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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9일 화요일

강화이론(Reinforcement theory)과 습관 / 한국의 대선결과

대충 한국의 대선결과가 드러났다. 문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신기한 것은 과거의 적폐에 대해서 청산의지가 없는 후보가 뜻밖의 선방을 했다. 한국인들이 아직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정의감보다는 이념감정이나 지역감정등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듯 하다.


언젠가 쉬운길로 갈려는 대중이 허황된 공약에 설득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오랫동안 관습처럼 행해졌던 부패의 습관이나 부정에 대한 불감증은 습관으로서 그리고 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부족함으로서 대중은 부정부패를 있어서는 안될 것이 아닌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듯 하다.

심리학에서는 강화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선악의 판단기준은 경험으로부터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예를들면 도둑질을 했는데도 발각되지 않고 끝나거나, 도둑질의 성공이 같은 패거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경험이 반복된 아이는 도덕적으로 둔감해져서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이론이다.

어느 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문제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무엇인가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고 나서는 양심에 시달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사실이었다. 인간 본연의 양심이 주는 고통을 '회개'라는 행위로 빠르게 해소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부도덕이 오랫동안 양심을 괴롭혀 이런 나쁜 행위를 다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비숫한 행위를 또 반복하였다. 한국에서 이념이나 종교자체가 적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부정한 일을 빠르게 합리화시켜준다. 반성할 시간을 주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시켜주기도 한다. 특히 정치적범죄는 그 추상성으로 인해서 무궁무진한 양심적 회피의 퇴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편이 잘못한건 알지만 저쪽이 더 나쁜 좌익이나 우익이기때문에 형평성의 원칙으로 계산을 해보니 우리의 부정부패는 조금 더 사소한 문제였다고 합리화시켜나가는 것이다. 어떤 심리학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경찰에 붙잡히는 것은 별거 아니다.' '퇴학 당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일반적인 가치관이 통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아무리 도둑질에 엄벌을 가하더라도 벌이 벌로서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채, 조금도 줄어들지 않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 아이들에 있어서 벌이 무거운 만큼 발각되지 않고 훔칠 수 있는지 어떤지의 스릴을 높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도둑질이라는 범죄행위를 더욱 더 부채질(강화)하고 마는 얄궂은 결과를 낳게 될지도 모른다.

도둑질을 줄이고자 한다면, 도둑질에 대해 벌을 엄중히 하기 보다는 도둑질 이외의 행동이 강화될 수 있도록 상점 간의 장치 혹은 협조를 이루어 나가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다.

- Chris Ravan 과 Jeudie Williams 공저 [Joy of Psychology]중에서 -

그래서 사회적 관심사가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앙드레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와 인연의 흐름

앙드레지드(Andre Paul Guillaume Gide)와 시몬느베이유(Simone Weil)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는 바람대로 젊은 실용주의자인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선결과를 한 고비를 넘기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어디서든지 그런 일들이 있지만, 대중이 잘 모르는 일의 현장에서 설득하고, 설득당하고, 치고받고 했던 일들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인연으로 생성되는 시간들이다. 최순실 사건이후 내가 줄다리기 했던 상대의 크기가 이것밖에 안되었나 하는 생각에 좀 허탈한 기분이 들어서 내내 실없이 웃으면서 지냈다.

