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많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카카오톡이나 밴드등으로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벌써 그럴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친구야 옛추억을 생각하며 어쩌구' 하는 말은 질색을 하면서 싫어한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학창시절 꿈이 없다기보다 가정환경이나 허약한 신체때문에 꿈을 억압받고 살아온 반동으로 나이가 들어서 할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금 덜 늙는다는 소리를 듣긴하는데, 과거를 돌아보기에는 뼈아픈 일만 있으니 돌아봐봤자 별로 좋은 일이 없는 처지인것 같다.
그시절 학교에는 세부류의 친구들이 있었다. 공부를 잘 해서 학교를 와야 기쁨을 느끼는 친구들, 그래서 동기들이 성적때문에 손바닥을 맞을때 안도감과 에너지를 살릴 수 있는 친구들, 공부를 못 하니까 주먹과 깡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걸로 한 몫하여 에너지를 살리는 친구들,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없어 존재감이 없는 친구들, 실제로 존재감이 없는 친구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을 보니까 잘 생겼는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소수의 아이들과 존재감이 없는 다수의 아이들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다. 기계적 학습과 성적지상주의 교육이 시차를 두고 효과를 나타낸듯 하다. 나쁜 일도 파도처럼 밀려오고 좋은 일도 파도처럼 밀려 오듯이 인간은 상황이나 환경에 몰입되어 더욱 더 깊이 '그 길'로 나아가기 마련인듯 하다.
한때 학교에 가기 싫었던 적이 있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 전학을 가서 적응이 안되는데 몸이 약해서 항상 에너지도 눌려 있고 진도범위가 전학교랑 달라서 시험성적도 안좋고 해서 어디 좋은 일이 없었다. 그 상황은 점점 깊어졌다. 학교가기 싫어서 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 마음이 이해되고 남았다. 서로 비교하며 에너지를 얻는정도가 심한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어려움이 대단할 것 같았다. 자발적인 마인드를 찾아서 이겨나가면 좋은 자산이 될 듯 하지만 실패하면 큰 부담이 생길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 또는 이념, 종교등을 생각하며 느끼는 바는 극단적이거나 깊이 빠져드는 상황을 피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원래 인간이란 가던 길로 몰입하는 습관이 있어서 가지 않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 한다.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 하는 안전의 욕구 탓인듯 하다. 귀신을 두려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고 어느 길에 익숙해지면 속칭 전문가가 되어 지극히 보수화가 되는 현상은 자연스럽기는 하나 피해야 할 상황인 것 같다. 안주하게 되고 빨리 늙는 문제가 있다. 믿는 것, 재능, 금전, 명예, 권력, 모든 것들이 냉정함을 잃고 우둔해지면 몰입이라는 명분으로 찐득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올라가야 할 저 높은 곳보다는 끌려다니지 않는 내 마음의 중심을 찾는 것이 더 힘들고 소중한 일인듯 하다.
한국사회가 겪어 온 일, 그리고 지금 미국사회가 겪어야 할 일, 냉정함을 잃은 대중들의 판단 이 모든 것들은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로 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오늘 우는 자 내일 웃어야 하는데, 가진자는 더 갖게 되고 잃은 자는 더욱 쪽박을 차게 되는 미래는 좋은 것이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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