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카니스탄에서 정권을 잡은 탈레반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로 경직된 체제가 실용주의를 통한 경제개발을 이루기는 어렵다. 북한, 일본, 중국은 경직된 이념적, 종교적 의식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극복을 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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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회는 국민의 의식 속에 좀 더 평등하고 합리적인 생각이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여성에 대한 인권 등은 합리적인 능력을 끌어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극우나 극좌 이데올로기나 강성종교의 이면에는 다른 의식이 숨어있다. 희소가치를 향한 극도의 경쟁이나 사회적 불만의식, 심지어는 신체적, 정신적인 불만이 내재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전통과 관습, 심지어는 습관의 영향도 크다.
한국에서는 정치인들이 바꿔야 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작 본인의 의식이나 행동은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냥 희소한 가치인 권력을 갖고 싶다는 의미다. 국가와 사회의 본심을 제대로 이해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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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과거 한국의 경제개발 초기에 과학주의와 기술주의를 표방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명했다. 그리고 훗날 인권과 평등을 챙길려고 노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현명했다. 당시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실용주의란 그런 것이다. 한국은 실용주의의 혜택을 본 것이다.
새로운 아프카니스탄 정부는 종교적 부루카로 감싸져 있는 의식세계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 인권의식, 평등의식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경제발전의 동력을 얻어내기가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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