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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8일 일요일

한국에서 권력욕구와 사회교육

지난 겨울, 싸고 좋은 옷, 그리고 젊어보이는 옷을 많이 샀다. 복장을 급격히 변화시킴으로서 나의 새로운 변화로 인한 사회적 시선을 감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 실제로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내 모습이 투사됨으로서 나의 생각도 변해갔다. 부유한 복장을 하고(부유해보이되 어느 정도 절제된 복장을 하고) 분양하는 아파트모델하우스를 방문하거나 고급승용차를 선전하는 곳에 가면 소비의도가 있는 사람으로써 오해(?)받는 적이 많았다. 순간 잠시 남이 알아주니 더 이상의 '부(富)'는 필요없을 것 같다는 웃긴 생각이 잠시 들었다.

최종적으로 오명(汚名)을 뒤집어쓸 확률이 많은 권력에 집착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런 행태는 단순하게 욕심이라고 표현하기보다 뭔가 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곰곰히 해봤다.

침팬지는 식량 채집에는 놀랄 만큼 적은 시간을 소비하며, 나머지 시간을 분주한 사회생활로 보낸다. 고릴라가 그들보다 작은 침팬지에 비해 비교적 덜 사회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릴라도 단단하게 결속된 사회집단을 이루며 개체사이에 중요한 연대감을 지니고 있다. 고릴라와 침팬지가 편안한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중의 하나는, 그들이 다 자라기 전에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주변의 지리를 잘 알아서 어떤 형태의 음식물이 어떤 시기에 풍부하게 있는 가를 알 뿐 아니라,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가도 알고 있다. 그들이 어린 시절 오랜 기간에 걸쳐 어미나 다른 성숙한 놈들로부터 많은 것을 학습했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지식을 갖게 된 것이다.

학습기간이 길어지고, 안정된 사회집단에서 생활하게 됨으로써 대유인원의 - 또한 인류의 - 지능이 개발될 수 있었다. 그 학습은,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것으로 고도의 지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학습이란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 - 이것은 지성의 실제적 기민성을 필요로 하는 집단 생활에서 필수요소이다 - 을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중략 - 한 무리의 침팬지는 최소한 3대에 걸친 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10개의 가족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리들 중 새끼들은 서로 간에 가장 많은 접촉을 하며, 가족 사이에 다툼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속적인 결합을 이룬다. 가족생활의 안전은 다른 가족의 개체들에 관해 학습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며, 이러한 관련 속에서 지위가 성립될 수 있다. 

 - Richard E. Leakey and Roger Lewin의 [ORIGINS]중에서 -   

한때 노인분들이 많은 일터에서 일해본적이 있었다. 그때 대단히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많이 보았는데, 주인이냐 노예나 대장이냐 부하냐 하는 극단적인 관점으로 매몰되어 있었고 뭔가 통합적인 관점을 갖출 수 있는 사회적 교육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났다. 물론 자각하지 않고 살아온 분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한국의 역사라는 것이 사회적 관계를 학습하고 자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은 것 같다. 지위라는 것이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관련된 학습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닌 지배적 욕구에 몰입하는 모습은 조선왕조를 벗어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받았던 세대의 뼈아픈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제에 관해서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형식의 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남이 알아주지 않고 존경하지도 않는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불안한 사회관계속에서 제대로 된 사회학습이 없던 결과이며 습성인듯 하다. 좀 모질게 표현하면 3대에 걸친 침팬지 집단의 교육에도 못미치는 학습을 받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내용이 바뀌지 않으면 북한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지닌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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