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를 넘은 이념적 편향성이나 종교적 편향성은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마성(魔性)을
띈다. 발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숙명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지속에서 더 바람직한 정의와 선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고찰하고 성찰하는 수고를 감당한다. 노력은 고결하고, 반성도 고결하다. 그러나 이념이나 종교에 수고로움없이 의탁함은 편안하고 쉽게 가는
길을 알려주지만 그 때문에 사악해질 수 있음을 종종 잊는듯 하다.
도를 넘은 이념에 의탁한 북한, 도를 넘은 종교에 의탁한 IS등은 그런 길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듯 하다.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지만 서수적(序數的)인 연속성의 관점으로 판단하건데, 한국사회나 그밖에 합리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려고 하는
많은 국가와 사회에서 그리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맹목적인 믿음으로 쉽게 갈려고 하다가 상황을 어지럽히는 일을 많이 관찰한다.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편향성을 띈 정치인이 등장하면 국가질서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당연한듯 하다. 이념적 종교적 열정은 생각하지 않는 믿음에 의탁하여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그 열정이 장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 세계에서만의 판단이다. 더 넓은 시야로 판단하면 무기력한 안일함일 수도 있는듯 하다.
생명의 흐름과 개인을 갈라놓는 것은 과거와 자아에 연연하고, 타성이 주는
안일함에 매달리는 태도다. 악마를 뜻하는 'devil'이란 단어의 어원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devil'은 떼어내다. 동강내다란
뜻을 가진 그리스어 'diabollein'에서 온 말이다. 복잡성을 억눌러서 자꾸 단순한 것으로 토막내는 게 악마의 주특기다.
- Mihaly Csikszentmihalyi (시카고 대학 심리학,
교육학 교수)의 Finding Flow중에서 -
다양성과 복잡성에서 생명력과 진화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
정당한듯하다. 민주주의 국가기 정당함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하기 때문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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