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디폴트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은행의 업무는
중단되고 신용카드가 통용이 안되어 ATM기 앞에는 현금을 찾을려는 긴행렬이 섰다고 한다. 얼마전까지 그리스의 위기가 과잉복지때문이라는
한국정치인의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예산부족때문이라는 말이었고, 그리스의 탈세는 심각할 정도로 심했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택에
수영장을 갖고 싶어하고, 수영장에 세금을 부과했는데, 아테네 북부지역의 신고된 수영장이 300개가 조금 넘었다고 한다. 나중에 구글어스로 조사해보니 1만개가 넘는
수영장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영장을 다시 공중에서 포착이 안되도록 숨기는 작업들을 했다고 한다.
그리스는 유로존의 지도자격인 독일보다 임금이 낮고 근로시간이 길다고 한다. 물론
복지수준도 독일보다 부족하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다소 사회공리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독일은 문제가 있으면 자정(自訂)노력을 멈추지
않는듯 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그리스는 '능력이 있는자는 부패와 탈선에 앞장선다'는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는듯 하다. 낙천성이 강한
지중해연안의 남부유럽들이 대체로 분위기가 그런듯 하다.
1982년 하이에크가 카토 재단과의 인터뷰자리에서 통화론자이자 신자유주의경제학자인
프리드먼을 이렇게 비판했다고 한다.
"지금 후회하는 것은, 내 동지이자 친구인 프리드먼이 실증경제학을 언급했을
때 내가 비판하지 않았던 일이다. 프리드먼의 실증경제학은 우리가 모든 사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거기에 지혜롭게 대처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는 사상이나 다름없다. "
부패와 탈세로 국기(國氣)를 어지럽히는 국민과 일하는 국민들 사이에는 빈부격차 이전에
정보의 비대칭현상이 존재한다. 비용편익(費用便益)의 법칙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있는데, 일탈행위로 부(富)를 창조할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노력한
만큼 그에 관한 정보를 얻어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닌듯 하다. 한국의 부정부패수준도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증거가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는데,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권력의 주위에 부정부패가 심각한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스의 문제를
결코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해석하지는 말아야 할 것 같다.
하이에크의 말처럼 프리드먼의 경제이론이 정당할려면 모든 국민이 동등한 정보수혜자가 되거나
그에 앞서 경제적인 정보를 다스릴 수 있는 도덕적인 가치관이 필요한데, 그리스는 독일보다 많이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국도
만만치 않다. 아직도 그 문제를 끌고 다녀서 미안하지만 해결이 안되는 문제들, 지난 정부의 국기문란행위, 현정부에서 드러난 엘리트들의
부패행위등은 현실로 일어난 사건들에 앞서서, 도덕철학이나 도덕적 감수성의 부재(不在)가 만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항상 토로하지만
권력지향적 사고나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를 막아내지 못한 과거 한국교육의 문제는 언젠가 그리스와 같은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으로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성장과 국민잠재력을 저하시키는 작용은 분명히 할 것 같다.
호세무히카 우르과이 전대통령은 "철학은 이제 유행이 아닙니다. 철학없이
성찰하는 삶을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철학에는 자신을 성찰하고, 인간을 바라보며, 가능성을 탐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부를 가난한 사람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문제보다 철학의 문제는 더 중요한듯 하다. 내 자신은 빈곤한 철학이 빈곤한 삶을 이끄는 장면도
적지않게 목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분배의 문제보다 철학의 문제가 더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전에 나는 항상 은행 국유화만 계획하던 좌파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르과이 은행 시스템을 분석해보면 놀라운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은행 거래량의 52퍼센트는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앙은행은 총 은행 거래량의 40퍼센트를 흡수합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래량이지요. 그래서 나는
좌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만 멈추세요. 은행이 힘차게 돌아가는 이 마당에 정말 무엇이 필요한지
시험해봅시다."
중략
"저는 열정을 가지고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시민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게, 그 일의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알 수 있게 그들의 참여를 일깨워야만 합니다. "
- 미구엘 앙헬 캄포도니코가 지은 호세무히카 우르과이
전대통령의 전기 중에서 -
지난 10여년 이상을 인터넷으로 말하는 자 인터넷으로 통제받는 현상을 지금까지도 경험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옳고 그른 것은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쁜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려고 노력하는 내
입장으로는 내 자신의 철학을 끌어안고 개선시켜야 하는 노력이 힘겹다는 생각을 하는데, 누구에게 철학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그런 태도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기도 한 것 같다.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삶이라는 말을 하면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겠다.
호세무히카 대통령은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인간은 돼지나 다른 동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똑같은
존재예요. 유일한 차이란,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빚을 수 있다는 정도겠지요. 인간은 자기 삶을 리모델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의로
보자면,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 역시 부분적으로 리모델링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이 없다면 차라리 의식이 없는게 좋을
겁니다.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불안에 굴복했을 테고, 인생 또한 비극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