중학교 1학년때 어느 군소재지로 전학을 왔는데, 주변의 모든 것이 안좋았으므로 위안을 받기위해 서점을 찾았다. 그 날 프랑스문호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이라는 책을 골랐고, 막 수입상영되던 영화 [갈매기 조나산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의 대본을 구입했다. 그리고 영화 [슈퍼맨]의 대본을 꺼내서 읽다가 하필 서점을 방문했던 국어선생님에게 들켜서 책 두권에 대해서는 칭찬받고 슈퍼맨대본에 대해서는 핀잔을 받았다. 뜻밖에 학교공부를 포기한 댓가로 책을 읽을만한 여유가 있었다. 서점을 나오니 길건너편에서 테테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신문배달하고 남은 신문을 버스터미널에서 팔고 있었는데, 어려운 처지의 여러형태와 부모님의 사랑을 아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제목은 [좁은문]이었는데, 그 책속에 [전원교향악]이 함께 끼어들어 있었다. 사촌지간인 알리사와 제롬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리사가 좁은문이라는 은유를 사용해서 설명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문'을 지나야 한다는 알리사의 설명이 있었다. 사실 [전원교향악]이 인상에 남았다. 장님인 제르튀르드가 젊은 여주인공이고 제르튀르드를 돌봐주던 목사(이름은 기억 안남)가 등장을 하는데, 제르튀르드는 수술로 눈을 뜨게 되고, 목사는 제르튀르드를 사랑하게 되고, 제르튀르드는 자신을 정말 순수하게 사랑했던 사람은 목사가 아니라 목사의 아들이였음을 깨닫고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다.

[갈매기조나산]은 주인공 갈매기인 조나산이 스승으로부터 비행법을 배워가는 장면을 명상적으로 구성했는데, 역시 책을 좋아하던 누이가 영화를 보았는데, 영상미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나중에 저자인 리처드바크(Richard Bach)의 책을 많이 읽었다. 리처드바크는 현실로도 푼돈을 받고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태워주거나 곡예를 보여주는 떠돌이 비행사로서 생활을 했는데, 리처드바크의 낭만적이고 명상적이면서 방랑적인 모습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안주하게 하지 못하는 생각을 만드는 시초가 되었던것 같다. 

하필이면 예의 국어선생님눈에 들어서 학교도서관일을 하게 되었다. 방과후에 책을 대출해주는 일을 했는데, 시골학교치고는 정말 근사한 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대출해주고 대출해가는 사람은 '나' 한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민법용어로 표현하면 '자기계약'을 한 것이다. 덕분에 이것 저것 많이 읽었는데, 똑똑하게 생긴 내 사수가 1년 선배였다. 이렇게 맺어진 인연때문에 선배를 따라 잠시 개신교를 다녔는데, 앙드레지드와 도서관과 개신교가 내 의식속에서 얽혀가면서 친근하다기보다 '잘 알 수 있는 세계'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연이란 참으로 신기하다. 이념문제로 고민하던 국가에서 이념문제가 인연이 되어 힘들게 살아가던 가정에서 현실적인 꿈을 꿀 수 없어서 공부대신 책만 읽다가 종교와 의식적으로 인연을 맺게되고, 먼 훗날 이념과 그 종교를 이용해서 '이상한 짓'을 하던 패거리들과 치고 받게 되고, 그렇게 치고 받던 내 자신의 심정은 눈이 멀었을때 무척 아름다울거라고 상상했던 세상이 막상 눈을 뜨고보니 실망스러운 세상이었다는 제르튀르드의 자괴감 이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념문제해결을 위한 '실용주의 정치'를 이야기하는 내 자신, 그리고 앙드레지드의 나라에서 연상의 사촌인 알리사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진 제롬과는 달리 이룰 수 없어 보이는 사랑을 이룬  실용주의 대선주자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고, 다음날 한국에서도 실용주의 정치를 위한 한 걸음이 시작되는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이렇게 인연이 맺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고 즐거운 경험인것 같다.  

2017년 5월 7일 일요일

허영의 시장(Vanity Fair)과 한국대통령

17세기 후반, 존 번연이란 시골의 대장장이가 아내가 시집올때 가지고 온 종교서 두 권을 읽고 감동을 받아서 열렬한 신앙심이 샘솟아 신앙을 전도하였다. 얼마 후 왕정복고때 왕당파의 미움을 사서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옥안에서 [천로역정/天路歷程/Pilgrim progress]이란 책을 쓰는데, 그 책속에 '허영의 시장'이 나온다. 그 시장은 모든 종류의 허영을 판다. 예를들면 집,토지,지위,명예,벼슬,왕국,색욕,환락,쾌락,창부,매파,아내,남편,아이,식모,생명,피,육체,영혼,금,은,보석등을 판다.

