. 대만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제 관료들이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공학도나 과학자들이었다. 이것은 오늘날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도 역시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 관료 가운데 법대 출신의 비율이 높았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 공업화 프로그램을 진행한 브레인인 오원철은 공학자였다.

- HA-JOON CHANG의 [BAD SAMARITANS]-

저번글에서도 밝혔지만 한국이 급속한 경제개발을 한 배경에는 경제학자나 경제관료들의 역할 말고도 지도자의 일관된 장기경제정책과 경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국민들의 공리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았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이 점은 파키스탄이나 인도, 필리핀하고는 좀 다른 점이 있는듯 하다. 인도나 파키스탄은 사회분열적 현상이 강했으며 우습게도 한국은 이념적인 통합체로서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국민통합에 순기능을 했던 점도 있는듯 하다. 지금은 체제경쟁의 상대가 없어져서 '빨갱이'논란 자체가 비정상적인 논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내 자신이 북한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집착을 하고 살았는지 20대 중반에 학교 졸업논문 제목이 [북한의 테크노크라트]였다. 당시 지도교수님은 좀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한 번 함께 생각해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교수님의 주된 연구 분야가 필리핀 정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이나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에 정신에너지를 쏟고 있었던듯 하다. 북한은 강한 이념적 성질때문에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필리핀은 법조인 출신 지도자였던 마르코스와 그를 따르는 이상한 정치인들때문에 한국이 경제성장하는 속도와 비숫하게 망가져 가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르코스가 매우 영리하여 20대에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스스로 변호하여 무죄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리적인 마음이 없는 정치인은 '국가와 사회공동체의 불필요악'인듯 하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공리적인 지도자는 공리적인 국민이 만드는듯 하다. 국민이 공리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교양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념적인 냉전시대에 점점 선명해졌던 자본주의의 색깔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분위기로 흘러갔음은 물론이다. 

2019년 2월 14일 목요일

남북한의 합리적 장기경제계획


아직 이념적인 한반도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매우 타당할 수 있는 두가지 대칭적 기사가 보였다.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두 기사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상은 크지만 항상 일자리와 적은 월급으로 고민하고 있는 내 자신처럼 국가도 성장의 고통을 안고 가야할 과제가 있는듯 하다. 한편으로는 지난 보수정부때 4대강 토목건설 사업과 평창올림픽 유치에 무리하게 집중을 한 이유가 생각났다. 단기적 내수확장을 추진한 것 같다. 그리고 찾아오는 침체의 사이클을 다음 정부가 떠맡게 된 것 같다.

저번 글에서도 여러 번 밝혔지만 이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은 국민의 현실적 생활을 가치규범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것 같다. 혹 어떤 경제학자는 민간부문에 맡겨놓아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을 불러오고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즈음에서 반드시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위주 경제구조의 문제점이 나올 것 같다. 고용의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떠맡고 법인세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낸다면 답은 간단히 나오는 것 같다. 장하준교수의 생각처럼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 사회보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제국가이고, 이념적인 대칭성이 강한 정부가 교차하기도 한다. 정첵의 장기성이나 일관성이 쉽게 훼손될 위험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의 경제개발정책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장기적 집권으로 일관된 장기경제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다는 것같다. 만약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개발을 추진한다면 장기개발이 가능한 최적의 여건이 일관된 1인 집권체제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 물론 과거 한국국민이나 지금의 북한민들이 비합리적이고, 합리성에 대한 과제는 지도자 혼자 떠맡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을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일인의 장기집권체제에서 지도자가 비합리적이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잊어버리면 매우 나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부말기가 그랬었고, 훗날 그 이념적 적통을 잇는다는 한국의 보수정부에서 그랬다. 이념이라는 것이 소용없다는 증명을 해보인 셈이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만약 엄청난 복권이 당첨된 실직자처럼 복지가 주어진다면 국민이 열심히 일을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감히 나따위가 그런 망령된 생각을 할만큼 국민은 어리석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다. 과거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어느 보수인사가 국민은 복지가 주어지면 일을 안 할것이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일하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 건달처럼 살 것이라는 자신의 각오가 투영된 말인듯 하다. 실제로 일터가 즐겁고 적절한 휴식이 있으면 그렇게 즐거운 삶도 없을 것 같다.

