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이념적 성격을 띄는 동료가 있었다. 학창시절 내내 고요한 내가슴에 말벌처럼 날아와 쏘고 가곤해서 감정적으로 그 동료의 반대적인 성향을 띄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생각해보건데 그 동료에게는 논리도 없고, 이성도 없었던것 같다. 오직 적개심만이 있었고, 가끔 자신의 감정을 반대편의 책임으로 뒤집어 씌우는 투사(projection)현상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료가 요즘 많이 힘들다. 적어도 상대가 옳다는 것은 알길이 없는데, 자신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의 내면을 굳건히 지켜왔던 믿음이 파괴되는 아픔을 느끼고 있는것 같았다.
미국의 인류학자 베이트슨은 '이중구속 이론'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스스로 해라."라는 말과 "너는 아직 어려서 안되."라는 상반된 구속성을 지닌 명령이 아이에게 혼란을 준다고 한다. 이것이 나중에는 정신분열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성장과정에서 정의, 민주주의, 도덕,심지어는 이념이나 종교등의 가르침을 가치관으로 정착시킨 국민이 성인이 되어 현실과 부딪히면서 느낀 세상의 진면모(眞面貌)는 좀 충격적임을 부정할 수 없는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그러나 자신이 그 '세상'을 형성해 나가는 주체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직도 국민들 마음속에는 자신들이 제대로된 민주주의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은것 같지 않다.
언젠가 내자신에게도 아주 신뢰성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기분이 나빴다는 것 보다도 대응방법에 있어서 골머리를 앓았는데, 정치집단, 정보기관, 종교등등 너무 많은 불신의요소들에 대해서 대응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를 힘들게 만들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많은 국민들이 '헷갈림'을 경험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다. 더불어 그 시간이 별로 생산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는것 같다.
이상과 현실이 접목될 수 있는 사회, 신뢰성 있는 사회는 발전과 번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