종교적인 진리이자 영적인 진리를 생각하는 종교의 입장에서는 모든 현실적인 것들이 허영으로 비추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그 허영을 쫒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일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관점을 그 안에 묶어두면 그 안에서 또 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이다.   

가끔 돈이 안되는 일에 정신과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일이 많은데, 요즘들어 부쩍 가까운 지인들이 한마디씩 나를 탓한다. 공통적으로 '소유'의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서도 많이 '소유'하고 있지 못한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연많은 과거에 얽힌 일들의 매듭을 풀기위해 나름 애쓰는 중에 '하고자 하는 일'은 할 수 있어도 '갖고자 하는 일'은 뜻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본능적으로 갖고자 하는 마음에 휩쓸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는데, 18세기 한국의 대표적 실학자였던 정약용 선생이 인정한 인간이란 혈기론적인 존재(血氣論的 存在/ A vigorous existence)라는 한계는 부정할 수 없는듯 하다.   

돈이 사람을 따라야지 사람이 돈을 따르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 욕망이 강하면 하는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부글거리는 권력욕구나 재물욕구때문에 사회를 퇴보시키는 인재들이 많은데, 이념이나 종교가 그런 부작용에 조력하게 되어 하고자 하는 일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한때 종교, 특히 개신교를 무척 혐오했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개신교를 신앙으로 삼은 이들에 대한 생각은 별개의 문제다. 개신교신앙인들중에 마음이 열려있고 그래서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한 편으로는 모든 사고가 종교적으로 경화(硬化/ solidify)되어버린 지인들이 공감능력도 없고, 여러가지 지식도 없는 그래서 생각도 없는 말들을 왈왈 거리고 가면 그렇게 혐오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때 독실한 크리스천인척 하면서 정보기관등을 동원하여 온갖 적폐질을 하고, 아둔하게 정부를 운영했던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아니면 추대한 무리들이 설상가상으로 이념적으로도 경화된 모습을 보면서 좀 끔찍했다. 북한과 같은 적폐적 현실이 기어이 한국에서도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이쯤에 대통령 임기가 그나마 5년이란 사실은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비숫한 일이 5년 더 있었다.

고대 로마의 갤리선에서 노예들이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데, 감독이 노예들에게 말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알려주겠다. 먼저 좋은 소식은 오늘 여러분에게 맛있는 점심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선장님이 오후에 수상스키를 타시겠단다."

일단은 공약에 속은 국민들이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내 자신도 매번 겪는 일이지만 쉽게 갈려다가, 말하자면 맛있는 점심뒤에 선장님의 수상스키타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깜빡 깜빡 잊는다. 보수의 공약뿐만 아니라 진보의 공약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장미빛이거나 지나치게 극단적이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일이 아닌가 한다.

이념이나 종교, 그리고 정치적 자세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국민들의 속성은 정신적인 탄력성이나 인내심을 잊어버린 상태다. 한 편으로는 욕망의 과격한 발호(prevalence)로 생각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초유의 퇴보정부인 북한, 푸틴을 장기집권하게 만든 러시아, 에르도안을 독재권력으로 만든 터키,프랑스의 극우대선주자인 르펜을 함께 생각하는 이유는 처한 현실과 국민의 속성중 공통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중우정치(衆遇政治 / mobocracy)는 고대 그리스부터 민주주의 국가의 고민이지만 좋은 정치인은 최대한 중우정치의 욕망을 자제해야 한다. 백성이 우매하면 계몽을 해야지 욕망을 이루기 위해 대중의 속성을 이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처럼 뽑고 나니 후회스러운 상황이 된다면 대통령도 국민도 냉철한 마음으로 자신들을 돌아 볼 일이다.   