경제개발이나 경제개혁은 장기적이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소득주도의 경제정책의 필요성에 관하여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학리적인(theoretical)생각이 많으면 가치규범적인 생각이 부족할 수 있을것 같다. 맨큐교수는 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서도.


다음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교수의 [The Accidental Theorist]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But there is a catch : The democratic process, the only decent way we know for deciding how that coercive power should be used, is itself subject to extremely severe free-rider problems. Ratchoice theorist Samuel Popkin writes(in his 1991 book, THE REASONING VOTER):"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If everyone spends an additional hour evaluating the candidates, we all benefit from a better-informed electorate. If everyone but me spends the hour evaluating the candidates and I spend it choosing where to invest my savings, I will get a better return on my investments as well as a better government."As a result, the public at large is, entirely rationally, remarkably ill-informed about politics and policy. And that leaves the field open for special interests---which means people with a large stake in small issues --- to buy policies that suit them.

-an omission-

So what is the solution? One answer is to try to change the incentives of politicians, by making it more difficult for special interests to buy influence.

-an omission-

Another anser is to promote civic virtue. There are those who believe that if only the media would trear the public with proper respect, people would respond by acting responsibly---that they would turn away from salacious stories about celebrities and read earnest articles about the flat-panel-display initiative instead. Well, never mind. But it is probably true that the quality of politics in America has suffered from the erosion of public trust in institutions that used to act, to at least some digree, as watshdogs.

Once upon a time a politician had to worry about the reactions of unions, churches, newspaper editors, even local political bosses, all of whom had the time and inclination to pay attention to politics beyond the sound bites. Now we have become an atomized society of individuals who get their news---if they get it at all---from TV. If anyone has a good idea about how to bring back the opinion leaders of yore, I am all for it.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민주적 과정, 즉 정부의 강제력이 어덯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괜찮은 유일한 방법이 그 자체가 극히 심각한 무임승차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의 이론가인 새뮤얼 포프킨은 1991년의 [이성적인 유권자]라는 책에서 "모두의 일은 아무의 일도 아니다"라고 썼다. "모든 사람이 후보자 평가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우리 모두는 후보자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선거구민 덕분에 혜택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후보자 평가에 시간을 들이고 나는 나의 절약분을 투자할 곳을 고르는데 시간을 들인다면, 나는 더 나은 정부도 얻고 나의 투자처로부터 더 나은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전체 대중은 합리적이면 합리적일수록 정치와 정책에 관해서는 더욱 나 몰라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정치는 특수한---이해에 적합한 정책을 사들이는 특수한 이해의 당사자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 하나는 특수 이해의 당사자가 영향력을 사 들이는 일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듦으로서 정치가들의 동기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중략-

또 다른 답안은 시민의 도덕성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을 적절하게 존중해 줄 때라야만 사람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는 반응을 보일 것---유명인들의 스캔들 기사에서 눈을 돌려 공개 토론회의 주제가 되는 현안에 대한 진지한 기사를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 걱정할 필요없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사회 감시 기능을 해 온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침식됨에 따라 질적으로 하락해 온 것이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언젠가 한 정치인은 노조와 교회,신문편집인, 그리고 심지어 지방 정계 유지들의 태도에 개탄한 적이 있었다. 그들 모두 선거 슬로건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정치에 대해 알려고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TV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를 얻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사회에 살고 있다. 혹시 어떻게 하면 그 옛날과 같은 여론주도자들을 오늘날에 불러올 수 있는지 좋은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Paul Krugman의 [The Accidental Theorist]중에서 -

결국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는 누명(?)을 쓰고 있는 경제학자들은 특수이익집단이나 시민의 도덕성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아마 이와같은 시민의 태도가 정책의 공리성(public or utility)을 저해한다는 관점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념적인 관점 때문에 정부정책의 공적인 성질이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장래의 북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렇다. "특수이익집단을 위한 단기적 경제정책 "  을 극복하는 일이 한국정부의 큰 과제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북한이 시장경제화가 되면 일찌감치 경계하여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기도 하다.    

