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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6일 목요일

투사(projection)

학창시절 한 종교단체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 당시( 항상 그렇지만) 어려운 환경에 있었는데 나를 평안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애쓰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켜보는 내내 궁금했던 점은 그 가운데서 가장 평안했던 사람은 사실상 내 자신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속에서 그런 현상을 많이 목격하는데 이타적인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유형무형의 자기욕심을 채워가는 심리나 분명히 문제의 근원은 나에게 있으면서도 쉽게 적대세력을 창조해내는 민첩함도 느껴진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이 한 몸 다바쳐 결국은 이념적 분란을 일으키는 정치행위, 어둡고 황량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정치나 종교적으로 자극(선동)을 받는 대중들에게서 자기방어기제인 '투사'의 장(場)을 보는것 같다.  

2012년 7월 24일 화요일

피히테

통계적으로나 느끼는 분위기나 한국적인 불안현상은 심해지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위정자의 탓도 아니다. 불안의 요인은 국민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고,위정자나 국민 각자는 희생자들중 한 명일 뿐이다.

고위층의 부패와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의 빈번한 발생은 국민 모두를 천천히 길들여 간다. 행복하게 살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때 뿐이다. 혹자는 늘어가는 자살률과 출산률의 감소가 그 불안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미래가 비전으로 자리잡지 않으면 어떤 창조적인 결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통해 나플레옹전쟁의 패배로 위축된 독일민족의 정신을 결집시켰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감각세계가 참다운 실제 세계로 여겨져 그것이 우선 교육의 객체로서 학생들에게 제시되었다.새로운 교육은 이 순서를 확실히 역전시킨다. 새로운 교육에 있어서는 사유에 의해서 파악된 세계만이 참다운 실제이다. 새로운 교육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정신만이 살아 있어서 그것을 지도하도록 해야만 한다. 나는 먼저 견실한 정신을 가지고 정연한 국가의 유일한 기반이 된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 정신을 모든 사람들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생겨나는 정신이야말로 고매한 조국애를 직접 나 자신에게 지니게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로부터 용감한 조국의 수호자로서 충실하게 법을 지키는 공민이 스스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 날 이후 독일의 국가주의 사상이 성장을 하게 되었지만 방황하는 독일 민족의 정신을 자리잡게 해 준것은 사실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에서  국가주의 사상의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늦게까지 떠나가는 이념을 아쉬운 심정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현실등을 볼때 피히테의 노력은 관심을 가져 볼만도 할 것 같다.

다음 세대에 한국에서 자리잡아야 할 사상은 '공동체주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주 조심스럽게........ 국가주의를 이야기 했으니 우파라고 매도 당할 것이고 공동체주의를 이야기 했으니 좌파라고 매도당할 어리석은 장소에서..........

2012년 7월 22일 일요일

무지(無知)는 성공의 어머니

역설적으로 표현을 해봤다. 인간은 모두 성공을 위해 달린다.돈을 위해 목숨 거는 사람, 돈에 눈이 먼 사람을 경멸 하면서 실상은 명예에 목숨을 건 사람, 명예에 목숨을 거는 사람을 경멸 하면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미래의 성공을 위해 성적향상에 바쁜 아이들.......

성공을 위한 역동적인 몸부림들을 하고 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한다. 그리고 자신의 잣대는 보편적인 추세에 매몰되어 간다. 우리들이 매일 보는 사람들, 사실은 그들의 평가가 무서운 것이다. 가끔 제대로된 신념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운 이유는 타인의 잣대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범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세상의 여러곳을 가능한 많이 알게 된다면 자신이 성공의 길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자신의 믿음이란게 얼마나 무지스러운 소행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배우면서 성장을 한다. 성장심에는 당연히 겸손함이 따른다. 내가 가진것을 저들은 못가졌지만 저들이 가진 것을 내가 못가졌음을 깨닫는 겸손함이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사람들의 보편적인 잣대에 홀려 정신줄을 놓고 사는 일이 많은데 영국의 평론가인 토마스칼라힐의 '스핑크스'라는 수필의 한 구절을 보면서 잠시 정신을 차려 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정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정의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 이 사실을 잊어 버린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성공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찾아오겠는가? 온 우주를 적대시 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이란 더 있을 수 없고, 있다면 하루 이틀 동안의 거짓성공이 있을 것이다. 나날이 높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멸망의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마차를 타고는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나다니며 보는 눈을 속일지라도, 세속적철학과 방편을 가지고 사교계의 윤리를 지키며, 의회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마음의 눈을 속이며 호강스럽게 돌아다니더라도, 그대는 그대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안다.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다.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아테네의 헌정(憲政)과 그리스의 통일

원래 그리스는 신기조산대의 지진이 많은 지형이고 평지보다 산이 많은 이유로 일찌감치 폴리스단위의 정치가 발달한것 같다. 한국에서 소백산맥이란 지형적인 요소가 오랫동안 호남과 영남의 통합에 큰 방해요인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아테네는 초기에 왕정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전제군주로서의 왕정이 아닌 고대의 족장적인 성격의 왕정이었던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곧 왕정이 쇠퇴하고 토지귀족의 권한이 강력해져서 왕을 포함한 9명의 행정집행관이 회의제형식의 정부형태로 통치를 하게된다. 이러한 정치형태는 귀족들의 강력한 계층지배에 공헌하는 결과가 되어 화폐경제는 발달하지만 채무노예가 급증하는 부작용을 낳아 아테네의 미래를 어둡게 하였다.