2017년 5월 4일 목요일

김정은을 deal with 하다


타임지표지에 한국의 대선주자 기호1번이 보였다. 한국내에서는 이념적 프레임으로 오인받을 수 있겠지만 통일문제나 남북협력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보다 더욱 발전된 길을 갈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만하다. 상대성의 원칙을 생각해볼때, 북한에 대해서  무용한 적대적감정을 덜 표현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있는만큼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 연출 될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여러가지 많은 글로 이념이나 종교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나의 글을 통제하거나 신변을 통제할려고 해왔던, 그리고 해오고 있는 집단이나 기관은 나를 실제로 통제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 생각은 그들 생각이고, 내가 알고 있으면 통제받는 것이 아닌데, 기분 나쁜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내 생각의 프레임은 평화와 협력이란 관념이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쓸모없이 기싸움꾼들이 걸어오는 시비를 대응하는 일이 귀찮아서 모른척 하고 사는 것이지 마음의 앙금은 가라않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하면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유일한 '한 방'인 핵무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동등한' 입장을 추구할려는 이유인 것은 확실하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국가가 독립된 지위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벌어질 치킨게임의 한 방이 필요한데,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를 이용하여 동등한 입장을 추구할려고 노력하는 중인 것이다. 아마 한국의 문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 위원장을' 잘 다룰 수 있다'고  한 타임지 기사는 북한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하여 북한의 상대적인 적대감을 축소시킬 것이라는 의도로 표현된 기사말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실 마음을 잃지 않아 끌려다니지 않는 쪽이 상대방을 다룰 것이지만 가능한한 동등한 입장으로 협상테이블로 '초대해야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좀 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지도자들의 마음 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 정부에서 그랫듯이 쓸데없는 이념과 같은 정신적 프레임으로 기싸움을 할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본바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서로 다룰려고(deal with)하지 말고 협력할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이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A Kierkeggard 1813 - 1855)가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 말이 생각난다.

"자기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절망에 다름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가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절망에 다름아니다. 남북한은 쓸데없는 기싸움을 하지말고 협력해야 한다. 

2017년 4월 29일 토요일

공부법과 사법개혁

오래전 같은 직장 동료가 객관식시험답을 잘 찍는 방법에 관한 책을 냈다. 바른 생활을 한다기보다 어렸을때부터 메뉴얼대로 사는 방식에 익숙치 않았던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 책을 읽을 시간이면 정정당당하게 공부해서 시험점수를 올리는 것이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사회에 통용되는 방식이라는 생각에 이해는 안되지만 이해는 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랫동안 메뉴얼대로 살지 않았는데, 여러가지로 매우 고달펐다.

특허관련 일이나 창업을 염두에 두고 실용적인 공부를 열심히 해볼까 하는 생각에 공부법에 관한 책을 수십권을 구입했다. 예상했던대로 자기극복에 관한 책이나 공부에 관한 책은 일본인들이 쓴 것이 많았다. 오래전 일본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을 했을때 한국출신 무도인인 최배달(최영의)선생이라는 대답이 많았음을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은 '극의(克意)'의 마음인 사무라이정신에 대한 애정이 많은듯 하다. 공부방법에 관한 책을 쓴 저자들은 일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사법시험에 합격한 인재들이었는데, 일본은 독일로부터 판덱텐식 법체계를 받아들였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법체계뿐만 아니라 사회조직의 운영메뉴얼까지 받아들인 처지라서 일본인이 쓴 공부법에 관한 책이 한국의 수험문화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짐작할 수 있겠다.


