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동안 이념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정부수반의 성격과 그에 비롯된 기이한 정책형성과정(초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을 인지하고는 가슴은 삶은 계란을 먹을때 소금대신 치는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던것 같다. 더불어 정부수반들의 살아온 과정이나 인생 행로에 있었던 여러 사실들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역시 삶은 계란이었다. 많이 아쉬운 시간들이 보인다. 조금 더 많은 공부에 의해서 합리적인 시간들을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더 애민(愛民)을 위한 생각으로 준비된 공리적인 시간들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든다.
그날 이후 여러정부수반들의 탄생에 여러가지 영향을 끼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신타파와 과학기술국가, 새마을 운동등의 실증적인 정책사건들을 창출해가며 정치를 했던 생각이 난다. 일단 논란이 될 수 있는 여러가지 가치판단(예를들면 권위주의 정부의 문제점같은)을 배제시키고 생각해보면 5,16군사쿠데타 당시 그는 젊었고, 국민은 무식했으며 국가는 가난하고 해서 무엇보다 실증적인 국가운영과 분위기의 상승이 필요한때였던것 같다. 거기다 40대 젊은 지도자의 기질이 반영이 되었으니 지난 10여년같은 퇴락적인 상황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마저도 말년에 참을 수 없는 장기집권의 권태와 퇴락적인 분위기를 본인도 알고 어쩔 수 없는 시대를 맞게 되었는데, 당시 비서실장에게 임자는 (비리를)얼마나 해먹었냐고 묻자 비서실장은 자기는 안해먹었다고 대답하고 대통령은 요즘 안해먹은 놈이 있냐고 반문함으로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퇴락의 분위기를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통종교던 유사종교던지 그 건강치 못한 상상력들이 국가정책에 반영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종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국가와 같이 종교가 국가의 근본가치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많은 보이지 않는 상상력들과 권력이 결합하게 되면 퇴락의 길이 가속화되는 문제가 생긴다. 원래 모든 종교는 '비움'과 '버림'을 근본 가치로 내포하고 있는것과는 달리 권력과 결합하면 확신과 믿음이라는 명분으로 매우 복잡하고 비릿한 상상력들이 난무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은 저서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는 관찰 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고,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국가정책에 반영시켜 몽환적인 시간들을 보냇으니 어떤 해답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고 그 허점의 사이를 사적이익(私的利益)들이 비집고 들어와서 부패로 얼룩진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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