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현미밥이 건강에 좋다고 많이들 찾는다. 하지만 옥같은 흰쌀로 지은 백미밥에 비하면 맛이 좋다고 할 수는 없겠다.
옛날사람들도 현미밥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군대에서 각기병 환자가 많았는데 현미밥을 먹이니 각기병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아냈으면서도 거친 맛 때문에 일반 백성들도 잡곡밥을 먹을 지언정 현미밥을 기피했다고 한다. 아마도 요즘처럼 압력솥이나 전기밥솥같은 취사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더 심했던 것 같다.
중국 한나라 무제때 공손홍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뜻은 크나 무식하다고 천대를 받다가 40에 공부를 시작했다. 나중에 재상까지 올랐는데 항상 검소해서 단벌 신사에, 현미밥을 먹어서 그 검소함이 더욱 빛났다고 한다.
남송의 대학자였던 주희(주자)는 성리학(性理學)을 만든 사람이다. 성리학은 사물의 본질인 성(性)과 이치인 이(理)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고려말에 들어와 조선의 통치원리가 된 학문이다. 이(理)와 대립되는 기(氣)의 개념을 가지고서 기를 어떻게 대우 하느냐에 따라서 주리론(主理論)자와 주기론(主氣論)자가 대립하여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로 나뉘고, 영남학파는 동인으로서 기호학파는 서인으로서 대립하고, 동인은 북인과 남인으로 대립하고, 북인은 소북과 대북으로 대립하고, 소북은 청소북과 탁소북으로 대립하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대립하고, 나중에 사도세자 죽음을 놓고 시파와 벽파로 대립하고,오늘날까지 좌파와 우파로 그 기상이 면면히~~~~덩기덕 쿵덕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주자가 유명해진 이후 그에게서 학문을 사사받겠다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어느 날 호갱님(호굉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주자는 검소해서 탈속반(현미밥)을 대접했는데, 이 호굉이란 자가 못먹을 걸 대접했다고 기분나쁜 얼굴로 떠났다. 하필이면 나중에 호굉이 어사가 되었는데 사사건건 주자를 잡고 늘어졌다. 주자학을 혹세무민이라고 모함하며 대역죄인으로서 목을 베어야 한다고 걸핏하면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주자는 성리학속에 안전장치를 해놨으니 바로 임금을 받들자는 충(忠)을 중시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다행히 귀양을 가서 객사했다고 한다.
선량하고 대의적인 목표와 동기가 사사로운 목표와 동기에 의해서 구축(驅逐)되는 현상을 자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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