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케인즈에 관한 글을 쓰다보니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심리학자인 왓슨(Watson,John Broadus 1878 - 1958)이었다. 케인즈가 [확률론]에서 경제학의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말한것처럼 왓슨 역시 인간의 심리를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석할려고한 심리학자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그리고 1929년 자본주의세계를 잠시 침묵하게 만들었던 대공황이 일어났기때문에 과학성이나 합리성은 더욱 활력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왓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왓슨은 심리학에서 완전히 행동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을 당연시했다. 인간의 행동은 말초적반사작용으로 일어날뿐이라는 기계적 행태론을 말하고 있다. 인간성에 대한 뼈아픈 상처가 있던 탓일까. 결국 왓슨은 불행한 결혼생활로 댓가를 치루고 마흔 두살에 딱 절반의 나이인 조교와 재혼하고 학계를 떠났다. 이후 마케팅을 연구했고 백화점 점원으로 일했는데, 인간이 기계가 아니고 상당히 많은 생각이 있는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매우 단조로운 일자리에서 일을 할때가 있는데, 기계적인 환경을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했다. 그 와중에 호기심과 재미를 찾아서 떠도는 영혼들은 서로에 대해 긍정적인 농담과 웃음을 선사하기 바빴다. 가끔 권위적인 연장자가 서열관계나 권력관계에 집착을 하면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심했던것 같다. 아마도 우리사회의 과거가 갑을 관계에 심하게 시달려 온 까닭인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젊은이들과 일을 할때면 인간성과 평등관계에 대한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나마 한줄기 빛인듯 하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왜 감정적이고 향락적이었을까. 어쩌면 본인이 가장 다양한 사회에 있어야 할 인간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저번에 밝힌것처럼 인민복만을 고집하며 국가가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기계적인 단일성에 자신을 맞춰볼려고 했지만 인간의 본성상 힘든 경우가 되었던것 같다. 한편으로는 김정은위원장은 어떤 방식으로 인간성의 해소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주석궁을 들랑거리는 군부인사들을 보면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꿈꾸고 있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언젠가 북한을 알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알 수 있는 곳으로 몇년을 계획하고 직업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인 이유로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성'이 있지만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인 이유로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성'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문득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사회가 희망없음도 깨달았다. 한국사회도 자본주의라는 이유로 북한사회를 닮아가고 있는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