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명문대 졸업생이 경제적인 문제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것을 보고 의외로 좀 놀란적이 있었다. 우파와 좌파를 양분하는 궁핍한 정치문화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켜 살아온 세대로서는 한 편으로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였던것 같다. 하지만 그의 준거집단은 한국 최고의 엘리트집단이며 친구들은 부유했고, 자신은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촉망받는 수재라는 점을 생각하고는 곧 그의 조급한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나보다 훨씬 뛰어난 수재로서 좀 더 다양하고 가치있는 삶을 생각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막장이라는 표현은 많이 들은 바 있지만 정작 15년 이상 멀리했던 티브이 드라마를 보다가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세계와는 많이 다른 비현실성에 놀랐다. 한국의 경제성장기를 견인했던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지향하는 내용은 여전했지만 그 이면에 인간의 복잡하고 내밀한 관계와 인물의 성격들로 일관하고 있는 점은 사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끌고가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 ~ )는 유명한 보보인형실험을 통하여 보고, 듣고, 배우는것이 실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한 바가 있었다.
넘어지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보보인형을 괴성을 지르며 때리고 넘어뜨리는 어른이 등장하는 영화장면을 실험집단의 아이들에게 보여주자 보여주지 않은 통제집단의 아이들에 비해서 더 적극적으로 보보인형을 학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 보보인형을 학대한 어른이 칭찬받는 장면을 본 아이들은 보보인형을 학대한 어른이 비난을 받는 장면을 본 아이들보다 훨씬 심하게 보보인형을 학대하였으며, 실제로 보보인형을 대하지 않으면 별다른 폭력적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도 얻었다. 즉 실현불가능한 학습은 어떤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결과도 얻었다고 한다.
드라마의 사회형성작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것 같은데, 다행히도 어떤 신념이 자리잡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모방과 학습의 효과가 덜 할것도 같다. 그런데 그 신념이라는것이 성장과정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발적이 아닌 환경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수용된 신념이라면 신념 자체가 모방과 학습의 효과를 일으킨 셈이 되었던것 같다.
적어도 강제적으로 주입되는 어떤 신념을 수용하지 않고 거부한다고 해도, 거부한다는 행위자체가 관점을 포섭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재미있는 (그러나 현실은 비극적인) 사실은 자유를 강력하게 외치기 시작했을때부터 통제의 시작이 되고, 구원을 외칠때부터 지옥이 시작되는 점은 관점을 가두어놓은 학습효과에 책임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떤 이념을 강력하게 이야기하면 대척적인 이념을 함께 성장시키는 토양을 만들 가능성이 생기기도 하고, 종교적인 구원을 강하게 바라는 백성들위에 구원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억압을 성장시키는 자들이 자주 생긴다는 사실은 더욱 근본적이고, 공리(共利)적이며 선량한 관점을 보고, 듣고, 배우지못한 백성들의 흔들리는 마음에 원인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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