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ed By Blogger

2015년 2월 1일 일요일

서민의 시간 / 감정과 도덕성


오래전 끔직한 불행과 나쁜 건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순간 직감적으로 감정을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나깨나 음악을 들었다. 잘못하면 감정이 파괴된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 것은 참 다행한 일인듯 싶었다. 말을 줄이고, 술과 담배를 끊고, 육식도 끊고 조용히 근신하며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주변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자신은 회복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특정 종교를 믿는 친구가 내가 '도인'이 되서 나타났다고 깨방정을 떠는 바람에 공격적 전도의 대상이 되서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친구와의 의리상 몇번 참석하면서 관찰했는데,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믿음으로 사회적 공감능력이 현저하게 손상된 신자들을 보면서 사회문제화가 되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기도 했던것 같다.

세월이 흘러 이념과 종교에 맹목적인 정치인들을 보면서 나같은 서민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문제는 보수나 진보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지금은 내 생각이 옳았다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많이 어려워진 서민들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서점을 들렸더니 하얀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보였는데, 또 진땀이 났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하면 좌파나 반 종교인으로 매도 당할 것 같아서 진땀이 났다고만 표현했는데, 책임감없는 정치 지도자의 공감능력없는 결과물을 보았다는 생각에 많이 섭섭했다.

"저 종소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려고 하지마라: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리니..."

이 글은 영국 문학 작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작가 존돈의 감수성은 감정이입과 배려가 만나는 지점에 남의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려는 마음이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감정이입의 반대는 '반감'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이입적인 태도는 도덕적 가치판단을 내릴 때에 관여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윤리적인 딜레머에는 대부분 잠재적인 희생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친구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옳은가? 아픈 친구를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급작스럽게 날아온 저녁식사 초대에 응하여야 할 것인가? 그것이 없으면 죽게 될 사람을 위해 생명 유지 장치를 언제까지 작동시켜야 할 것인가?

이러한 도덕적 질문들은 전문적으로 감정이입을 연구해 온 마틴 호프만 박사에 의해 제시된 것인데, 그는 도덕의 근원이 감정이입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서 고통이나 위험, 궁핍등으로 고통받는 잠재적 희생자들에게 감정이입하고 그들의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동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하버드 대학 심리학 박사 다니엘 골먼-

잘은 모르지만 작은 고생을 할때는 사회에 대해 도전심을 가지고 복수심이 섞인 야망을 품게 되는데, 고생이 지나치면 마음이 텅 비는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존경하는 정치지도자인 우루구아이 대통령 호세무히카의 자질은 우물바닥에 갇혀서 자신과 싸우는동안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