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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4일 토요일

지리와 이념

어렸을 때 나의 부친은 강원도에서 광석을 운송하는 트럭운수업을 하였다. 우리 가족들은 산골에 갇혀있는 것을 매우 갑갑해했다. 나는 기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설랬다.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기차 같았다.

 

트럭운송비를 어음으로 받은 부친은 서울에서 어음을 할인하고(현금으로 바꾸고) 새벽 기차로 오곤 했다. 어느 날은 부친이 밀크 캬라맬 선물 세트와 한반도 정밀지도의 브로마이드판을 가지고 왔다. 딱히 시골에서 놀거리가 없었던 나는 한반도 지도를 수없이 반복해 보았다. 훗날 인문 사회는 지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았다.

 

어느 날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자주 연회를 열던 섬이 어딘지 찾다가 그곳은 섬이 아닌 함경남도 원산의 시중호 기차역 가까운 해변인 곳도 알게 되었다. 보안상 누구나 눈을 가리고 배를 타고 갔기 때문에 섬 인줄 알았던 것이다. 이렇게 지리는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한국은 경상도와 전라도가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피로 나뉘는 분위기가 있었다. 여태 그래왔지만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평야가 많은 전라도는 지주와 소작이 나뉘는 벼농사가 활발했다. 다수인 소작농가의 계급의식이 발생하기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저수지나 두레등의 협동을 필요로하는 벼농사는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심어 주기도 한다.

 

반면에 경상도는 산악지대가 많아서 밭농사와 자영농업이 활발하다. 공동체 의식 보다는 개인주의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특성이 다른 경상도와 전라도가 소백산맥으로 나뉘어져서 교류하기 힘든 여건이 있었다. 고대로부터 백제와 신라로 나뉜 것은 교류하기 힘든 지형 탓이다. 때문에 한반도는 작은 영토에서 지역적 특성이 너무 뚜렷하였다.

 

북한은 백두산의 화산이 분출하여 개마고원이라는 용암대지를 형성했듯이 신생대 지층이 많다. 오래된 고생대 지층에서는 석회석과 무연탄과 같이 압축되어 눌려진 딱딱한 지하자원이 많고, 오래되지 않아 표면에 있는 지층인 신생대 지층에서는 갈탄이나 석유같은 무른 지하자원이 많다. 아오지 탄광에서 갈탄을 많이 생산한 것은 두만강 유역이 신생대 지층이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는 북한이 고향이다, 부친은 통천이고 모친은 함흥 근처의 정평이다. 그래서 나는 북한이 다른 나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무른 갈탄은 화력이 갑작스럽고 좋아서 난로에 넣으면 난로가 녹을 정도였다고 나의 부친이 말했다.

 

북한은 내륙성 기후가 심해서 겨울이 많이 춥고 여름이 짧다. 게다가 평야가 적은 탓에 오랫동안 만성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기질은 유목민족의 기질과 같다. 안정과 행복에 대한 갈망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냥 강인하다. 때로는 이렇게 견디는 힘이 변화를 막는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한반도는 구릉지가 많고, 하천이 짧다. 그 하천들은 경사진 국토를 급하게 흐르기 때문에 수운이 발달할 수 없다. 게다가 4계절이 뚜렷한 한반도는 물이 많을 때와 적을 때의 비율인 하상계수가 크다. 그래서 하상계수가 작은 미시시피강에서 증기선을 타고 가는 허클베리핀을 보기가 힘들다.

 

미국 국무부에서는 지리학의 명저인 Harm de Blij교수의 [WHY GEOGRAPHY MATTERS]를 외교관 필독서로 추천한다고 한다. 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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