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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Singapore and North Korea(2) / Institutionalization

In Korea, which experienced the Choseon Dynasty and Japanese rule, civic consciousness did not grow easily. In a broad sense, the birth of the Park Chung-hee military government and the pro-democracy movement against it were inevitable.

 

When I was young, Korean society was not completely institutionalized yet. At that time,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played the song of the Saemaul Undong(a campaign to create a new town) on its speakers every morning to awaken the people’s consciousness. I can’t forget those days. And soon after, the nation was shaken by the fatigue of long-term rule and the aging of its leader. And I can’t forget that the pro-democracy movement took place to correct the situation.

 

Singapore’s Prime Minister Lee Kuan Yew has long-term power, and has grown people’s citizenship through a system called strong legislation. Prime Minister Lee Kuan Yew did not let authority arise from force and personal charisma like President Park Chung-hee did. As British lawyer, he left the role to the system (especially the law), and he pursued the public interest thoroughly. Therefore, Singapore’s law is strong.

 

I saw and learned more than any other university during the three and a half years of Japanese occupation of Singapore. At that time I still didn’t understand Mao Zedong saying that power comes from the gun. However, experiencing the brutality and force of the Japanese army, I witnessed for sure what determined the superior and the servant, what made them obey and even more loyal.

 

-omission -

 

The final stage of colonization is to allow locals to accept the ethnic superiority and domination of the Japanese as a natural course of nature. If Japan had time to spare, it would have succeeded.

 

-omission -

 

However, there were exceptions. Koreans have not stopped resisting since Japan began to rule. Japan tried to destroy Korean customs, culture, and language, but Koreans protested against barbaric oppressors with firm determination. Japan has killed countless Koreans, but has never defeated their souls.

 

However, it was rare for Koreans. Taiwan, which had been ruled by China, Portugal, the Netherlands and Japan in turn, did not resist them much. And if Japan continued to dominate Singapore and Malaya, they would probably have succeeded in colonizing it as they did in Taiwan in 50 years.

 

- [ The Singapore Story] by Lee Kuan Yew -

Double translation

 

When I think about it, I hated the sense of authority that occurred in the workplace from my youth. The older generations of Korea were unwittingly imitating the military government’s leader. Everyone wanted to be a king of some degree. Prime Minister Lee Kuan Yew has developed a sense of civic consciousness through the system for Singaporeans, which is to be praised.

 

It would be hard to expect sudden democratization in North Korea. North Korea has a strong sense of pride and negative feelings toward Japan for quite some time. As I have felt in South Korea for quite a long time, there will be many people in North Korea who who are tamed by strong government. Such people can interfere with the growth of civic consciousness because their views are vertical and powerful. This is especially true given the fact that the vestiges of authority, including the prosecution, last for quite a long time in Korea.

 

Chairman Kim Jung-un the new generation, may have the advantage of not learning the ‘bad things’ of the old generation. If North Korea reforms, I think the Singapore model is the best. First of all, the North Korea should focus on reforming the system, including laws(especially commercial laws and tax laws). The reason why the nation continues to be healthy despite the occasional collapse of unreasonable leaders in Korea may be because of the solidly established system.  

싱가포르와 북한(2) / 제도화

조선왕조 시대와 일본 통치기를 겪은 한국에서 시민의식은 쉽게 성장하지 않았다. 대국적으로 생각하면 박정희 군사정부의 탄생과 그에 맞선 민주화 운동 세력은 한국 역사에서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아직 완전히 제도화 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국민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새벽마다 앞산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던 새마을 노래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장기적인 집권과 권력자의 노화(老化 / aging)로 인한 피로감 때문에 국가가 흔들리고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것도 잊지 못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장기적인 집권을 하며 강력한 법률이란 제도를 통하여 시민의식을 성장 시켰다. 박정희 정부와 다른 점은 권위라는 것이 개인의 카리스마나 무력을 통하여 발생하게 하지 않고 영국 변호사 출신답게 제도(그 중에 특히 법률)에 그 역할을 맡기고 집권자는 철저하게 공리성(共利性 / the public interest)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싱가포르의 법이 강력하다.

