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저변에서 느끼는 생각은 교육의 장기적 결과가 매우 부정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다지 지적이지도 않고, 협동적이지도 않다. 교육자체가 국민을 투쟁적으로 만든다. 그 투쟁의 칼끝은 국민 서로에게 겨누어지거나 때로는 정부를 향한다. 국민서로에게 겨누어지는 칼끝은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하고, 정부에 겨누어지는 칼끝은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하는게 한국의 실상인듯 하다. 국민 서로가 존경하거나 지도자를 존경할 수 있는 국민은 교육이 만드는듯 하다. 그런면에서 보면 문화대혁명으로 피폐한 공산주의로 회귀할뻔한 중국을 구하기 위해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은 교육개혁을 가장 먼저 서둘렀는데, 현명한 지도자의 예를 보는듯 하다. 특히 저우언라이는 장칭일당(4인방)이 중국을 퇴보시키고 있을 당시 그 반대세력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교육개혁을 말했었다는게 덩샤오핑의 말이다.
1971년 전국교육사업회의를 소집할 때 저우언라이 동지의 처지는 매우 어려웠다. 1972년 그는 미국 물리학자들과 담화하면서 그해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생들 가운데서 직접 대학생을 모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주 용감했다.
- 이중의 [저우언라이, 오늘의 중국을 이끄는 힘]중에서 -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뚱의 이념적 통치방식에 함께 대응해 나가면서 1977년 중국의 대학입학 시험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그 전까지 공산당의 추천에 의해서 대학을 입학하다보니 학생들의 나이와 학습능력이 천차만별이어서 대학교육의 질은 떨어지고, 학습환경도 나빴다고한다. 아마 한 나라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지도자라면 교육이 가져다 주는 미래상을 그려보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일개 시민인 나 자신도 사회의 저변에서 생활하면서 교육문제를 국가의 가장 절실한 문제로 생각했는데, 특히 으스대며 남 보다 우월해질려고 하는 욕망만 있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에 무기력하게 비급해지는 모습을 볼때면 노신선생의 우매한 '아Q'를 떠올리곤 했다.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서 정부나 기업가같은 주로 권리주장의 대상이 되는 측에 불편한 영향을 끼친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권리주장의 상대는 국민 서로가 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민주국가의 모습이며 권리를 주장할때는 책임의식이 반드시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아직 국민에게 이해 안되는 교육적 미비의 결과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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