2019년 2월 4일 월요일

장기적 개혁의 지도자 등소평


중국의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등소평은 대단한 사람이다. 열정과 의지와 차분함이 넘쳤다. 이 점은 지식과 열정이 넘쳤던 모택동보다 우월하고 지식과 이성이 넘쳤던 주은래보다 우월했다.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기본과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기본을 잘 포착해서 정책을 지도했다. 쇄신을 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착실히 앞으로 나갔다.

등소평은 중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실하게 하기 전까지는 미국에 대항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요즘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을 보면 등소평이 선견지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선견지명보다는 등소평의 기질이 중국정치에 투영된 표현일수도 있다.

1945년 7월.8월.9월. 3개월동안 아버지는 정말로 바빴다.

- 중략 -

8월에 아버지는 전면적으로 기업을 쇄신해야 한다고 제의했고, 국방공업 중점기업화에서 <국방기업에 관한 쇄신>을 주제로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담화 첫 머리에 요지를 밝히고 몇 가지 분명히 내세워야 할 기치를 말했다.

첫째,
용감함을 우선 신조로 하는 지도자 그룹을 반드시 조직하여 파발성과 단연코 투쟁하여야만 하고, 필요한 규칙과 제도를 확립해야만 한다.
둘째, 
반드시 품질제일주의를 유지해야 한디. 필요한 책임제도가 없으면 품질을 보증하기가 어렵다. 또한 기술자의 적극성을 발휘해야만 한다. 과학기술자를 '지식인'(저자주 ; 문화대혁명 기간에 4인방이 지식인을 지주,부농,반혁명자,파괴론자,우파,반역자,간첩,주자파등의 8가지 부류와 같이 취급하였고, 지식인이 '타도대상이 된 후'에 '냄새나는 지식인'이라고 무고하게 비방당했다) 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모주석은 '지식인은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즉 과학기술자는 마땅히 중시되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셋째.
반드시 군중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문제는 한마디 말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착실하게 작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철강 노동자가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는데 채소와 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기본조건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힘든 노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연구해 해결해야 한다.   

- 등용의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중에서 -  

1970년대 캄보디아의 사회주의 정권은 "앙카는 지식인을 싫어한다."며 지식인을 학살하여 영화로도 유명한 '킬링필드'를 만들었지만 장기개혁을 추진했던 등소평은 지식인을 중시했다. 그 효과는 수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 확실한 성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지도층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한 파벌타파, 노동자에 대한 대우개선등은 우리가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되는 국가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점이라는 사실을 통찰하며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이미지 정치와 선동정치, 수직적 권력추구에 친한 한국정치가 지도층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다져온 하부 시스템의 확고한 메카니즘에 얹혀서 움직여 나가고 있거나 김정일 위원장 시절의 북한이 끝이 안보이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철저한 장기계획이 없었던 까닭이다. 미국도 확고하게 확립된 하부구조의 메카니즘(오랜 민주주의 전통에 의해서 만들어진)이 있는 이유로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나 선동정치는 또 다른 '능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는 국민에게 험난한 여정을 선사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미국보다 작지만 안정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독일이나 핀란드를 비롯한 스칸다니비아3국은 대중정치가 없다. 치밀하고 내성적이며 강력한  장기개혁이 형성되어가며 협동적 개혁과 발전에 대한 국민의 장기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도자가 되서, 또는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서 권력위에 경제적 부수입이나 심지어는 성적인 부수입까지 올리려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등소평의 지도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21일 월요일