항상 일본인들의 심중에 깔려있는 기계적인간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이 그런 일본의 문제를 아직 해소하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유감이다. 혹자는 노벨상수상자가 많은 일본이 교육이나 창조적인 과학발전에 문제가 없는듯 하다고 말하지만 일본은 창조적과학연구와 자신에게 어울리는 겸허한 위치와의 부조화가 노벨상과 실용성의 부조화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위치'라는 표현은 일본인들을 적나라하게 분석한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R.베네딕트 저]에 나온다. 일본인들의 기계적 계층의식과 다양성으로 가는 길을 막는 사회분위기는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알려준다.

한국의 인권의식에 치명적이었던 유신헌법의 초안을 박일경이라는 법실증주의 헌법학자가 만들었다. 법실증주의라는 것은 법이 깊은 곳에 내포하고 있는 사회나 인간의 기본가치보다 법조문 자체를 중시한다는 법이념인데, 이를 따르면 '악법도 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독일에서는 나치정부이후에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은 반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은 사회의식이 계몽이 안 되어있는 한계탓에 법조계가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분야로 남는데 많은 기여를 한듯하다.


몇일전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저지를 시도한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70을 바라보는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했다. 보수적인 일본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원인이 있다. 공부법서부터 사법조직의 운영이나 심지어는 재판활동중의 판례(case)까지 일본의 것을 참조해야 하는 한국의 사법현실 자체가 '적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생각의 방식이 많이 다른 젊은 판사들의 개혁적인 생각은 계층제분위기가 강한 사법조직안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다. 아마 늦은 나이에 암기식, 기계적공부를 해야하는 내 자신 만큼이나 사법부는 답답한 현실에 놓여있는듯 하다. 

2017년 4월 22일 토요일

한국중소기업의 그때 그 사람들

http://v.media.daum.net/v/20170423004448933

배는 항구에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몇년동안 고시공부나 공무원시험을 보아서 합격한 인재들이 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이제 '떠나가는 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태풍의 피해를 입지않는 거대한 방파제가 보호하는 새로운 '정박지'로 숨어버릴 것인가는 한국사회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해 찾아간 중소기업들이 정말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였다는 사실은 크게 공감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었고, 아재들이 젊었을때 그랬던것처럼 아직도 권위주의와 경쟁의 습관에 시달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좀 신기방기한 것은 고위직관리자나 대표보다 하층관리자들이 권위를 내세우거나 해서 일터를 암흑세계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는데, 그럴때마다 성장기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젊은 시절에 무슨 일을 했는지, 건강상태가 어떤지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다음은 50대 근로자나 관리자들의 몇가지 사례인데, 왜 중소기업이 마음 편하지 못한 곳이 되었는지 잘 이해하게 해 준다.

1. A씨는 학교를 다닌 형편이 안되어 직업학교를 다녔는데, 기숙사담요로 가로막힌 옥상에서 매일 군기교육과 몽둥이질로 방과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의탁할 곳이 없어서 찾아간 직업학교는 무서운 곳이었고, 입사한 회사에서 실무기술을 배우는 동안 욕과 구타를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A씨가 말하기를 유명한 H공대 출신의 젊은이가 같은 회사에 입사를 했는데, 그 젊은이에게 A씨가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는데, 아마 그만두었어도 문제가 되는 것이고  견디고 함께 간들 비숫한 기계적 인간으로서의 모조품이 만들어졌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2. B씨는 꽤 잘나가는 중소기업의 대표인데, 크게 성공한 사례이다. 어렸을때 부친이 시골 부자집의 마름(머슴,하인 / A farmhand)으로 천대를 받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신분이 없어진 시대였지만 고착화된 시골의 분위기는 떠나지 않으면 머슴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B씨는 분노의 젊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고학으로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를 설립했는데, 가망이 없어보여서 동업자들이 모두 떠났고,  혼자 고군분투를 하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회사가 크게 성장하였다고 한다. 고생이 뭔지를 아는 B씨는 직원들의 처우를 구글(Google) 못지 않게 해주는 것이 목표지만 새로 시작한 사업에서 대기업과 경쟁하느라 역시 미래가 안보인다고 한다. 대규모경제의 법칙에서 대기업에 밀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B씨는 성공하자마자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에 전망이 좋은 거대한 자택을 마련해서 그때 그 사람들이 다 올려다보도록 했다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잘못했던 것 같다.

