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자율적으로 성장한 젊은이들이 어떤 위기에 닥쳤을때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것과는 달리 사회적인 지위와는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어른들이 타인의 절망에 대하여 무지(無知)한 언행(言行)을 일삼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그 이면에는 한국사회가 그동안 쌓아온 획일적인 사고의 내공(內功)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것 같아서 마음이 쓰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환경에 희생당한 세대들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었던'고통들에 대하여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인 빅터프랭클은 2차대전중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3년을 보냈다. 그는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고, 살아가야 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독일군의 손짓 하나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하는 겨울 수용소의 새벽기상 시간에 젖은 신발에 발을 넣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전 날 남겨 두었던 빵을 씹으며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한다.
가끔 힘든 일터에서도 능률을 재촉하는 어두운 얼굴의 갑(甲)과 신앙이나 가족,주말에 대한 기대, 운동등으로 고통을 회피하는 을(乙)의 예상과는 달리 뒤바뀐 현실의 운명을 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빅터프랭클이 생각이 났다.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이 이념과 물질적인 번영, 권력, 지위, 명예, 경쟁적인 시험 위주의 교육등에 시달려 온 세대들의 획일화 된 사고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 도움이 안되거나 때로는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스스로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내면을 통찰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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