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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8일 토요일

국정원장의 혈기와 상대성

나는 정보기관과 유사한 점이 있는듯 하다. 무엇인가를 관찰분석 하면서 자신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성향이 있다. 아마도 사사로운 일에 물려들어가면서 생각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위한 방편인듯 하다. 흔히 세간에서는 기(氣)를 빼앗긴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싸움을 위해서가 아닌 현명한 생각들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함께 공감하는 부분인지 나도 모르겠다.


남 전 국정원장에 대해서는 한때 생각이 많았다. 2014년 국정원장이 경질되는 날, 내 구글블러그의 표면적인 문제(무엇인가에 의해 통제되어 왔다)가 정상화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국정원이 개입한 문제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지만 상대의 수가 넘나들면서 아주 복잡해지는 문제가 있는 곳이다. 그럴때 가장 현명한 결론은 단순한 자신의 신념으로 결론 짓는 것이다. 이상한 짓만 널려 있던 전 정부에서 이상한 일에 물려 들어가서 그나마 건강한 정신으로 버텨온 배경에는 탈이념이라는 신념과 스포츠로 인한 단순한 생각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구글 블러그는 한글로 씌여져 있음에도 세계의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고 있는 점은 대중성이 없으면 알려질 수 없는 비철학적이고 비이성적인 한국내 분위기의 섭섭함을 상쇄하고 남았던 것 같다.   

군인으로서의 기백이 넘치는 전 국정원장의 인터뷰를 보고 이해되는 점은 이념적 성향이 강한 북한이 존재하는 한, 이념적 성향이 강한 정보기관장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것이고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북한이 존재하는 한, 군인 출신인 정보기관장이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듯 하다. 남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이념적 성향이 강한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전 국정원장의 표현대로 소설인지는 모르지만 최씨의 존재에 대해서는 몰랐고, 최씨의 힘으로 경질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만큼 국정원의 능력에 대해서는 저평가 되어있는듯 하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총을 들고 들어갔을 거라는 표현처럼 국정원의 인텔리전트한 기술(ARTs)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못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그 분야에 대해서는 대포폰을 여러개 쓰던 최씨가 한 술 더 떴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도 통화간섭이 싫어서 공중전화를 많이 이용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통화내용이 문제가 되든 안되든 사생활이 간섭 당하는 것은 자유국가에 살아가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념적 성향에 대해서는 꾸준히 생각을 내어놓고 있으니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국내정치에 이용당하고 이념에 휘둘리면서 한국정보기관은 무력화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국정원 직원의 자살사건때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국익을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정치가들의 정치적 술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이념에 휘들리면 무기력해진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한 장면인듯 한데, 파탄이 난 국가운영을 보여주는 북한이나 그런 북한에 상대적인 이념을 수호하면서 함께 경직되어야 하는 한국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통일보다는 남북한의 선의적인 상호협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 깊어진다. 혈기, 집착, 투지로 힘을 얻기에는 남북한이 너무 멀리 와 버렸다.

2017년 1월 22일 일요일

은유와 상상력 그리고 비합리적 정치

http://zum.com/#!/v=2&tab=home&p=0&cm=popular&news=0532017012235638241&fm=mny

현 대통령이 '주어진' 능력안에서 최선을 다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본인이 아니고서야 그 내면을 어찌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선이전부터 사회의 저변에서 지지자들을 만나보고서는 그 비합리성과 맹목성 그리고 무지함에 놀랬지만 대세를 거스를수 없음을 느끼고는 교정하기 위한 문제를 계속 지적해왔던것 같다. 중간에 어느쪽인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내 이념적 성향을 확인하고자하는 정치공작이 몇차례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 거론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논객의 입장에서 그냥 저냥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는 정도로 모른척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대통령 초창기에 얼음공주 엘사가 어떻고 하는 지지자들의 표현이 나오는데, 드디어 올 것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다른 인간, 능력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정치적 술수에 능하거나 아니면 애국애족의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권력욕에 빠져든 하나의 인간으로 보아야지 반인반신의 모습으로 숭배하는 이땅의 민중들이 스스로 발등을 찧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은 참으로 오래갔다. 너무 힘들어서 미륵이나 구세주의 재림을 구하는 민중들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중은 그렇다치고 교육받을만큼 받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간간히 저질러진 인사참사현장을 보면서 이 나라는 정치적 통합체가 아니고 종교적 통합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종교 이전에 종교적 상상력과 은유가 지배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생각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길이 열릴것 같다.  





