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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5일 토요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을 것 같다

일은 적당히 즐거워야 한다. 일이 노역이 되면 일하는 삶은 의미가 없어진다. 일하는 순간도 의미가 있고, 성취한 결과도 의미가 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Fromm, Errich, 1900.3.23 - 1980.3.18)은 건강한 사람은 충분히 사랑을 하고, 창조적이고, 발달된 이성의 힘을 가지며, 세상과 관련을 맺고,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살며, 자아와 운명의 주체 또는 행위자라고 말한다. 프롬은 건강한 성격은 생산적인 지향성을 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려고 하며,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노력함으로서 자아를 실현한다고 말한다.

간혹 일터에서 노인분들과 갈등을 겪는 일이 있었다. 이해를 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애증섞인 충돌이 있곤 하는데, 요즘같은 노인분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노인과 관련된 문제는 많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듯 하다. 간혹 대선후보들이 노인분들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여서 역풍을 맞기도 하는데, 노인이 많아지는 한국사회는 이제 당위문제이기 이전에 현실문제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노인문제는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 현실적인 국민인 노인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국가와 사회에 참여하여 당신들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인이라서 문제가 있다." 아니면 "젊고 경험이 없어서 문제가 있다." 는 사고와 비평은 사회의 또 다른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간혹 노인보다 40,50대가 노인문제를 일으키는 당사자인 경우도 본다. 아마도 이상과 현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연령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분기점이기도 하는듯 하다. 내 경험으로는 꼰대심은 이미 마음 한 구석이 붕괴되거나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한 노인분들보다 중장년층이나 자신이 아직 젊다고 착각하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노인분들이 심했던 것 같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라는 표현이 아니고 순리를 지나치게 거스르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과거는 참 나쁜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공리적(共利的) 사고나 협동적 사고를 갖기에는 정치현실이나 사회현실이 많이 나빴다. 노인분들과 충돌을 할때 노인분들이 항상 하는 말씀이 있다. 우리 세대가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더욱' 발전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민주적 정치일수도 있고, 더욱 지고하고 다양한 자아실현의 가치일 수도 있다. 노인분들이 이루어 놓은 경제적 바탕위에서 젊은이들과 노인분들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가장 정상적인 것인 것이다. 이제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대접이나 받아야 겠다고 생각할때가 진짜 노인이 된 때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노역'이 아닌 '노력'으로 노년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일이다.

이제 서서히 노인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근로의사가 있는 노인은 일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옛날 노인분들은 호환(虎患)이나 마마보다 무서운 '노역'에 시달려 온 이유로 쉬어야 할 때를 찾는다. 만약 예를들면 요즘같이 연장근로를 포함하여 근로시간이 많은 일자리, 그래서 근로자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노인근로자를 6시간 정도의 무리하지 않는 단시간 근로자로 고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분들과 기업과 국가가 모두 이로울 것 같다. 일터는 노역이 아닌 자아실현의 장소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젊은이들과 노인분들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듯 하다. 항상 언급하지만 철학이 없고 경쟁만 있는 사회의 결말은 퇴보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지 행복을 추구할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그것들이 왜곡되어 전쟁이나 인간발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건 지혜롭지 못한 실패인듯 하다. 언젠가 막연하게 "이 시련이 지나면 행복해지겠지"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쥐어짜는 사회가 한국사회고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사회의 모습인듯 하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퇴보하는 현실은 경쟁적 교육이 만든 아니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더 철학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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