3. C씨는 선량하고 마음이 약해보이는데, 늘 눈에 살기(殺氣 / A thirst for blood)가 있었다. 항상 신앙을 가까이하며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C씨는 군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복종적이다. 하지만 그 참는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동료들에게 섭섭한 일을 많이 해서 동료들이 안 좋아하는듯 하다. 자신이 군에 있는동안 구타와 욕설을 당하면서 하급자생활을 보냈는데, 상급자가 되니 구타와 욕설이 없는 군대가 되었다고 몹시 섭섭해(?)했다. 그 때 그 시절의 고통을 해소할 기회가 없어진듯 했다.

4. D씨는 중간관리자인데, 직원들에게 매몰차게 대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본결과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항상 열등감에 쌓여 있었다. 그 열등감을 권위를 내세워 회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권위주의정부시절의 박정희전대통령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비숫한 사람이 되고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는데, 3천만이 아닌 30명만 자신의 밑에 있어도 30명의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5. E씨는 고객을 응대하는 회사의 중간관리자다. 항상 고객에게 비굴한 웃음을 띄며 응대하는 것에 대해서 굴욕감을 느꼈다. 새로 들어 오는 신입사원들에게 그런 마음을 해소할려고 하니 신입사원들에게 고객만족을 핑계삼아 매우 권위적으로 군림하였다. 직원이 마음 편하고 자연히 웃는 얼굴이 되어야지 고객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충고했다. 이해는 하지만 뭔가 말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었다. 아마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듯 했다. 하지만 '내가 당한 것 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심정을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6. F씨는 60대인데, 매우 부자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특수한 부대에 입대를 했다고 한다. 그때 많은 구타를 당했는데, 그 트라우마때문인지 항상 마음이 온전치 못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폐인취급을 했지만 그다지 인격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근근히 일자리를 놓지않고 있었다. 역시 신입이 오면 F씨와의 싸움을 한차례씩 거쳤는데, F씨는 이것이 일상화되었지만 신입들은 색다른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다.

7. G씨는 70대의 대표인데, 나름 지혜롭게 회사를 운영할려고 노력한다. 신입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단 회사의 마당을 청소한다. 그리고 신입이 마당을 가로질러올때 서로 인사하고 대화를 한다. 이 신입사원이 청소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보면서 신입의 인격을 평가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노인이기때문에 늙으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드리는지 집중해서 질문해본다. 혹시나 회사를 가부장적으로 운영해나가는게 아닌가 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참 좋은 대표분같았는데, 문제는 50대의 중간관리자가 자신이 '휘어잡을 수 없는'신입이 오면 퇴사시켜버린다는 전통이 있었다.

8. H씨는 어떤 업계에서  이를 갈며 성장했다. 나중에 나도 이런 업체를 만들어서 인생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각오로 회사를 차렸다. 역시 항상 박정희전대통령의 카리스마를 자신에게 투영시킨 세대였다. 매우 권위적이고 부하직원들을 무시했다. 그 문제를 지적하자 자신의 마음을 송곳처럼 찌른다고 나를 너무 싫어하였다. 마음이 아픈 것은 부하직원들이 대부분 배신하였는데, 본인도 본인에게 배신당하여 사업이 실패하고 길을 걷다가 나를 만나면 다른 길로 피해서 돌아가기 일쑤였다.

