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중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은 50%가 넘는다. 하지만 중도파의 대부분은 나름대로 정치적 신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좌우의 극단적인 대립이 보여주는 문제점에 대하여 감각적으로 반발하고 있는줄도 모른다.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현명해진 시민들도 많은데, 오래된 관점들에 대한 혐오감이 시민들을 중도적인 입장으로 몰아붙이고 있는줄도 모른다.
어느 티브이 뉴스에서 유명한 만화영화 주인공이 대통령과 닮은게 화재가 되었다고 방영하여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먼저 생각나는 것은 적재적소로 분산되어가는 시민들의 관점을 좌우 이념대립의 장으로 집중시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과 비공감의 관점이 새롭게 탄생하여 국민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행위에 대한 분석을 경제학의 주요 파라다임으로 내세웠던 미국의 경제학자 베커(Gary Stanley Becker 1930 ~ )는 차별집단에 대한 고용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이 지불하는 비용을 '차별계수'라는 개념으로 학리화(學理化)시켰다. 예를들면 저임금으로 고용해도 되는 흑인들에 대한 편견때문에 고임금으로 백인을 고용하는 기업의 행태는 극한 경쟁의 시대에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편견과 차별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여러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이념문제는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의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라고 해도 사실이 그렇다면 결국 그런것이 되고, 그렇다고 해도 사실이 아니면은 아닌것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곳에 채널을 낭비하여 호감뿐만 아니라 비호감까지 창출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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