패쇄공간에서 개방공간으로 / 성범죄


지금은 북한이 개방공간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북한의 개발이 늦은 핵심요인은 정치, 경제, 문화등 모든 면에서 고립국을 유지한 시간이 무척 길었던 까닭이다. 물론 이념이 중대한 역기능을 했고, 이런 사실을 좀 더 탐구하고 분석하며 설명할 수 있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폐쇄성을 가진 집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학습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특히 요즘 또 국정원 직원의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체육계의 성폭력 사건이 크게 이슈로 떠오른 시점이라서 다시 한 번 페쇄집단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개방적인 젊은 세대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가 아직 정신적인 민주화가 부족한 구세대들을 상대하는 일을 했는데,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의 통제보다는 자율적이고 방만한 성장기를 보냈던 개인사가 있어서 그런지 무척 힘들었던것 같다. 특히 성범죄에 대한 세대간 문화충돌은 반드시 크게 문제화될 것을 예상했다. 보수정부 시절에 대통령 수행인사의 성추행 사건, 진보정부 시절의 도지사 성폭력 혐의 사건, 검찰출신인사들의 성범죄사건, 번번히 발생하는 성직자의 성범죄사건, 여배우 자살사건, 군 내부의 성범죄사건등은 완전히 내집단화된 폐쇄집단의 파행이기도 하고, 인권의식이 둔감한 구세대들의 파행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성평등의식이 부족한 동양사회의 전통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

사회 초년생시절에  여러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는데, 순진하긴 하나 좀 공감능력이 부족했던것 같은 친구가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고 개신교회의 일파와 엮이도록 유도했다. 반응을 금방 안보이는 내 특성상 꽤 오랫동안 모른 척하고 함께 하면서 집단의 문제점을 분석해보았다. 사회에서 얻고 싶어했던 것들, 행복, 부와 명예등을 기대하면서 정신적으로 종속되어가는 신자들이 보였다. 특히 이성(남자와 여자)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관련지어가는 분위기였는데, 많은 이단종파들이 교주의 성범죄와 관련된 사건을 일으켰지만 이단 종파가 아니더라도 집단의 폐쇄성과 생각의 패쇄성은 정상적이고 냉철한 생각을 흐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직원 40여명 정도 되는 조그만 업체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중년또는 중년 이상의 직원이나 고객들의 성적 일탈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습관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통제할려고 하다가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곤 했는데, 가장 내가 가혹하게 했던 말은 "당신도 자녀가 있지 않은가"였다. 그런 질타에 감정이입이 되어 얼굴이 사색이 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교육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0년대와 80년대 군사정부 시절 권력자들의 지배욕구와 행위를 모방하면서 각인시켜 온 세대들에게는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검찰출신인사들의 성적 일탈은 고시공부를 다년간 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였다. 권력을 위해서 공부했는데, 권력을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 검찰이나 법원은 정치적 권력의 억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거나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소속되고 싶었던 곳이다. 집단의 폐쇄성으로 외부 통제가 되지 않아 내집단화 되어갔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비리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서 악습(a bad custom)의 전통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검찰 권력중 수사권을 외부통제가 가능한 경찰에 이양하지 않으면 조직과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것 같다. 얼마전 추석에 집에 가지도 못하고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데, 한산하고 가을 바람 부는 거리에 버스와 순찰차, 119차량만 돌아다는 것을 보면서 생활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권위를 갖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운동선수들의 피땀어린 올림픽 금메달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기성세대들의 권력욕구에 이용당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제는 그런 금메달에 환호할 국민은 없다. 국가와 국민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핑계로 과거 한국의 군사정부 시절이나 공산권국가에서는 폭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금메달을 얻어낼려고 했었다. 외부의 눈이 정상적이라면 그건 일탈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모두가 배우고 생각하는게 없었다. 차범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든 없든 그건 상관할 일이 아니고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 우리 선수가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그게 그 당시의 한국의 위상이었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하긴 나도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할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이념문제에 대해 할 말을 하면서 점점 정권과 그 당시 정권의 지시를 받는 정보기관과의 골이 깊어지자 사격훈련을 하면서 기술을 배웠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나라로 가서 그 나라 올림픽선수로 참가해서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처절한 저항은 아니고 그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대통령이나 그 패거리들을 가소롭게 생각한다. 그건 패쇄적 집단이기 때문이었다. 패쇄적 집단은 개방적 개인에게 조차도 웃음거리와 구경거리가 된다.  

