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육체의 존재로만 인정하면 나이가 들수록 희망이 옅어지고 게으름과 안정감이 찾아오는듯 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띄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희망과 모험에 가득차 있고, 노인은 점점 마음이 비어가고 딱히 변화를 바라지는 않는것 같다.
종교적인 내세(內世)에 대한 믿음은 확신이 안서도 있다고 맏음으로써 연속적인 시간의 경험속에서 영속성과 희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땅히 죽는 육체와 관련된 세상너머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그 곳이 현재의 삶의 지침이 되어주기도 하는듯 하다.
일본인 마쓰오까와 토인비의 대화 내용이다.
토인비 : 마쓰시다씨는 금년에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마쓰오까 : 78세입니다. 최근에도 매우 건강하시며 실업의 분야뿐 아니라 사회 그 자체를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려고 PHP의 연구에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도 기분은 20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인비 : 그래요. 이전에 교오또에서 뵈었을때도 분명히 <마음의 젊음>이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정신의 젊음은 두 가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선 첫째로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고 설득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지금껏 줄곧 이와 같이 해 왔으므로 이번에도 그대로 하겠다]라든가 [이렇게 믿어 왔으므로 이것밖에 믿지 않겠다]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행동과 생각을 바꿀만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둘째로는 우리들의 사후,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입니다. 나는 지금 83세이므로 마쓰시다씨보다 5년쯤 더 죽음에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나는 버트란드 러셀경이 바로 지금의 나와같은 연령때에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후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다음 세대에 일어나는 일에 참으로 관심을 갖게 되면 생명이 지속되는한 젊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런 식으로 살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서 내가 그 혜택을 보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시도가 혜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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