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등소평은 대단한 사람이다. 열정과 의지와 차분함이 넘쳤다. 이 점은 지식과 열정이 넘쳤던 모택동보다 우월하고 지식과 이성이 넘쳤던 주은래보다 우월했다.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기본과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기본을 잘 포착해서 정책을 지도했다. 쇄신을 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착실히 앞으로 나갔다.
등소평은 중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실하게 하기 전까지는 미국에 대항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요즘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을 보면 등소평이 선견지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선견지명보다는 등소평의 기질이 중국정치에 투영된 표현일수도 있다.
1945년 7월.8월.9월. 3개월동안 아버지는 정말로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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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아버지는 전면적으로 기업을 쇄신해야 한다고 제의했고, 국방공업 중점기업화에서 <국방기업에 관한 쇄신>을 주제로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담화 첫 머리에 요지를 밝히고 몇 가지 분명히 내세워야 할 기치를 말했다.
첫째,
용감함을 우선 신조로 하는 지도자 그룹을 반드시 조직하여 파발성과 단연코 투쟁하여야만 하고, 필요한 규칙과 제도를 확립해야만 한다.
둘째,
반드시 품질제일주의를 유지해야 한디. 필요한 책임제도가 없으면 품질을 보증하기가 어렵다. 또한 기술자의 적극성을 발휘해야만 한다. 과학기술자를 '지식인'(저자주 ; 문화대혁명 기간에 4인방이 지식인을 지주,부농,반혁명자,파괴론자,우파,반역자,간첩,주자파등의 8가지 부류와 같이 취급하였고, 지식인이 '타도대상이 된 후'에 '냄새나는 지식인'이라고 무고하게 비방당했다) 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모주석은 '지식인은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즉 과학기술자는 마땅히 중시되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셋째.
반드시 군중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문제는 한마디 말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착실하게 작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철강 노동자가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는데 채소와 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기본조건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힘든 노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연구해 해결해야 한다.
- 등용의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중에서 -
1970년대 캄보디아의 사회주의 정권은 "앙카는 지식인을 싫어한다."며 지식인을 학살하여 영화로도 유명한 '킬링필드'를 만들었지만 장기개혁을 추진했던 등소평은 지식인을 중시했다. 그 효과는 수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 확실한 성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지도층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한 파벌타파, 노동자에 대한 대우개선등은 우리가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되는 국가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점이라는 사실을 통찰하며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이미지 정치와 선동정치, 수직적 권력추구에 친한 한국정치가 지도층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다져온 하부 시스템의 확고한 메카니즘에 얹혀서 움직여 나가고 있거나 김정일 위원장 시절의 북한이 끝이 안보이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철저한 장기계획이 없었던 까닭이다. 미국도 확고하게 확립된 하부구조의 메카니즘(오랜 민주주의 전통에 의해서 만들어진)이 있는 이유로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나 선동정치는 또 다른 '능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는 국민에게 험난한 여정을 선사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미국보다 작지만 안정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독일이나 핀란드를 비롯한 스칸다니비아3국은 대중정치가 없다. 치밀하고 내성적이며 강력한 장기개혁이 형성되어가며 협동적 개혁과 발전에 대한 국민의 장기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도자가 되서, 또는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서 권력위에 경제적 부수입이나 심지어는 성적인 부수입까지 올리려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등소평의 지도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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