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현 정부의 성격을 그로테스크하다고만 표현한다. 특별히 좋다 나쁘다라는 감정은 없다. 그냥 혼란스럽다. 아무리 분석을 해봐도 현대 세계에 존재하는 세계관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면이 있다.
검찰의 내 집단성이나 종교의 내 집단성은 사회학적 관점을 가지고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국정운영과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의 해석할 수 없는 행태는 과학과 철학이 발전하기 이전의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일 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인 현대국가에서 국민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는 비정형성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심하면 피안의 세계를 향해서 모두 기도하고 독극물을 마시고 자결하자는 교주의 계시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국민 교육의 개선이 심각하다는 생각도 든다. 열심히 공부(만)해서 사법과 행정 두 분야의 지식을 익힌 인물들이 국가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지 경험했다. 과거에 정치철학도 없고 공리성도 없는 대통령이 종교와 합체해서 국가를 혼란스럽게 할 때만 해도 위기감이 좀 덜 했다. 그 당시 정보기관 문제와 겹쳐서 나는 그런 인물들의 간사스러움을 병적으로 싫어했지만 문제점을 볼 수가 있었던 것이 한 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
국민 전체와 국가 전체의 관점으로 볼 때 진보와 보수는 각 장단점이 있고, 함께 존재하여야 하며 지나치게 편향적인 관점은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국가 목표에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부터 보수 쪽에서는 인물 검증을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계단 형태의 괴멸적인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자주 언급했지만 나는 한국 국민의 관점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무척 존경했다. 가장 성실하고 사명감이 있으며 진정으로 나 같은 최하층민들의 편에 서 있을 수 있던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제적, 정치적인 근대화에 힘쓴 지도자다. 내가 대통령을 보는 관점은 이 두 분이 척도다.
중세시대에 서구 유럽에서는 종교적인 세계관이 강해서 추상적인 세계관이 강했고, 더불어 인과율적인 세계관이 없었다. 말하자면 현실의 세계와 피안의 세계가 분리되어 현실의 문제점을 그다지 생각하지도 않았고, 책임을 질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계 자체가 부패와 사기의 세계였다. 예를 들면 죄악을 저질러도 기도하고 회개하여 죄의 사함을 받으면 노력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었던 시대가 중세 시대이다.
그러나 뉴튼의 시대부터는 세계는 절대적이고 원인과 결과가 뚜렷해졌다. 신이 개입하면 오히려 혼란스러운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밝아졌다. 곧 이어 영국과 프랑스의 계몽주의가 시작되었다.
- [ BILDING ] BY DIETRICH SCHWANITZ을 재구성 -
한국 국민들은 정치적으로도 근대화된 삶을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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