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한 번씩 들춰보는 일기장의 한 페이지가 있다. 사실 일기는 안쓰지만 심각한 심신상태의 저하를 경험하는 시기가 되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매모하는 습관이 있는데, 요즘의 블러그질같은 것을 할 수 없을때는 일기인지 메모인지 모르는 비정규적인 글을 썼다.
꽤 오래 되었는데, 주변의 모든 것이 불행했다. 국가는 부도상태이고, 가족들이나 내 자신의 건강도 부도상태였다. 그런데 무력함에 화가 나 있었다. 특히 나쁜 한반도의 역사가 주는 위압감으로 위축된 부친과 관련해서 더욱 그랬던것 같다. 그래서 노동강도가 매우 센 주물공장의 용광로에서 불꽃을 바라보며 몇개월을 일했다. 힘든것을 모르고 체력이 좀 좋아졌는데, 추운 계절이라서 나름 따스함이 좋았고, 일기장에 스크랩해 논 프랑스 여성 페리에트가 혼자서 남극을 걸어서 황단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스스로가 불평을 자제했다. 훗날 어떤 불우한 청년이 용광로에서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는 기사나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때 그 일을 함께 하던 동료가 회사가 부도가 나 임금을 못받자 빌딩처럼 높은 굴뚝에 올라가 뛰어내리겠다고 자살소동을 벌인 사건이 티브이뉴스에 방영됐을때는 가슴이 아팠다.
그 시절에 비하면 정신이 많이 약해진것 같아 스케이팅을 할 때 자세를 풀지 않고 장거리 운행을 하는데, 체력이 그다지 나빠지지 않았으니 정신력이 많이 문제인듯 하다.
그 당시 신문기사(스크랩은 해 놓았는데, 인터넷검색에도 안나오고,어느 신문인지는 모르겠다)에 의하면 로랑스 드 라 페리에트는 당시 39세, 한국나이로는 40세였다. [남극점 단신정복 첫 여성 페리에트]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뽑았다. 1300킬로미터를 130킬로그램의 짐수레를 끌며 55일간 행군을 했다고 한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초속 100미터를 넘는 강풍과 영하 30도의 추위를 이기고 하루 평균 21킬로미터씩 걸어서 남극점을 밟았다. 미국 캠프인 패이트리어트 힐즈에 도착하여 두달만에 먹는 샌드위치와 디저트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정신없이 먹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 밖에도 34살의 영국여성인 팰리시티 에스턴(Felicity Aston)이 남극을 횡단한 수기인 [세상의 끝에 혼자서다]라는 책이 있는데, 지난 겨울에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밖에도 레이널 파인즈라는 한국나이로 70세인 탐험가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1000만달러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남극을 횡단하겠다고 한 기사를 본 것 같다. 노르웨이 여성인 리브 아르네센도 39세에 혼자 1100킬로미터를 걸어 남극점을 밟고 한국나이 49세때에는 미국여성과 함께 3700킬로미터를 걸어 남극대륙을 횡단했다고 한다. 리브 아르네센은 모험에 불안이 따를지라도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녀는 늘 긴장했지만 자기가 남극에서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 잘 되리라고 믿었다고 한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안한 마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듯 하다.
내가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불안이 나를 마비시키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내가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점이었다. 불안이란, 달리 말하면 흥분이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종종 새로운 것에 열중해서 흥분할 때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기 위해서 불안을 참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자기 인생을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살고 있고, 무엇인가를 할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불안하지 않은 지역에서 절망과 같이 살아가기를 계속하면서 인생은 어쨌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하게 한다. 불안을 즐기지 못하면 행복을 누릴 수 없다.
- 리브 안데르센 -
생각해보면 삶을 수동적인 태도로 살거나 의미없이 산다는 것은 불행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봤다. 그런데 리브 안데르센이 그 이유를 말해주는듯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