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싸고 좋은 옷, 그리고 젊어보이는 옷을 많이 샀다. 복장을 급격히 변화시킴으로서 나의 새로운 변화로 인한 사회적 시선을 감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실제로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내 모습이 투사됨으로서 나의 생각도 변해갔다. 부유한 복장을 하고(부유해보이되 어느 정도 절제된 복장을 하고) 분양하는 아파트모델하우스를 방문하거나 고급승용차를 선전하는 곳에 가면 소비의도가 있는 사람으로써 오해(?)받는 적이 많았다. 순간 잠시 남이 알아주니 더 이상의 '부(富)'는 필요없을 것 같다는 웃긴 생각이 잠시 들었다.
최종적으로 오명(汚名)을 뒤집어쓸 확률이 많은 권력에 집착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런 행태는 단순하게 욕심이라고 표현하기보다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곰곰히 해봤다.
침팬지는 식량 채집에는 놀랄 만큼 적은 시간을 소비하며, 나머지 시간을 분주한 사회생활로 보낸다. 고릴라가 그들보다 작은 침팬지에 비해 비교적 덜 사회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릴라도 단단하게 결속된 사회집단을 이루며 개체사이에 중요한 연대감을 지니고 있다. 고릴라와 침팬지가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들이 다 자라기 전에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주변의 지리를 잘 알아서 어떤 형태의 음식물이 어떤 시기에 풍부하게 있는 가를 알 뿐 아니라,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도 알고 있다. 그들이 어린 시절 오랜 기간에 걸쳐 어미나 다른 성숙한 놈들로부터 많은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지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학습기간이 길어지고, 안정된 사회집단에서 생활하게 됨으로써 대유인원의 - 또한 인류의 - 지능이 개발될 수 있었다. 그 학습은,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것으로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학습이란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 - 이것은 지성의 실제적 기민성을 필요로 하는 집단 생활에서 필수요소이다 - 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중략 - 한 무리의 침팬지는 최소한 3대에 걸친 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10개의 가족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리들 중 새끼들은 서로 간에 가장 많은 접촉을 하며, 가족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속적인 결합을 이룬다. 가족생활의 안전은 다른 가족의 개체들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며, 이러한 관련 속에서 지위가 성립될 수 있다.
- Richard E. Leakey and Roger Lewin의 [ORIGINS]중에서 -
한때 노인분들이 많은 일터에서 일해본적이 있었다. 그때 대단히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았는데, 주인이냐 노예나 대장이냐 부하냐 하는 극단적인 관점으로 매몰되어 있었고 뭔가 통합적인 관점을 갖출 수 있는 사회적 교육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났다. 물론 자각하지 않고 살아온 분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한국의 역사라는 것이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고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은 것 같다. 지위라는 것이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관련된 학습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지배적 욕구에 몰입하는 모습은 조선왕조를 벗어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받았던 세대의 뼈아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해서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형식의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남이 알아주지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불안한 사회관계속에서 제대로 된 사회학습이 없던 결과이며 습성인듯 하다. 좀 모질게 표현하면 3대에 걸친 침팬지 집단의 교육에도 못미치는 학습을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북한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지닌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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