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끔 힘든 일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신체에 스트레스를 가해서 힘든 환경에 대하여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지나간 사건이 되어 원상복구 되곤 하지만 어떤 종목의 운동실력이 아주 준수해지는 경험이 가끔 있었던것 같다.
고대 알렉산더제국의 헬레니즘철학중 스토아학파는 금욕과 절제로 자신을 극복하여 자신이라는 주체가 환경에 영향을 덜 받고 평온해지는 상태를 '아파테이아'상태라고 해서 이상적인 상태로 삼았으며, 무인(武人)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고된 훈련으로 마음의 평정을 지향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아마 같은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윌리엄 글래서(William Glasser 1925 ~ )는 환자의 과거가 아닌 현재의 행동과 책임에 관심을 가졌는데,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자신을 통제하고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을때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글래서의 치료목표는 '선택이론'과 '현실치료'를 통하여 자기주도적인 힘을 갖추도록 유도하는데 있다고 한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국가이념으로 선택하게된 배경에는 한반도는 외세의 침략을 비롯한 국제정세에 수동적인 입장으로 대처해왔다는 역사관이 크게 작용한듯하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영향을 받는 (세계 어느 나라가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겠냐마는) 남조선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나름의 굳건한 신념이 사회적 평온을 유지하며 유래없는 '고립국'을 만드는데 설득력 있는 이념이 되었던듯 하다.
어떻게보면 자유진영의 관점으로 납득이 안되는 장기간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데, 교류나 상호관계의 경험을 점차 잃어가는 사회에서 어려운 여건을 자발적 스트레스로 이겨나가는 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와 미래를 만든다는것을 생각해볼때, 북한사회는 고난이 많았던 한반도의 역사가 주는 상처를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도 나고, 행여나 한국사회의 이면에도 그런 문제가 있다면 신속히 치유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북한은 지리,역사,과학,사상을 망라한 더 넓은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태도가 많이 아쉬운데, 북한정부가 북한인민을 변화와 교류를 감당할 수 있는 역량있는 사회인으로서 교육시키겠다는 의도가 안드로메다에 있는 것도 문제고, 한국과 북한이 대치상태로서 한국의 역량과 인식을 세계와 우주적인 관점이 아닌 북한문제에 묶어두고 있는것도 비극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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