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이념문제와 관련된 기묘하고 살벌한 경험으로 트라우마를 입은 부친의 대를 이어
이런 저런 상황을 겪은 내 관점으로는 선량한 우루과이 국민에게 호세무히카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복덩어리라고 호들갑스러운 표현을 해본다.
근로현장이나 지인들과의 대화중에 여유로운 태도를 구경해보지 못한 내 자신도 많은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것 같다. 그게 어디 나 뿐인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경쟁이나 투쟁을 해야 하는 환경은 어떤 목적으로 미화시켜도 반갑지 않은 환경인듯 하다.
내가 로차에서 체포되었을 때 어떤 장군이 유치장에 찾아와서 했던 말을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그가 말하길, 몇몇 아르헨티나 장교들이 그 군사기지를 방문했었답니다. 유치장에 달려 있던 조그만 창문을 통해서 나를
지켜봤답니다. 그러더니 그들이 장군에게 말하더래요. '아르헨티나에서라면 이런 새끼들은 10미터 물속으로 쳐박았을 겁니다.' 다행히도 그 장군은
우리 우르과이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고 내게 말하더군요. 물론 아르헨티나 군부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들은 분명 달랐습니다.
우르과이에서 생명의 가치는 매우 큽니다. 우르과이는 1904년부터
인간생명과 관련된 몇 가지 진보적 가치를 새겨넣는 데 성공했어요. 심지어 우르과이보다 훨씬 더 발전한 국가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한 가치들을
획득해낸 것이지요. 미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우르과이가 훨씬 더 선진적입니다. 이와 관련해선 20세기 초반 20 ~ 30년간의
역사에 대해 살펴봐야 합니다. 그 시대는 바트예의 시대로, 지나간 19세기에 대해 수많은 반성을 했던 시대이지요. 19세기는 '피빛 세기'로
불렸습니다. 아마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훨씬 더 많이 싸웠을 겁니다. 인간의 생명 역시 별로 존중받지 못했을테고요. 나는 1920년
에레라의 발언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낡은 부대에 새 술 채우기'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바트예를 비난했었지요. 그 시대에 이미
그러한 비판이 가능한, 사회적으로 합의된 문화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들을 아르헨티나에서는 생각할 수조차 없습니다.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지요."
- 미구엘 앙헬 캄포도니코가 지은 호세무히카 전기 중에서
-
한반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당시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도 상당히 살벌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언젠가 한 번 언급했던 중학교시절 외국잡지에 나온 하코보띠베르만이라는 유태인 사업가가 아르헨티나 감옥에서 겪은 인권침해
상황이 어린 학생의 관점으로도 그게 뭐 대단한가 싶을 정도로 한반도에 비해서는 여유로웠지만 인간 생명을 보는 관점이 우르과이 보다는 아르헨티나에서
더욱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교양이라고는 전혀 없는 근로현장에서 특별한 군대출신의 구성원과 무시무시한 충돌을
한 적이 있었는데, 순한 마음으로 웃고 있는 나를 자신보다 더 잔혹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일을 겪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들이 자신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함으로써 많이 왜곡되는 현상을 깨달은 적이 있었다. 625전쟁이나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 한국에서 있었던 518민주항쟁, 그
외에도 많은 사건들을 생각하면 우르과이 보다 생명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념문제때문에 왜곡되는 한반도에서 호세무히카같은 지도자가 나오기 힘든
이유를 알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갖추려는 노력은 숙명적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지인과 어떤 대화를 하다가 느꼈는데, 정치관계를 생활관계로 보지않고 권력관계로 보는
한은 절대로 사회적 합의가 나올 수 없고, 오직 투쟁관계만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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