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낮에는 노인분들과 일하고 밤에는 청년들과 일을 하면서 두 계층의 차이점을 선명하게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적이 있었다. 그런데 불운하게도 가장 밀접하게 접촉했던 두 계층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이 아주 나쁜 경우가 있었다. 부분적인 문제를 전체적인 문제로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나쁜 표본들의 공통점은 노인분이나 청년이나 부정적인 반사회적 심리상태나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였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는듯 하면서도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주변인들을 보이지 않게 괴롭히고 있었다.
노인이 되면 신체적인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인 건강을 보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단련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해준 인물들이 종종 있었다. 그 노인분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고 경쟁사회에서 오랫동안 습관으로 자리잡은 투지만 살아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연령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권위를 챙기기 위한 투쟁이 한층 더 노욕(老慾)을 끓게 하고 있었다. 급기야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노인으로서 나쁜 조건에 시달리면서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잊게 하여 디프레션(depression)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옆에서 노래를 하면서 주위를 환기시켜주는 고생을 하기도 했다.
청년들 중에는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안한 교육이 빈곤한 심리를 갖게하여 우울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가만히 보면 문제가 있던 노인분과 청년이 공통적으로 상당히 수직적 권력에 집착이 많았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었는데, 자신의 여러가지 정신적인 장애요소들을 권력적인 위치를 얻어냄으로서 치유시킬려는 성향이 있는듯 했다.자신의 나쁜 신체조건에 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심리학의 대가가 된 아들러(Alfred Adler 1870 -1937)와는 달리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한 덕에 경계성 마인(魔人) 되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경계성 장애를 동전의 앞과 뒤를 판별하듯이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듯 하다. "경계성"이란 단어가 표현 하듯이 연속적인 개념으로 판단하여야 할듯하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사회의 권력속에 포진해 있는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의 심리적인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듯 하다. 워낙 일반화 되어 있는 심리상태라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전체가 앓고 있는 문제로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인물들이 사회의 미래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상황을 인지하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인듯 하다. 정치적 권력이라고 미화시켜 표현하지만 심각한 북한이나 어느 정도의 한국은 이런 심리적인 장애에 발목잡혀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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