 

나는 일본군이 점령한 3년 반 동안 그 어느 대학에서보다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그때 나는 아직 마오쩌뚱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모르고 있었지만, 일본군의 야수성과 무력을 체험하며 과연 무엇이 상전과 하인을 결정짓고 무엇이 사람들을 복종하게 하고 더 나아가 충성하게 만드는지 확실히 목격했다.

 

- 중략 -

 

식민화의 마지막 단계는 일본인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과 지배권을 현지인들이 자연의 섭리로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만약 일본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아마 성공했을 것이다.

 

- 중략 -

 

그러나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꺾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과 같은 경우는 흔치 않았다. 중국, 포루투갈, 네덜란드, 일본인에게 차례로 지배당한 바 있는 대만은 이민족 상전들에게 별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또한 만약 일본이 싱가포르와 말라야를 계속 지배했다면 아마 50년 안에 그들은 대만에서 했던 것처럼 식민화에 성공했을 것이다.

 

- [ The Singapore Story] by Lee Kuan Yew -

 

생각해보면 청년기부터 일터 등에서 발생하는 권위주의적인 행태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한국의 구세대들은 자신도 모르게 군사정권의 모방의식을 간직한 까닭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나 그만큼의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리콴유 총리가 대단한 이유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제도를 통하여 시민의식을 성장하게 해 주었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갑작스러운 민주화가 기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아쉬운 면이 있다. 자존심이 강하고 일본 통치에 대한 저항심을 꽤 오래 간직하고 있지만 내가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느낀 점인데, 강력한 통치에 길들여지는 사람들이 꽤 많을 수 있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 국민들은 수직적 권력관계의 관점을 가지기 때문에 두고두고 시민의식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한국에서 검찰등을 비롯한 권위의 잔재가 꽤 오래 간다는 점을 보면 특히 그렇다.

 

신세대인 김정은 위원장은 나쁜 점이 학습되지 않은 이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개혁을 한다면 싱가포르 모델이 최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먼저 법률(특히 상법과 세법)을 비롯한 제도적인 개혁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끔 한국에서 공리적이지 못한 지도자들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굳건하게 다져진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20년 12월 23일 수요일

Singapore and North Korea /Fourth industry

http://www.economywatch.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9

 

Shortly before the Windows System came out, a relative who was majoring in computer science was learning IT hard using DOS language. I wanted to have a computer while playing Tetris game with my relative’s computer. But I consoled myself that I would be able to enjoy a much better computer life if I waited a little longer. Soon after, the Windows system came out and the Windows system evolved rapidly. At the university, professors who had been talking only about COBOL or FORTRAN for a very long time were attracted to new IT technology.


Developed countries develop new technologies and transfer existing technologies to later countries to prompt the development of the entire human race. There, it was natural that the pace of economic development would be faster than that of advanced countries if undeveloped or developing countries made a little effort. This is why some predict that North Korea, which has many smartphone users compared to its economic level, will be able to succeed if it is immersed in the fourth industry.

  

If there is an agricultural base or a secondary industry base, it may be detrimental to national development. The reason why the development of many underdeveloped countries has stagnated is because agriculture and mining play a minimal role. It is because they do not devote their capabilities to developing human resources, including the knowledge industry. Korea and Singapore have overcome these bad conditions well. The same is true of Japan, but it is different that modernization began early in Japan.

 

Singapore had a prominent leader, Lee Kuan Yew. Prime Minister Lee Kuan Yew seems to have learned strategies to govern Singapore by doing various things to survive under Japanese rule in the past or studying in Britain. Prime Minister Lee Kuan Yew’s ability to get the necessary ideas from many experiences seems outstanding. Intuition seems to come from experience.  

  

At that time, I thought that wealth of a country was simply determined by the size of its territory and natural conditions, such as oil and gas, and the rich soil suitable for agriculture and forestry. But a few years after I came to power, I realized that although Singaporeans lived in Singapore the same way, they had different incomes for different ethnic groups and differences existed within the same ethnic group. I have introduced various policies to eliminate this inequality, but the result has been the same.


In the end, I had to conclude that the innate ability, level of education and training of human individual were the most powerful factors in determining the size of wealth.

