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대그룹의 왕회장이 양복은 한 벌만 있고, 구두는 뒷굽이 닳으면 다시 갈아 신기를 10년이상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아껴쓰는건 나와 같은데 돈버는 스케일에 있어서는 극과 극이며, 두 사람이 내수경제(內需經濟)에 전혀 도움을 못주는 비애국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기도 했다.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은 추가소득 중에서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개인적인 소득의 한계소비성향을 말하자면 왕회장께서는 극히 낮고 나에게는 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는 내수를 창출하지만 소비하고 남은 저축은 다시 투자가 되어 국민의 한계소비성향이 높던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저축이 곧 애국행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매우 저렴한 삶을 사는 밑바닥의 현실경제를 보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낙수효과랑 관련해서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배우 출신이자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마거릿 대처보다 한술 더 뜨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레이건 정부는 고소득자들에대한 세율을 공격적으로 깎으면서 이 조치로 부자들이 투자 이익 중 더 많은 부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의욕을 촉진해서 부의 창출을 독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자들이 부를 더 많이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더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것을 낙수효과이론trickle-down theory이라고 부른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는 동시에 레이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특히 주택 보조 부문에서)하고 최소임금을 동결하면서,그것이 더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왜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해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해가 되든 안되는 이 논리는 공급 경제학 supply-side economics이라고 불리며 향후 30년 동안, 아니 그 이후까지도 미국 경제정책의 기본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 장하준[경제학강의] -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대통령의 정치적인 이념과 공급경제학자들의 이념이 결합하여 미국의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던, 그래서 오바마행정부에서 수정되고 있는, 경제정책이 한국에서는 더 강한 이념적인 성향과 결부되어 꽤 오래 여운을 남기는듯 하다. 심지어 어떤 유명정치인은 복지는 한국인들을 게을르게 만들어서 그리스와 같은 파국을 만든다는 한국인들의 심성에 대한 지극한 오해심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는 농업과 관광업을 주된 산업으로 하고 있는 국가라서 제조업과 첨단산업 위주로 경제가 운영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국민들이 낙천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의 특성상 그렇지 그리스국민의 게으름과는 상관없는 일인듯 하다. 그리스에서 관광을 하고 있을때 업소마다 딱딱하고 경직된 기계적 능률성으로 고객을 대하면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니면 올리브밭에서 천삽뜨고 허리 안펴기 운동을 하고 있는 그리스 농부를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울 것인지를 생각해봐도 그렇다.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리스의 문제는 해결책을 공급경제학적으로 해결하여, 문제가 발생했을때 재정지원같은 것이 일반수요자들인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금융분야 같은 '영향력은 크나 대단히 소수의 이기적인'분야에 집중되어 있음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사실 복지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류의 목적임을 인식한다면 게으른 국민성을 바꿔서라도 복지정책을 달성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전문가와 경제적인 전문가들이 대다수의 서민들과 함께 생활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공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듯 하다.
한국사람은 게을르지도 않을뿐더러, 일은 기계적 능률성에 쫓기지 말고 행복하게 해야 하며,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 사명이 있는듯 하다.
과연 부자감세를 해서 부자들의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는데,한계소비성향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월 소득이 100만원인 빈돌이가 소득중 90만원을 소비에 지출할때 월 소득이 1000만원인 부순이가 900만원을 소비에 지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순이와 같은 고소득자가 절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현실을 볼때 한계소비성향이 큰 빈돌이에 가까운 국민들이 내수경제를 살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순이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아져서 고가의 사치품소비나 고급주택과 같은 건축물이 빈돌이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결국 빈돌이의 소비수요가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부순이가 소비하고 남은 잉여소득을 투자한다고 했을때 투자는 공급에 의존하고, 공급은 수요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면 전체적인 경제시스템안에서 대다수인 빈돌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모든 수요의 저점에는 부자가 아닌 대다수의 일반 수요자들이 있으며 그들이 경제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부자들의 소비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논리가 기상천외한 발상이라는 장하준 교수의 표현도 공감하지만 한계소비성향과 국민경제시스템의 바탕을 생각해보면 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맞춰져 있지 않은 경제정책은 국가경제를 곤란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