2017년 1월 21일 토요일

모든 꼰대의 길은 세라토닌으로 통한다

이번 최씨사건과 관련해서 물고 물리는 고위직들의 탐욕적인 내면세계, 그리고 차기 대권을 생각하는 주자들, 그리고 구질서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보수적 정치인들(이건 매우 나쁘다)을 보면서 공리(共利)를 생각하지 않는 내면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관심이 갔다. 한편으로는 젊은이들이나 중년이상의 연장자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사회의 다른 부분이라고해서 수직적인 사고나 권력지향적인 마음은 예외가 될 수 없는 현실을 많이 생각한듯 하다.  

상대적인 지위에 대한 관심이 뇌의 진화에서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가정은 일상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집단내의 지위에 반응하는 신경생리학적 과정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예들들어 집단 내의 지위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라토닌(기분과 행동을 통제한다)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행복감을 느끼면 세라토닌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고 한다. (주로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프로작은 뇌 속에서 세라토닌의 집중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집단내의 지위와 관련이 있다. 지위가 떨어지면 혈장 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반대로 지위가 올라가면 그 수치도 올라간다. 예를 들어 테니스 경기에서 이긴 사람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지만 진 사람은 떨어진다. 세라토닌과 마찬가지로 테스토스테론 분비는 집단 내에서 높는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 한다.

- Robert H.Frank, LuxuryFever, New York : Free  Press, 1999. Chapter 9. -

야망, 권력, 지위, 경쟁, 영향력 그리고 이것들을 가진자와 그 밑에서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지키려는 자, 쉴새없이 경쟁해야 하는 학교교육의 현실, 그리고 사회에서의 경쟁,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너무 바빠죽겠다고 이상한 소리하고 이상한 짓을 했던 최선생, 그리고 이런 심리를 해석하고 있는 내 자신이 모두 세라토닌의 분비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것 같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렇게 얻어진 쾌감이 추락할때는 날개없는 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타적이고 공리적인 삶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가진 자 잃고 이긴자 지는 날이 있다는 생각, 행복한것같은 생애도 죽음으로 끝맺는다는 사실을 알면 세라토닌의 분비에 휘둘리는 인생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2017년 1월 16일 월요일

고립국으로부터의 탈출 / 하이예크

언젠가 시골의 근로현장에서 일한적이 있는데, 도시의 근로현장과 많이 달랐다. 고립국을 보는 느낌이랄까. 점차 내적으로 침착해들어가는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북한인민들이 어떻게 현실에 길들여져 무력화되는지 실감한 것 같다. 여기서 무력하다는 표현은 정부에 대응할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의식이 알에서 깨어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미래를 개척해나가야 하는 마인드는 잊은 것 같았다. 노동인권문제는 아닌데, 인간의 가치는 매우 보잘것 없었다. 그건 간부들의 마인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평생 뼈를 묻을 자세가 되어 있는듯 했다. 같은 저층의 노동자라도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IT회사등과 많이 달랐다. IT회사에서는 더 넓은 세계랑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는 스쳐지나가는 풍경만으로도 족한 것 같았다.

