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서 동해안을 돌아다니다가 나곡해수욕장이란 앙증맞은
해변에 앉아 있었다. 정보기관 관련된 문제나 대통령에 관한 문제를 자주 거론하는 탓인지 어떤 계기가 있으면, 예를들면 국회를 방문한다든가 아니면
입장이 강력한 글을 쓴다든가 하면 어김없이 적대감이 없는 미행이 따라 붙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곡 해수욕장에서는 따라붙은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 고된 훈련으로 단련된 멋진 눈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접근을 했는데, 나를 두고
혼자 가버렸다. 훈련이 고된 사람들은 자아가 흔들리지 않는 눈을 가졌는데, 자신만 믿고 사는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를 철학적이고 올바르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념이나 종교에 순응하는
사람들때문에 머리 아픈적이 많았던것 같다. 한번은 스스로 통계까지 잡아본적이 있다. 도대체 분열적 행태로 대인관계를 갈등관계로 이끄는 사람들중에
속칭 '믿는 사람들'이 많은지 아니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문제삼아서 생각해봤는데, 학자들의 연구는 어떤지 몰라도 내 자신만의
통계로는 믿음을 구하는 사람들이 훨씬 불안한 행태를 보였던것 같다. 물론 그런 자신을 알기 때문에 믿음을 구하는것도 있을 것이다.
종교적인 믿음이 많은 대통령들은 불안한 자아를 보이기도 하고, 국정운영도 이상하게
산만해지는 성향이 있는데, 내 자신이랑 어떤 연관성이 있어도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기 보다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해리 설리반(Harry S, Sulivan 1892
-1949)은 정신질환을 병리학적인 문제가 아닌 삶속의 문제로 보았다. 설리반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어떤 욕구를 가지게 되고
그 욕구를 안전하게 충족해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안전과 위협을 느끼면서 안전감과 불안전감을 경험하고 이것이 성격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이때
형성된 불안전감은 나중에 대인관계에서도 부적응문제를 일으키고, 부적응을 벗어나기 위해 방어기제를 발동하게 되는데, 이 방어기제는 이중인격,
몽유병,잠꼬대, 건망증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뜬금없이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데, 도덕적인 정부라고 자화자찬하던 전직 대통령이 생각나서
한 번 실소했다.
설리반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명령이나 요구를 어겨서 불안전감을 경험하는 것보다 순응하여
안전감을 경험하는게 낫다는 아이의 계산은 나중에 참된 자아가 발달하는 것을 저해 시킨다고 말한다. 그래서 훗날 이 아이는 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많아 진다고 말한다. 또한 아이의 아버지가 권위적으로 아이를 대하게 되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비숫하게 생각하여 권위있는
아버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윗 사람을 대하게 된다는 말도 한다.
설리반의 연구는 믿음의 습관이란게 때로는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자아를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복종과 순응하는 자세는 산만한 분열적인 태도를 만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사람이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왜 고된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도 답이 나오는 일이다. 맹자의 말처럼 뼈를 깎는 고통과 굶주림을 겪어보지 않고는 자신을 가누기조차도 힘든 자아를 갖게 될
것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실정(失政)한 대통령보다 더 강한 그릇된 자아를 가지고 대통령을
움직였던 나쁜놈들 생각도 가끔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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