이때 솔론이 등장하여(기원전594년) 고리채를 정리하여 채무노예를 금하고 빈자(貧者)에게 억압적인 드라콘의 형법을 폐지하였으며 귀족과 평민의 입장을 절충하여 재산소유에 따라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금권정치를 시행하게된다. 그러나 솔론의 정책은 평민과 귀족이 모두 반대하여 실패를 하게되고 아테네는 큰 혼란에 휩싸인다.

솔론 사후 아테네의 혼란기에 페이시스트라투스라는 참주가 등장을 하고 기원전508년이 되어 클레이스테네스가 등장을 하여 참주의 등장을 막는 도편추방제를 실시하게 된다. 페이시스트라투스라는 참주가 등장을 하자 귀족세력은 참주에 의해 억압당하게 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참주가 아테네 민주정의 기본을 닦아놓은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는 참주마져 소멸시키는 도편추방제를 통하여 아테네의 민주정을 완성시키게 된다.

도편추방제는 그리스어로 오스트라키자인이라고 하는데 도자기를 뜻하는 오스트라콘에서 파생되었다. 자유민은 도자기나 사기파편으로 참주가 될 우려가 있는 사람을 투표하여 추방하는 비밀투표를 행하였는데 도편추방제는 아테네 민주정치를 수호하는 방파제가 되었던것 같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중앙집권화 되지 못한 이유로 민주정치의 발달을 이유로 드는 몇 십년전 책자들이 자주 눈에 뜨이기도 한다. 몇 십년전 한국의 시대상황이 저자들의 관점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의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된 근본요인은 그리스의 지형적인 요인이다. 개방된 평야에 자리잡아 역참제등을 통해 거대제국을 운영했던 페르시아나 로마 또는 몽골과는 달리 산악지방에 자리잡아 좋은 제도나 물산등을 교류하기 힘들었던 그리스의 처지로 보면 올림푸스제전이나 대페르시아전쟁같은 사건들은 나름 선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혁명의 성질

1688년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안개가 많고 차분한 날씨 탓인지 영국인들은 선동이나 폭동의 분위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왕은 존재하되 의회정치를 하는 입헌군주국의 결론을 '명예롭고' 합리적으로 정착시켰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밝은 태양과 열정적인 프랑스의 국민성은 선동과 분노로 비약하며 루이16세를 단두대서 처형시키고 만다. 정치범이 있다고 착각했던 바스티유 감옥습격도 근거없는 소문과 선동으로 이루어진 쾌거(?)였다.

선동과 분란을 만드는 근원은 날씨탓일수도 있고,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의 탓일수도 있고, 국가와 사회의 분위기 탓일수도 있다. 

2012년 7월 8일 일요일

꼴찌만세

미국의 어느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의 성적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교수님이 말했다. 여러분들중 꼴찌한 사람은 졸업하면 뭐라고 불릴까요?

학생들은 할 말이 많은듯 한데 입을 다물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교수님이 짧게 말했다.

"의사선생님"


2012년 7월 4일 수요일

럭스비누향기

고2때 선물로 받은 럭스비누를 2년내내 썼다. 우리학교는 남녀공학이자 남녀합반이었다. 원래 실업계고등학교에 인문과가 한 반이있어서 남녀학생들이 3년내내 바뀌지 않고 함께 올라갔다.  나는 2년내내 럭스비누를 썼고, 여학생들은 나에게 항상 럭스비누향기가 난다고 했다. 어떤 여학생의 표현을 빌어 표현하자면, 봄이면 꽃의 향기로, 여름이면 신록의 향기로, 가을이면 낙엽의 향기로, 겨울이면 난로옆의 훈훈한 바람과 함께 럭스비누향기가 나의 상징이 되었던것 같다.

럭스비누가 얼마나 향기가 진했는지 육이오후에 지리산에서 빨치산토벌을 하던 국군이 영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럭스비누를 썼는데, 나중에 빨치산수기를보니 비누향기때문에 역추적을 받아서 거꾸로 기습당한 사례가 많았다.

똑같은 향기지만 상황에따라 사용하는 느낌이 다르다. 지금은 싱그러운 청춘의 럭스비누향기처럼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어떤 상처받은 블러거의  "아이 귀엽고, 어른 드럽다."는 표현처럼 비누향기조차도 죽일상대를 찾아내는 도구처럼 사용되는 세상에서 살고있다. 

요즘은 럭스비누를 찾아도 없더니 얼마전 차를 몰고 지나가다 커피를 사려고 시골마트에 들렸는데, 뽀얗게 먼지를 묻힌 럭스비누가 있어 옛추억을 생각하며 몇개샀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무지개를 보며)

                                           William Wordsworth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
So was it when my life begain,
So is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i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내 마음도 뛴다.
나 어려서 그러했던것 처럼
늙어서 죽는날까지
그러하게 하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기도하건데 나의 하루 하루가
천생의 경건함으로
가슴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