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적(友敵)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의 문제점이라는 것은 우호감과 더불어 동전의 양면처럼 발생하는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인듯 하다. 그런 사회는 마음의 여유가 없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차단시키며 사고를 경직되게 만든다. 언젠가 서점에서 [9번째 지능]이란 책을 잠깐 펼쳐봤는데, 원대하고 이타적인 목표는 이제껏 '지능'이라고 불려왔던 것과는 또 다른 지적인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생각을 해보면 적대감, 경쟁심, 욕망의 충족을 위해 급해지는 마음등은 두뇌회전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경험을 하는 이들이 많을듯 하다.
몇일전 북한은 한국의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며 "재봉틀로 어쩌구"하는 별로 이익이 안되는 욕설을 북한의 공영방송(어차피 북한은 모두가 공영방송이지만)을 통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물론 한국을 향한 방송이 아니라 북한 내부 인민들이 한국정치지도자에 대한 적대감을 갖도록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념의 잣대로서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는 국민과 일체감을 가진 존재가 아니고 국민을 핍박하는 상위계급의 정점에 있는 존재라는 개념이고, 그러므로 남조선 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적개심을 가지고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국민감정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한국에서 정치지도자가 국민에게 비판받을 일이 생길수 있는 것 이상으로 북한체제에서 북한정치지도자는 북한의 상위계급의 극한 정점으로 행세한다는 사실들을 우격다짐으로 뒤틀어버린 모순이 있다. 논리를 따지기엔 이미 막장이 되어버린 한반도의 이념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행태이기도 하다.
지나간 날과 오늘의 현실은 그렇다고 하지만 계속 부정적인 적대감을 강화시켜온 사회의 구성원들이 미래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북한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먼 옛날 말 위에서 무거운 철퇴를 휘두르던 영웅을 그리워 하던 시절과는 너무 변해버린 시대에 와 있는 것을 망각해버린 탓인지도 모르겠다. 선군정치, 북한군부의 권력, 적대적인 대남관계등을 더 부드럽게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북한은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몇일 후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 - 1970)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미국국가를 어설프게 연주하며 성조기를 펄럭이며 걸어가는 스카우트단원들과 제복의 노병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순간 심리학을 연구해서 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결심도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한국에서 제복의 노병들이 성마른 모습으로 나서다가 아주머님들과 싸우는 장면을 보고는 부끄러웠다는 특별한 군대를 나온 친구의 고백이 생각났다.
개인이나 사회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자유지만 타(他)에 대한 배려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인듯 하다. 서로와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그런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