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청등의 통신간섭에 관한 정보를 좀 얻고자 국회내의 의원회관을 방문했다가 2층 정현관에서 어린이 국회에 참여하러 온 어린이들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너희 세대들은 우리 세대처럼 살지 말아라"하고 소리 없는 속삭임으로 당부했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와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화사한 모습을 보고 영화속의 상상에서 갑자기 깨어난 느낌을 받았던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요즘 여러곳에서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것 같다. 연이은 참사들때문에 어두운 분위기인데, 관련된 종교 교주의 시신(屍身)이 티브이 비쳐지기도 하고, 그리 밝고 아름답지 못한 그 주변인물들의 이상한 확신에 찬 모습까지 매스컴에 비쳐지면서 '황혼에서 새벽까지'라는 좀비가 나오는 공포영화의 제목을 연상했다. 거기다 이념이나 종교적인 확신에 찬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으로 어두운 비극들을 둔감화 시키는 장면을 목격할때면 내 자신은 '호러네이션'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 권위, 경쟁, 복종, 종속 이런 단어들이 지배하는 곳에서 공포영화를 현실적으로 체험학습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정치학자 아도르노(Theoder Wiesengrund Adorno 1903 -1969 )와 호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43)은 [계몽의 변증법]이란 저서에서 비합리적인 미신적 믿음이 신화가 되어 사회에서 강력한 믿음을 얻어내기도 하고, 근대사회에서는 이에 반대하여 계몽이란 명목으로 합리성을 추구하게 되는데,이러한 계몽 역시 생각하지 않는 합리성이 되어 새로운 종교가 된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맹목적인 종교적 믿음과 맹목적인 이념적 의지가 한국사회를 지배하며 호러네이션을 만들어 가는듯 한데, 아도르노와 호크하이머의 말처럼 비합리적인 미신적 요소가 충만한 종교와 계몽적 합리성이란 명분을 앞세운 이념은 '따로 또 같이' 한국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 같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 경쟁적이고 기계적인 능률성을 중시하는 교육의 효과는 한국을 호러네이션으로 건설하는데 크게 이바지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회 정현관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과 나의 방문 목적을 함께 비유해가며 느낀바가 있는데, 아이들의 정신은 영리하며 순수하고, 어른의 정신머리는 멍청하며 혼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웃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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