9. I씨는 조그만 생산업체의 대표인데, 수출도 한다. 영어를 전공했었기때문에 무역에 유리하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절 자신의 특기인 영어를 이용해서 작은 제조회사를 차렸다. 대기업이 손대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찾아서 성공했다. 이제 회사를 혁신을 하고 성장시킬려고 노력하는데, 창업맴버로 함께 한 50대들이 그 길을 막고 있다. 권위와 밥그릇싸움에 몰입하여 똑똑한 신입이 오면 내쫒고 복종하는 하인만 신입으로 받아들인다. 창업맴버에 대한 동지의식과 회사의 미래사이에서 항상 갈등이다.  

언젠가 창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유심히 살펴보는 문제인데, 한국사회의 지나간 역사가 주는 트라우마는 매우 큰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정경유착이란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권력이 기업에  대해 자율성을 억압하는 전통이 컸기 때문이다. 성장할려면 유착해야 하거나 초인간적인 정신으로 독립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유한킴벌리같은 회사는 초인적인 윤리의식으로 떳떳한 회사를 유지해나가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더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는 무엇인가 플러스알파가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공기업이 최순실의 기부금요구에 떳떳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착이 필요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착한 회사는 그래와서 성장을 한 것이고.

한국의 쓸모없는 정치적 정실주의, 패거리문화는 내 자신을 온전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정신적인 억압을 하였지만 항상 그렇듯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항상 스포츠에 특기를 가지게 만든 점에 대해서,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공부하게 해 준 지난 정치지도자들에게 역설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여길 필요가 있다. 몇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원인과 결과는 시차를 두고서 반드시 연계가 되어 있다. 일본사회가 일몰국가(Sunset nation)가 되어가는 이유는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전통때문이다. 어떻게보면 한국사회보다 일본사회는 그런 적폐가 더 심한듯 하다. 한국에서는 보수가 무너졌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역병처럼 국가의 주요세력으로서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적인 사회통합과 협동의식을 주제로 한 내면적인 사회통합의 결과는 다르다.

한국의 다음 정부부터는 인간에 중심을 둔 정치를 해야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을것 같다.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Sub enemey of Korea / 부적(副敵) 북한

오래전 뜻하지 않게 물려들어간 이념문제로 인한 오해때문에 힘들어지자 문제와 인과의 근원을 찾아다니다 결국 대통령에 관심이 귀착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념적 성향과 종교적 성향으로 발생한 정책의 오류를 직관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많이 유익했다. 그것은 북한의 김위원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집권적 권한을 가진 정부수장일수록 책임의 원인은 크게 마련이다. 국민의 지지를 못 받아서 그렇지 내 생각이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보다 못할게 뭐 있겠느냐 하는 배짱으로 밀고 나갔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끌려 들어간 것이다.

황장엽 북한 전 외무상을 망명시킨 한국 공작원인 고 이연길선생을 만난 자리에서도 도대체 황장엽씨가 왜 망명 결정을 했을까.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황장엽씨가 고난의 행군시기에 대한 책임문제로 갈등관계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과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수직관계의 정점(the top)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그 아래서 일어나는 일이 별것 아닌것 처럼 느껴지는 성향이 있는 법이다.

북한은 한국의 주적(主敵 / main enemy)일까?

이번 대선에서도 이념문제의 표상인 북한에 대한 주적논쟁이 어김없이 이슈화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북한은 한국의 주된 적이 될 수 없다. 미래를 위한 실용적인 해석으로도 그렇지만 곤란한 처지에 있는 국가를 상대적, 적대적 목표치로 삼아서는 안될 것 같다. 한국민들의 경계심섞인 관점을 북한에 묶어두면 더 큰 문제에 대한 관심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종교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이유는 이념이나 종교가 단순히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다. 발전적 사고를 억제하는 관념이라는 생각때문이다.

보수적 성향이 과거지향적이듯 한국 보수진영의 정신은 대북문제(versus North korea)에만 얽매여 있는듯 하다.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가 대북문제를 포함해야 옳다는 생각이다. 70년을 한결 같은 말을 해서 국민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것 같다. 혁신과 멀어진 북한이 그런 고민을 가장 크게 안고 있고, 동북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