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의 국력이 북한을 월등히 능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도 항상 북한과의 협상을 시도했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도발을 막으면서 계속 협상을 시도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이례적인 것이고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은 양보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국민교육헌장 마지막에 기술한 것 처럼 길이 후손에 물려 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위하여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는 것이 중요했다.
한 편으로는 박정희 정부는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 의식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간혹 미국 카터 행정부와의 마찰도 있었다.
미국은 그야말로 자유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이라고 표현 하기보다는 '미국의 oo행정부의 정책'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낫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어느 행정부의 정책 노선을 그대로 믿으면 한국은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국의 다음 행정부에서는 대외 정책이 한국의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베트남의 경험 들은 한국은 절대 미국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군 시절을 겪고 남로당 시절을 겪으면서 국민의 정신을 깨우는 방법과 이념(공산주의)의 폐해를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실로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는 분기점이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력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정신력을 압도한 데 이유도 있었다. 김일성 주석은 이상한 상징 정책과 우상화 그리고 전체보다는 부분에 몰두하면서 전쟁 후에 당연히 올 수 있게 되는 발전의 시기를 놓치게 되었다. 훗날 나는 그 사명감과 정신력을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보았다. 그러면서 실용주의적인 정치는 목표를 향한 강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시간이 흘러 한국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민주화가 된 반면에 사명감 없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권력이 틈새시장을 노리는 일이 잦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 추구 활동이 난관에 부딪히면 반공을 이야기하면서 이념팔이를 했다. 6.25를 겪은 구세대들의 감정적인 동조를 끌어내는 데는 그보다 좋은 이슈가 없었다. 그러나 이념을 정권의 주된 이슈나 아젠다(agenda)로 삼으면 경제나 외교가 손상된다. 설득과 협상이 아닌 분쟁과 대립의 길로 가기 때문이다. 결국 이념적 아젠다을 끌어내도 현실적인 경제나 외교가 폭망 하면서 끝이 안 좋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특히 북한에 대한 내 생각은 한반도의 안정을 가져 오면서도 협력의 길로 나아가 북한과 한국이 서로 이익을 보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장기적으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등소평이나 주은래식 개혁을 할 수 있는 인물로 생각되었다. 앞에서 계속 밝혔지만 북한은 성급하게 체제를 바꿀만한 역량과 환경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한국의 현 정부가 들어설 때 북한에 대해서 담대한 계획이 있다고 해서 관심 있게 지켜 보았다. 그런데 정말 담대하게 철 지난 이념 논쟁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정치 지도자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조심스러워지고 집중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정치 지도자는 물론이고 북한의 정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분단된 한반도는 비정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한국과 북한 사이의 무력 분쟁은 아주 기이한 현상이다. 이성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고 정신분석학적으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무려 20년 동안 연구 끝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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