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권력,이념과 종교등의 공통된 문제점이 있다면 사회적 다양성을 억압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인듯 하다. 사회는 여러 가치가 맞물려서 효율성을 얻어내고 발전하기도 하는것 같다. 자유라는 가치가 좋은 점은 누구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으로 자신과 사회에 가장 바람직한 가치를 타협하여 찾아가도록 유도할 수 있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사평론지 [뉴 리퍼블릭]의 편집인인 왈쩌(Michael Walzer 1935 ~ )는 사회속의 경제, 예술, 정치, 교육등의 모든 분야에는 그 분야에 맞는 정의의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분야의 가치가 다른 분야의 영역에 침투하게 되면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한다. 왈쩌는 경제영역에 머물러야 할 돈이 다른 영역에 침투하는 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있는데, 예를들면 잘생긴 사람이 연예인으로 특화되어야할 영역에 많은 비용을 들인 성형수술을 하여 연예인의 영역에 침투하는 현상같은 것이 쉬운 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다양성은 심하게 억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경험하곤 한다. 종교적인 이념을 구실로 이미 다양성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효율성까지 없어져 버린 북한사회는 커다란 변혁이 없으면 회복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른 점은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한국사회도 다양성을 억압하는 면이 많은것 같다.
부와 권력이 한국사회에서 다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는것을 많이 경험하곤 한다. 만약 부의 영역은 경제의 영역이고, 권력의 영역은 정치의 영역이라고 사회의 한 가치로만 인식이 된다면 사회의 효율성을 위하여 공헌하는 하나의 영역으로서 평가를 받게 된다. 경제분야에서 일하는 주체는 부를 증대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이 사회적의무이며 정치분야에서 일하는 주체는 국민의 공리적 후생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이 사회적의무가 되는것 같다.
하지만 부와 권력이 다른 영역을 침투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가치는 부와 권력에 집중을 하게 되는듯 하다. 누구나가 재벌을 꿈꾸고, 누구나가 권력을 꿈꾸게 됨으로써 부와 권력의 영역속에서 또 다른 불평등이 존재하게 된다는 점을 왈쯔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더 문제가 되는것은 그런 획일적인 가치에 온 국민이 집중하는 동안 사회의 다른 영역에 대한 노력은 소홀히 되는 것이 큰 문제인듯 하다.
시민들이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 대한 신뢰감을 잃어 버리는 원인중 하나는 시민의 다양한 삶의 영역을 돌보지 않고, 이념이나 정치권 내부의 문제에만 집중하여 효율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을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점이아닐까 생각한다. 표현의 수단이나 방법이 부족한 시민들에게는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싸움이나 하고 있다"라는 표현이나 "힘들어죽겠는데 자기배만 불린다."라는 표현으로 대신 하기도 하는것 같다.
나아가서 자신의 영역속에 충실하지 못하고 투기적 불안감을 증대시키는 문제도 증대되는것 같다.사명감없는 경제인, 사명감없는 정치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負)의 귀감이 되어 어느 곳에서 경제적인 한 탕이나 정치적인 한 탕을 꿈꾸면서 방황하는 시민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한국사회만의 더 큰 고민은 이념이나 종교같은 전체적이고 근본적인 영역이 사회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문제인것 같다. 사실 어떤 이념이 주류가 된다고 한들, 그 이념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하는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고, 어떤 종교가 원리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면 그 종교내부에서도 경직성을 이완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게 마련인데, 이념이나 종교로 인하여 다른 영역(부와 권력등)을 탐하는 구성원들에 의하여 사회가 획일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면이 있는듯 하다.
사회의 공리적 가치를 훼손하는 범죄가 아니라면 시민 각자의 영역은 존중 받아야 할것 같다. 시민 각자가 추구하는 삶의 형태나 생각은 모두 소중한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이나 도덕성이라는 구실로 특정 가치가 사회를 지배할려는 움직임이 강한 것이 한국사회의 문제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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