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건설기계장비기사로 일하기 위해 시청에서 열린 구인 구직 만남의 장에 발을 디딘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관공서의 도움인력, 방송국촬영반, 구인회사, 구직노동자들이 발디딜틈이 많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무엇인가 많이 비어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위에서 열거한 네종류의 인력들이 거의 비숫한 비율로 참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장소에 구인회사가 많으면 경제가 활력이 있다는 의미고, 구직인력이 많으면 경제가 불황이란 의미고, 공무원이 많으면 큰 정부의 관료주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고, 방송국인력이 많으면 전시행정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매우 나쁜 것은 구인회사와 구직인력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는데, 모두 경제적 생활을 포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일을 하지 않으려는 시민의 도덕성에 대하여 몇몇 보수적 정치인들의 비평이 있었는데, 현장에 직접 뛰어다니는 입장에서는 일자리를 찾고 생활을 해볼려는 시민들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으로만 생각되었다. 경제가 활력을 잃어서 일자리도 없을뿐더러 일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시민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일터에서 기존 근로자들에게 내 자신은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 같다. 특히 나이 지긋한 근로자들에게는 더욱 그랬는데, 밀려나면 갈 곳이 없는 근로자들의 처지는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00불 가까이 되는 국가라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았던것 같다. 도대체 그많은 돈은 어디로 꼭꼭 숨었을까. 대형마트에서 스마트폰을 파는 영업사원이 나를 붙들고 신형스마트폰으로 바꿀것을 유혹하고 있었는데, 임금도 매우 낮은 처지에 젊은 이들이 입는 의복으로 대량교체한 시기였다. 내 소비가 의류공장 노동자의 임금으로 연결되는 것이 대기업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보다 낫다는 좌파적인 결정이 아니고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큰 상품에 대한 소비를 뒷전으로 미루는 합리적인 경제적 결정을 내려서 스마트폰은 절대 안 바꾸기로 하였다.
최저임금이 낮거나 일자리가 없을때 대기업의 스마트폰의 판매량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했다. 조금 장기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기업과 소비자들의 운명은 공생관계인듯 하다. 어느 쪽 편을 들어서 분배의 문제만 생각하는 이념적인 관점은 벗어나야 할듯 하다. 시민의 주머니에 돈이 있어야 기업의 물건을 소비하고, 공장이 돌아가며, 기업은 인력을 고용하고, 그 인력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그 돈으로 물건을 소비하고, 기업은 돈을 벌고,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투자를 하고, 물건을 소비하고 남는 넉넉한 돈으로 저축을 하여 싼 이자로 기업에 투자금을 빌려주는 경제적인 순환을 정치인과 경제인이 모를리 없을텐데, 이기심으로 관점이 협소해지고, 꼭꼭 숨어버린 전체적인 관점을 따라 순환되어야 하는 돈도 꼭꼭 숨어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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