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시대와 일본 통치기를 겪은 한국에서 시민의식은 쉽게 성장하지 않았다. 대국적으로 생각하면 박정희 군사정부의 탄생과 그에 맞선 민주화 운동 세력은 한국 역사에서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아직 완전히 제도화 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국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새벽마다 앞산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던 새마을 노래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장기적인 집권과 권력자의 노화(老化 / aging)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국가가 흔들리고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도 잊지 못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장기적인 집권을 하며 강력한 법률이란 제도를 통하여 시민의식을 성장 시켰다. 박정희 정부와 다른 점은 권위라는 것이 개인의 카리스마나 무력을 통하여 발생하게 하지 않고 영국 변호사 출신답게 제도(그 중에 특히 법률)에 그 역할을 맡기고 집권자는 철저하게 공리성(共利性 / the public interest)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싱가포르의 법이 강력하다.
나는 일본군이 점령한 3년 반 동안 그 어느 대학에서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때 나는 아직 마오쩌뚱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모르고 있었지만, 일본군의 야수성과 무력을 체험하며 과연 무엇이 상전과 하인을 결정짓고 무엇이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고 더 나아가 충성하게 만드는지 확실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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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의 마지막 단계는 일본인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과 지배권을 현지인들이 자연의 섭리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 성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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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꺾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았다. 중국, 포루투갈, 네덜란드, 일본인에게 차례로 지배당한 바 있는 대만은 이민족 상전들에게 별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또한 만약 일본이 싱가포르와 말라야를 계속 지배했다면 아마 50년 안에 그들은 대만에서 했던 것처럼 식민화에 성공했을 것이다.
- [ The Singapore Story] by Lee Kuan Yew -
생각해보면 청년기부터 일터 등에서 발생하는 권위주의적인 행태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한국의 구세대들은 자신도 모르게 군사정권의 모방의식을 간직한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그만큼의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리콴유 총리가 대단한 이유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제도를 통하여 시민의식을 성장하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갑작스러운 민주화가 기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아쉬운 면이 있다. 자존심이 강하고 일본 통치에 대한 저항심을 꽤 오래 간직하고 있지만 내가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느낀 점인데, 강력한 통치에 길들여지는 사람들이 꽤 많을 수 있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 국민들은 수직적 권력관계의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두고두고 시민의식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검찰등을 비롯한 권위의 잔재가 꽤 오래 간다는 점을 보면 특히 그렇다.
신세대인 김정은 위원장은 ‘나쁜 점’이 학습되지 않은 이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개혁을 한다면 싱가포르 모델이 최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먼저 법률(특히 상법과 세법)을 비롯한 제도적인 개혁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끔 한국에서 공리적이지 못한 지도자들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굳건하게 다져진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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