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시간조차도 힘들때가 있다. 오죽했으면 통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한국민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고 하고싶지 않은 말조차 하게되는듯 하다. 개방성과 역동성을 잃어버린 정지된 체제에 관점이
물려들어가는 어두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는듯 하다. 한국내에서 '종북'이라는 단어는 진짜 종북주의자가 있거나 아니면 정치적인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사용하던지 어두운 미래에 관점을 옭아매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관점이 물려들어가지 않는
'대칭세계'에 있는것이 다른 쪽의 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는데, 내 자신이 경험한 몇가지의 대칭세계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20여년전 목련이 질무렵에 이념이나 종교와 관련하여 '대칭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는데,
여태껏 피력했던 이념이나 종교의 부작용과는 달리 두가지 관념세계의 긍정적인 면을 본 적이 있었다. 나아가서 이념이나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성격이 왜곡되거나 상실되는 문제를 많이 고민했던것 같다.
당시 부친의 말기암으로 한 외국인 카톨릭 성직자분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잠시 지낸적이
있었다. 당시 종교는 없었고, 부친은 한반도의 이념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불운을 온몸으로 체험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부터
이념문제는 일찌감치 내 생각속의 많은 부분에 들어와 앉았던것 같다. 생각이 깊지 않은 시절에는 '생각이 자기에게 들어와 앉은 것이다'는
표현이 적절한듯 하다. 한 편으로는 부친의 일생을 통해서 한반도의 수많은 민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문제에 수동적으로 반응하기 보다는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내 인생의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는 것이라는 실용적인 계산을 하게된 계기도 되었던것 같다. 말하자면 부친의 수동적인
태도가 타산지석이 되었다는 표현이 적절할것 같다.
정신적이고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부친의 병상옆에서
중국의 홍군에 종군하면서 그 활동을 현지보도했던 미국의 여류평론가 아그네스스메들리의 저서 [Battle Hymn of China]를 잠도 안자고
밑줄을 쳐 가면서 읽고 있었다. 사상이 의심스러웠던 사람은 아니고 당시 신경림씨가 번역했던 책이 원주시내 헌책방에서 5000원짜리가 2500원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어서 골라온 책이었다. 뜻밖에 책의 내용에서 많은 역동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던것 같다.
고을을 둘러싼 주위에 널려 있는 보리밭에서 게릴라전의 연습을 하고있던
병사들이 서안으로부터 새로이 달려온 사람들을 보려고 잔뜩 모여들었다. 집단을 이루고 있는 홍군을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으므로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보아 온 많은 병정들은, 대게가 원기가 없어 보였고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들 병사들의 얼굴에는 저 위대한 노신(魯迅)의 얼굴에 뚜렷이 나타나 있던, 생기에 찬 경계심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밑줄쳤던 책의 내용중의 일부인데, 지금 다시보니 어두운 현실과 무기력감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각오를 다졌던 중국홍군과 당시의 내 기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념이 중요한게 아니라 변화를 갈망하는 생각과 행동의 에너지를
얻어서 또 한 번의 삶을 이어나가는데 도움을 주었던것 같다.
나는 세시간씩 수면을 취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병원장으로 계시던 성직자분은
세시간이하의 수면을 취하면서 무의무탁한 환자들과 입원환자들을 돌보고 있어, 한 편으로는 뭔가 지금 책에 담겨 있는 여걸(女傑) 아그네스스메들리의
발자취나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중국 홍군의 힘을 무색하게 하고 있었다. 종교적인 무욕(無慾)의 이타심을 직접 목격하고는 충격을 많이 받았던것
같다. 그 성직자분은 지금도 변함없이 아니면 더 활발하게 선교와 돌봄의 활동을 하고 계시는듯 한데, 기자들 인터뷰에도 잘 응하지 않으시는
분이라서 근황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같은 진정한 세속인과 진정한 종교인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시켜 주시는 분이기도 한것 같았다.
한 편으로는 종교적이고 이타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그 성직자분의 모습과 이념과 혁명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아그네스스메들리의 모습은 이념과 종교의 이유를 말없이 웅변해주는 긍정적인 모습이 틀림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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