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어릴때부터 친구에게 "콩 심은데 콩 난다."고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나이가 꽤 들어서'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자신을 다스리기 위한 좌우명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늦게나마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노인분들의 지혜를 느껴 보기도 했다.
한 편으로는 '노욕'(老慾)을 조심해야 한다는 채현국 선생의 일갈(一喝)이 이해될 정도로 '하고자 하는 것보다 가지고자 하는 것'에 눈이 먼 노인분들을 보기도 하는데, 노인분들을 뵐때면 지혜로운 마음과 노욕에 눈 이 먼 마음으로 극명하게 갈라지는 '또 다른 양극화 현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은교]의 명 대사인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벌이 아니다"라는 이적요 시인의 말 처럼 '노화'는 인간의 숙명이지만 노화의 과정을 대처해 온 오랜 시간들의 내공(內功)의 차이가 사람에 따라서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스스로의 성장심에 도움을 주는 경우를 보는데,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노인분들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접음으로써 과거 지향적이고 노욕과 고집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모습도 많이 본다.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은 권력과 명예와 부유함이 없는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반면에 노욕에 찌든 노인의 모습은 권력과 부와 명예가 넘치는 곳에서도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내려놓는 일에 대한 훈련이 안 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더불어 살아가는 훈련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른와 꼰대의 차이는 성장할려는 마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진 경쟁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이 살아 온 세대가 이제 곧 한국민들의 대다수를 구성하게 된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동양문화속에서 노인의 세계는 외부자극에 의해서 변화할 수 없는 '성역'인듯 하다.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아이를 알 수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경제적인 변화와는 달리 정신적인 변화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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