북한은 그렇다고 하지만 한국은 정부나 기업 그리고 근로자들이 진취적이고 여유있는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특히 보수정부 10여년에 경제와 사회자체가 퇴락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보수정부가 주장했던 강력한 자유시장경제의 활성화는 이념적 논리와 봉건적인 정실주의, 부정부패등으로 고립국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한때 이념문제(내 자신은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이념문제가 앞서는 현실을 막을려고 애썼던 것이다)와 관련해서 권력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에 쫒겨서 시골로 떠돌아다닌적이 있는데,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은 억압에 길들여져 자신도 모르게 좁은 세상에 스스로 가두어놓는 나약함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스스로를 개방시키기 위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예크[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용해야 하는 상황과 관련된 지식은 집중적이거나 통합적인 형태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 "가격기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기구가 제 기능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이 제한되어 있는 점, 즉 개개의 시장 참가자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

정치적으로 경직된 중국에서 마윈이 인터넷분야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나 재일교포인 손정의가 비교적 경직된 사회이자 한국인을 차별하는 일본에서 인터넷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인터넷의 특성상 고립국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개방성과 혁신성 때문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다. 정부나 사회의 통제가 미칠 수 없는 그곳에 깃발을 꽂은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외교관들만은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이해가 간다. 지식의 영토는 지리적 영토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고립국의 근로현장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의식과 지식은 이곳을 벗어나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나이들어 꼰대가 되지 않는 훈련을 지금부터 착실하게 쌓으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수적인 이념과 종교등이 압박을 할 수 없는 곳에 먼저 달려가서 혁신의 깃발을 꽂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동굴의 최씨

최씨측 변호인이 최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논리를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들어 반박했다. 정확하게 논증할  수 없는 상상력과 확산적 기질이 있는 최씨측이 협소한 검찰의 법조논리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격하게 표현하면 "앉아서 법공부만 한 당신들이 사업가나 경제계의 실태를 잘 알 수가 있느냐 우리는 불철주야 당신들이 모르는 드넓은 세계에서 뛰어왔고 이제와 이야기 하건데 재벌과 경제계는 최씨와 같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런 단순하고 미약한 세계가 아니다. 그러니까 국정논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습게도 그 전에는 분명 넓은 세계와 사업가기질을 내세워서 국정을 농단했을텐데 이제는 그럴만한 능력이 원래 없었으니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어떤' 능력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편으로는 내 자신이 세상일을 잊고 마음을 정리하는 좋은 장소인 빙상장의 운영권을 최씨가 노렸다는 소식을 듣고 상상력과 확신을 내세워서 밀고 들어오는 부류들을 어떻게 방어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는것도 한일이 된듯 싶다. 지난정부부터 이상하게 정계의 배후에서 상상력과 사업가기질이 난무하는 현상이 있는데, 우선 해야 할 일의 목적부터 잊은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정치는 사업이 아니고 공익적 활동이라는 논리들을 누구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도 비극인듯 하다. 항상 생각하지만 종교와 정치와 사기의 공유부분은 상상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7년 1월 8일 일요일

