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 총리이자 경제학자인 정운찬 교수가 한국의 경제를 카지노 경제라고 말한 사실이 있다. 카지노 경제란 자본의 흐름인 금융 경제의 크기가 실물 경제를 압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문제는 일찍이 내 자신이 실물 경제의 밑바닥을 헤매고 다니면서 느꼈던 한국의 어두운 미래를 예측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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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경제화 된 이유는 이념 논쟁에 휘말려 자정(the self-cleanong action)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제가 순수한 자본주의라는 명분으로 실물 경제를 원초적이고 천박한 것으로 매도해 버린 까닭이다. 나는 버스 운전을 하면서 실물 경제의 행위 부분인 ‘근로’에 대하여 한국인들이 얼마나 비천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지를 알고 경악했다. 그러다 보니 하향식 사기로움(지도층으로부터 시작되어 국민 일반까지 사기와 협잡을 즐기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
한국의 우파 정치인이나 연장자들은 미국 경제와 같은 한국 경제를 지향하자고 하지만 이제는 한국 경제의 위상을 이념이나 미국 경제의 종속 변수로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한국 경제를 독립 변수로 생각할 때가 된 것이다. 좀 더 폭넓은 생각을 해보자면 미국 경제학의 흐름도 폴 크루먼 교수와 같은 개혁주의자의 등장으로 인하여 변화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 같다.
폴 크루그먼 교수를 좌파 경제학자라는 이도 있는데, 그건 옳지 않다. 한국처럼 미국도 순수한 경제의 발전에 관한 문제를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는 이가 많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나 자신은 장하준 교수나 폴 크루먼 교수의 저서를 많이 읽고 있지만 좌파 경제학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미래 지향적인 면모가 있어서 그렇다. 심지어는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를 자본주의 경제로 유도할 수 있는 실마리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는 정치인의 성향과 함께한다. 정치인이 극좌나 극우 또는 원리주의 성향을 갖는다면 그 나라의 경제는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편향된 사고는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고 미래지향적인 개선책을 내놓을 수 있는 지능을 억제한다. 소련의 공산주의, 일본의 극우주의가 그랬고 요즘 들어 중국이나 한국도 경제방식에 있어서 이념적인 농도가 짙어 지면서 파국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일단, 경제문제를 논함에 있어서 이념문제를 논하면 해결책은 저 바다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바다를 다른 방식으로 건너가서 성공했던 나라가 있다. 전 세계인들이 바쁜 시간에 영어공부를 하게 만든 영국이란 나라가 그렇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해상권을 차지하게 된 영국은 전 세계를 경제무대로 삼았는데, 그 때 발달한 실물 경제는 금융경제를 함께 일으켰다. 그러나 식민주의와 2차대전을 통해 성장하던 영국의 실물경제가 성장이 멈추자 금융경제 혼자서 뉘도 모를 한때를 아쉽게도 한들거리다가 영국경제는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대처 수상은 이런 현상을 아드리안 모올이란 사춘기 소년을 통해서 게으른 국민들 탓으로 돌리고 대처리즘(신자유주의사상)을 내놓았는데, 사태파악을 못한 탓에 영국경제는 아직도 그렇고 그렇다. - 그래도 미국 때문에 나는 아직도 영어공부에 목마르다 -
복지의 부작용이란 영국병 이야기가 나올 무렵에 영국에 아드리안 모올이란 사춘기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비밀일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에서 아드리안 모올의 아버지는 일정한 직업도 없이 공공근로를 나가고 이웃집 아저씨는 복지급여를 받으며 마약을 모올에게 권하고 있었다. 엄마는 다른 아저씨랑 사귀고 아빠는 다른 아주머니랑 사귀면서 아드리안 모올은 애 늙은이가 되어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처수상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 복지의 문제점을 이해하고 무기력한 국민들을 닦달하기 시작해서 나온 해결책이 대처리즘이다.
그런데 아드리안 모올의 집안 어른들이 막장인 것을 왜 영국민 모두가 댓가를 치루게 되었는지도 의문이며 정치지도자는 현장에서 그리고 서민생활에 몸 담아 봤어야 하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요즘 저서[ EDIBLE ECONOMICS ]에서 금융경제는 전적으로 실물경제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경제는 선진국을 모방하는 모방경제이자 선진국이나 외부경제의 종속변수였기 때문에 정치지도자가 서민 생활을 해 봤는지, 경제학이나 지리학 또는 세계사 공부를 해 봤는지는 별로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시야가 좁고 이념적인 지도자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되는 것 같다. 물론 피해는 국민의 몫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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