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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1일 월요일

패쇄공간에서 개방공간으로 / 성범죄


지금은 북한이 개방공간으로 달려가고 있지만 북한의 개발이 늦은 핵심요인은 정치, 경제, 문화등 모든 면에서 고립국을 유지한 시간이 무척 길었던 까닭이다. 물론 이념이 중대한 역기능을 했고, 이런 사실을 좀 더 탐구하고 분석하며 설명할 수 있게 된 이유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폐쇄성을 가진 집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학습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특히 요즘 또 국정원 직원의 자살사건이 일어나고, 체육계의 성폭력 사건이 크게 이슈로 떠오른 시점이라서 다시 한 번 페쇄집단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되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개방적인 젊은 세대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다가 아직 정신적인 민주화가 부족한 구세대들을 상대하는 일을 했는데,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의 통제보다는 자율적이고 방만한 성장기를 보냈던 개인사가 있어서 그런지 무척 힘들었던것 같다. 특히 성범죄에 대한 세대간 문화충돌은 반드시 크게 문제화될 것을 예상했다. 보수정부 시절에 대통령 수행인사의 성추행 사건, 진보정부 시절의 도지사 성폭력 혐의 사건, 검찰출신인사들의 성범죄사건, 번번히 발생하는 성직자의 성범죄사건, 여배우 자살사건, 군 내부의 성범죄사건등은 완전히 내집단화된 폐쇄집단의 파행이기도 하고, 인권의식이 둔감한 구세대들의 파행이기도 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성평등의식이 부족한 동양사회의 전통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

사회 초년생시절에  여러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였는데, 순진하긴 하나 좀 공감능력이 부족했던것 같은 친구가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고 개신교회의 일파와 엮이도록 유도했다. 반응을 금방 안보이는 내 특성상 꽤 오랫동안 모른 척하고 함께 하면서 집단의 문제점을 분석해보았다. 사회에서 얻고 싶어했던 것들, 행복, 부와 명예등을 기대하면서 정신적으로 종속되어가는 신자들이 보였다. 특히 이성(남자와 여자)문제와 관련해서는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관련지어가는 분위기였는데, 많은 이단종파들이 교주의 성범죄와 관련된 사건을 일으켰지만 이단 종파가 아니더라도 집단의 폐쇄성과 생각의 패쇄성은 정상적이고 냉철한 생각을 흐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직원 40여명 정도 되는 조그만 업체를 관리하고 있었는데, 중년또는 중년 이상의 직원이나 고객들의 성적 일탈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습관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통제할려고 하다가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곤 했는데, 가장 내가 가혹하게 했던 말은 "당신도 자녀가 있지 않은가"였다. 그런 질타에 감정이입이 되어 얼굴이 사색이 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교육은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0년대와 80년대 군사정부 시절 권력자들의 지배욕구와 행위를 모방하면서 각인시켜 온 세대들에게는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검찰출신인사들의 성적 일탈은 고시공부를 다년간 해 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였다. 권력을 위해서 공부했는데, 권력을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과거 검찰이나 법원은 정치적 권력의 억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거나 정치적 권력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소속되고 싶었던 곳이다. 집단의 폐쇄성으로 외부 통제가 되지 않아 내집단화 되어갔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비리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서 악습(a bad custom)의 전통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검찰 권력중 수사권을 외부통제가 가능한 경찰에 이양하지 않으면 조직과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것 같다. 얼마전 추석에 집에 가지도 못하고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데, 한산하고 가을 바람 부는 거리에 버스와 순찰차, 119차량만 돌아다는 것을 보면서 생활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권위를 갖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운동선수들의 피땀어린 올림픽 금메달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기성세대들의 권력욕구에 이용당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제는 그런 금메달에 환호할 국민은 없다. 국가와 국민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핑계로 과거 한국의 군사정부 시절이나 공산권국가에서는 폭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금메달을 얻어낼려고 했었다. 외부의 눈이 정상적이라면 그건 일탈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 모두가 배우고 생각하는게 없었다. 차범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든 없든 그건 상관할 일이 아니고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 우리 선수가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그게 그 당시의 한국의 위상이었으니까 그랬던 것이다.

하긴 나도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할려고 했었던 적이 있었다. 이념문제에 대해 할 말을 하면서 점점 정권과 그 당시 정권의 지시를 받는 정보기관과의 골이 깊어지자 사격훈련을 하면서 기술을 배웠다. 아니다 싶으면 다른 나라로 가서 그 나라 올림픽선수로 참가해서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처절한 저항은 아니고 그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 대통령이나 그 패거리들을 가소롭게 생각한다. 그건 패쇄적 집단이기 때문이었다. 패쇄적 집단은 개방적 개인에게 조차도 웃음거리와 구경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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