출세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도 꾸지지하게 앉아서 살 궁리를 찾는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고위관료들을 보면서 어렴풋이 북한의 상태가 짐작이 갔다. 그랬으니 주렁 주렁 훈장을 달고서 어린 김정은 앞에서 방긋방긋 웃는 애처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한 편으로는 현대통령에게 '역설적인' 응원을 보내는 마음도 없지 않다. 표면으로 드러났으니 개혁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시골에선 도희지로 일자리를 찾아떠났던 이들이 가능한한 비싼 승용차를 끌고서 명절날 귀향을 하는 일이 흔했다. 시골을 떠난 이들은 고향의 부모체면이라는 것이 심각한 마음의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했던것 같다. 봉건적인 수직적 질서를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시골의 부모들은 아들딸의 출세를 간절히 바랬던것 같다. 그 아들 딸이 표면적인 출세를 위해서 이상한 짓에 말려들거나 이상한 짓을 하여 사회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교육적으로 한층 진화된 예측은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심리학의 독보적인 인물인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아들러(Adler, Alfred, 1870,2,7 - 1937,5,28)는 사람은 출생직후 누구나 무력감을 가지는데, 불행한 환경에 놓이거나 부적당한 취급을 받거나 신체장애때문에 그 무력감이 증대되어 열등감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노력의 근원은 열등감이지만 세상을 창조하고 고난을 극복하려는 우월추구의 욕망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북한에서는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워낙 정치적인 권력관계가 다른 다양한 수평관계를 압도하고 있다보니 누구나 출세를 하고 싶은 욕망이 컸던것 같다. 할려는 일이 아닌 수직적 관계에 집착을 하다보니 되는 일이 없었던것 같다. 그 동안의 경제적인 성과는 일을 열심히 한 수평적 하위계층의 공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여기저기 사회의 저층(低層)에서 일을 하면서 느껴보건데 아직도 열심히 일하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는 다수가 있다. 그러니 누가 상승욕구를 꿈꾸지 않겠는가싶다. 시간이 흐르니 그런 사회관계가 관료제의 문제처럼 비효율성으로 사회발전의 발목을 잡는 일을 이번에 채증(採證)한듯 하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만 형이상학적인 확신이 치고 들어오는 공간을 내어준 것이 큰 화근이었던 것 같다. 공무원조직도 계급제 보다는 직위분류제로 바뀌어야 하며 사회와 근로의 저층에 있는 이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대우도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좌파적인 사고가 아니라 수고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는 사실이 이번에 '역설적'으로 정의된 것 같다. 그리고 고위직에 오르기 전에 민생(民生)을 뼛속깊이 이해하여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산교육이 있어야 할 것 같다. 

2017년 1월 7일 토요일

상상과 확신의 세계 그리고 삶은 계란

지난 10여년동안 이념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한다는 것이 정부수반의 성격과 그에 비롯된 기이한 정책형성과정(초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을 인지하고는  가슴은 삶은 계란을 먹을때 소금대신 치는 것이 아님도 알게 되었던것 같다. 더불어 정부수반들의 살아온 과정이나 인생 행로에 있었던 여러 사실들도 함께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역시 삶은 계란이었다. 많이 아쉬운 시간들이 보인다. 조금 더 많은 공부에 의해서 합리적인 시간들을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더 애민(愛民)을 위한 생각으로 준비된 공리적인 시간들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든다.

그날 이후 여러정부수반들의 탄생에 여러가지 영향을 끼쳤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미신타파와 과학기술국가, 새마을 운동등의 실증적인 정책사건들을 창출해가며 정치를 했던 생각이 난다. 일단 논란이 될 수 있는 여러가지 가치판단(예를들면 권위주의 정부의 문제점같은)을 배제시키고 생각해보면 5,16군사쿠데타 당시 그는 젊었고, 국민은 무식했으며 국가는 가난하고 해서 무엇보다 실증적인 국가운영과 분위기의 상승이 필요한때였던것 같다. 거기다 40대 젊은 지도자의 기질이 반영이 되었으니 지난 10여년같은 퇴락적인 상황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마저도 말년에 참을 수 없는 장기집권의 권태와 퇴락적인 분위기를 본인도 알고 어쩔 수 없는 시대를 맞게 되었는데, 당시 비서실장에게 임자는 (비리를)얼마나 해먹었냐고 묻자 비서실장은 자기는 안해먹었다고 대답하고 대통령은 요즘 안해먹은 놈이 있냐고 반문함으로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퇴락의 분위기를 인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통종교던 유사종교던지 그 건강치 못한 상상력들이 국가정책에 반영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종교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국가와 같이 종교가 국가의 근본가치가 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많은 보이지 않는 상상력들과 권력이 결합하게 되면 퇴락의 길이 가속화되는 문제가 생긴다. 원래 모든 종교는 '비움'과 '버림'을 근본 가치로 내포하고 있는것과는 달리 권력과 결합하면 확신과 믿음이라는 명분으로 매우 복잡하고 비릿한 상상력들이 난무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은 저서 [논리철학논고]에서 "언어는 관찰 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고,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국가정책에 반영시켜 몽환적인 시간들을 보냇으니 어떤 해답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고 그 허점의 사이를 사적이익(私的利益)들이 비집고 들어와서 부패로 얼룩진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대단히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