2019년 1월 12일 토요일

북한이 강대국을 대하는 법

한국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간절히 기대하는가 하는 문제는 좀 추상적인 문제다. 국경을 맞대응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으로도 충분한 위협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핵화문제는 북한이 주변 강대국에 대응하는 문제로서 한국으로서는 주변국들과의 2차적 관계가 관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것 같다. 하지만 팽창주의적인 야망을 넘어서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한반도가 서구화 블럭속에 편입되게 되는 일은 전통적이고 이념적인 맹방(아주 맹렬한 우방)으로서 중국의 입지에 부담스러운 미래상을 안겨줄 것같다. 그 와중에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으니 시진핑은 반가웠을 것이다.


원래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과 별로 안 친했다. 심지어 일본의 고단샤 편집장이자 동아시아 전문 연구가인 일본의 곤도 다이스케는 [시진핑은 왜 김정은을 죽이려는가]하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정도였다. 그 책속에는 친중파인 장성택을 처형한 문제를 비롯하여 시진핑이 김정은 위원장을 매우 싫어하게 된 원인들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면 일인 집권체제의 '위험한 약자'인 국가를 떠맡은 김정은 위원장이나 지리적인 밀접한 연관성으로 북한을 포기할 수 없는 시진핑의 만남은 현실적인 일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자기 몫을 챙길려고 노력하는 의지는 각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예측하고 있을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Korea? You don't, you just manage it---after all, there's a lot of other stuff going on around the world that needs immediate attention. 

The whole of the region region from Malaysia up to the Russian port of Vladivostok eyes the North/South Korea problem nervously. All the neighbors know it has the potential to blow up in their faces, dragging in other countries and damaging their economies. The Chinese don't want to fight on behalf of North Korea, but nor do they want a united Korea containing American bases close to their border. The Americans don't really want to fight for the South Koreans, but nor can they afford to be seen as giving up on a friend. The Japanese, with their long history of involvement in the Korean Peninsula, must be seen to tread lightly, knowing that whatever happens will probably involve them.

The solution is compromise but their is limited appetite for that in South Korea and none at all displayed b the leadership of the North. The way forward is not at all clear; it seems as  it is always just out of sight over the horizon.

- Tim Marshall [PRISONERS of GEOGRAPHY]  -

한반도라는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풀 수 없다. 그냥 관리만 할 일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는 이 문제 말고도 관심이 필요한 시급한 일들이 널려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항에 이르는 지역 '전체'는 초조하게 남북한을 주시하고 있다. 만에 하나 그들의 코 앞에서 이 문제가 폭발하기라도 하면 인접국까지 말려들게 되고 그 여파가 당장 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거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행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건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통일 한국의 국경, 즉 자신들의 코 앞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미국도 한국을 위해서 싸우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지만 그렇다고 우방을 저버리는 짓을 할 수도 없다. 한반도 개입에 있어서는 오랜 역사를 지닌 일본은 어떤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모른 체할 수는 없는 입장이기에 되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할 것처럼 보여야 한다. 

해결책은 타협이겠지만 한국은 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고 북한의 지배층 또한 이를 받아들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향후 전망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상황은 마치 지평선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풍경과도 같다. 

- 팀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지리의 힘] 중에서 - 

그러나 요즘은 지평선 너머에 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많다 특히 한국의 대통령이나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더욱 잘 알고 있는듯 하다. 서두르지 않고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아는듯 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이 권위주의 국가들의 지도자들과 협상능력에서 불리한 점이 있다면 임기나 대중에게 보여줘야 하는 결과물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중국과 북한의 만남에 대하여 그다지 우려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행히도 시진핑과 김정은 위원장이 모두 야심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