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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2일 일요일

불법도청과 닉슨의 눈물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지자 닉슨은 "내가 무엇을 했단말인가?"하고 울면서 주저 앉았다는 이야기를 저번 글에서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글을 인용하여 쓴 적이 있다. 닉슨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도청과 감청은 근본적으로 '비열한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규범적으로는 옳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인정받는 일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은데, 합법성과 불법성의 사이에서 미묘하게 줄타기 할 수 있는 문제인것 같다. 그 미묘한 부분은 정치적인 부분이라는 의미도 있고, 통치행위가 합법성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헌법이론도 있는 만큼 통치행위로서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차대전이 개전(開戰)하자 다급해진 영국수상 처칠은 루즈벨트에게 구축함을 건조할 차관을 비밀리에 요청했다. 그리고 루즈벨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영 미국대사인 케네디를 불러 나치에 대한 굳건한 항전각오를 표현했다. 당시 주영 미국대사관에서 비밀전문을 담당하던 타일러 캔트는 처칠과 루즈벨트의 비밀통신이 죄없는 미국시민들을 전란속에 몰아넣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치비밀요원인 애나 울코프에게 비밀전문을 건네주었다.

이 사건으로 루즈벨트는 영장없는 도청은 위법이라는 대법원판결(미국은 판례가 성문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선례구속성의 원칙이 지켜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에도 불구하고 영장없는 도청을 반대하는 법무장관 로버트 잭슨에게 인준할 것을 요청했다. FBI국장이었던 후버는 잭슨에게 도청에 관한 백지위임장을 받아 이후 30년동안 FBI는 도청을 통하여 정적들과 국가의 적들을 추적해왔다고 한다.

영장없는 도청이 인습처럼 전횡하던 시절에 대통령이 된 닉슨은 도청에 대해서 불법성이나 도덕성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습관처럼 선임자들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전통'에 대한 책임을 왜 자신이 혼자 뒤집어 써야 하는지에 대한 억울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을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냉철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환경에 동조해버린 자신의 경솔함에 대한 회한의 심정으로 흘린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가 지게 되어있고, 옳다고 할 수 없는 전통은 언젠가는 깨지게 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듯하다. 도청뿐만 아니라 많은 비리들이 빙산의 일각처럼 일부분만 드러내고 숨어있다가 '운 없는 표적'이 된 누군가와 관련해서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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