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사회에서 논쟁이란 것은
극단적인 싸움에 휘말린다는 의미랑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매우 근본적이고 거대한 것의 정신을 지배받는
사람들이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비판과 대안을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
모든 문제가 ‘근본’으로부터 탄생했기 때문인 것을 아는 듯,
시민들의 비판도 더욱 근본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뭐가 문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는 표현을 많이 본다.
생각해보니 어떤 정치지도자가 이념적인 편향성을 가지거나 종교적인 편향성을 가지면
비판하기가 가장 좋았다.
비판하기 위해서도 합리적인
생각,
다양한 지식과 정보등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회는 서로서로 이렇게 상호부작용을 낳으며
망가져가는 듯하다.
다음은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The
Accidental Theorist란 저서에 쓴
내용이다.
‘이미 서유럽에서는 숙명론이 크게 강화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문제가 우리보다 더 크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해결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서유럽의 국민들은
정책에 실패하고 있는 자국의 정치지도자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냥 막연하게 세계 시장 때문에 “경제적 공포”에 시달린다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편향성은 거대하고 간편한
문제인 듯 하다.
문제가 있으면 설명도 대안도
필요없다.
거기다 권력지향적인 관점까지 가세하면 거대하고
어두운 제국의 포스(스타워즈에 나오는)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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