 

- [FROM THIRD WORLD TO FIRST] BY LEE KUAN YEW -

(Double translation)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싱가포르와 북한 / 4차산업

http://www.economywatch.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9

WINDOW 시스템이 나오기 직전에 전산학과를 다니던 친척이 컴퓨터를 마련하여 DOS 언어를 사용하여 열심히 IT학습을 하고 있었다. 테트리스게임을 하며 컴퓨터를 갖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좀 기다리면 훨씬 발전된 형태의 컴퓨터생활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기다렸다. 얼마 후 WINDOW 시스템이 나오고 WINDOW 시스템은 빠르게 진화해갔다. 대학에선 아주 오랫동안 COBOLFORTRAN 이야기만 하던 교수님들이 새로운 IT기술에 끌려 다니고 있었다.

 

선진국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기존의 기술은 후발국가에 넘겨주면서 인류 전체의 발전을 도모하기도 한다. 그러니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조금만 노력하면 경제개발의 속도가 선진국에 비해서 빨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경제수준에 비해서 스마트폰 사용자가 많은 북한은 4차 산업에 몰입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업기반이 있거나 2차 산업의 기반이 있으면 오히려 국가발전의 독이 되는 경우가 있다. 많은 후진국의 경제가 정체되어 있는 이유는 농업과 광업이 최소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사적으로 지식산업을 비롯한 인적개발에 역량을 쏟아 붓지 못하는 까닭이다. 이런 나쁜 조건을 잘 극복한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과 싱가포르다. 일본도 그렇지만 일본의 근대화는 일찍 시작되었음이 다르다.

 

싱가포르는 리콴유(이광요)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다. 리콴유 총리는 일본 통치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영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싱가포르를 통치하기 위한 전략을 학습해 온 것 같다. 많은 경험 속에서 필요한 생각들을 얻어내는 리콴유 총리의 능력이 출중하게 생각 되었다. 직관은 경험속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당시 나는 부(/rich)라는 것이 단순히 한 나라가 소유한 영토의 크기 그리고 농업이나 임업에 알맞은 비옥한 토양이나 풍부한 강수량, 또는 석유나 가스와 같은 지하자원 등의 천연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집권하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똑같이 싱가포르에 살면서도 각 민족 계층마다 수입이 다르고 같은 민족내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도입해 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는 부의 크기를 결정하는 데에는 인간 개개인의 선천적인 역량과 교육 수준 그리고 훈련이 가장 강력히 작용한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부의 창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로 지식과 기술이었다.

 

- [THE SINGAPORE STORY] by LEE KUAN YEW -

 

2020년 12월 9일 수요일

Prosecution and Responsibility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A%B2%80%EC%B0%B0%EA%B0%9C%ED%98%81


Deng Dal, who was studying law hard to become a prosecutor, lost his book. The police man looked for the book and said to Deng Dahl. Is this your chegimgam(Korean Language of Responsibility)?

 

Humor.

 

If there is an ideological confrontation in society, those who want to have power should try to neutralize it as much as possible. If they take power by using ideological confrontation because they are in a hurry, a relatively strong hostile group will be created. In fact, it’s hard to come to power in such shallow ways now. He will have to find a policy request with responsibility.

 

One day on a snowy morning, I was driving a packed bus to downtown Seoul, and I was afraid and at staked. I never felt as specific a sense of responsibility as I did in my life. I thought then. “I just had to study calmly. So I should have lived in an abstract sense of responsibility.”

 

I took the first bar exam once in my youth. Cultural history and economics and criminal law far exceeded the passing mark. I thought I would pass quickly if I study in earnest. However, there was no passion for the course after passing the exam. At that time, a former prosecutor who won the first place in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entrance exam and the first place in the bar exam was in the spotlight as the crown prince of the Fifth Republic. His eyes were fierce and sharp, but I thought he had crooked ambitions as a second-class servant of the military government. One day he attacked the leader of the opposition party fiercely. Then my naive friend sarcastic him. “He think he’ll be in the same league with the opposition leader if he does that?”

 

It would be difficult for the people who have long studied only professional fields and worked only in professional fields to objectify themselves.

 

These days, when reform of the prosecution is becoming an issue, politicians and people around them from the prosecution often assure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senior and junior prosecutors. It proves that the prosecution is an inner circle. They seem to be constantly stuck in their own world because their responsibilities have never been tested as much as bus drivers. Sometimes they try to use ideology to find a political breakthrough. But the outside world seems to change quickly. 

2020년 12월 8일 화요일

검찰과 책임감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A%B2%80%EC%B0%B0%EA%B0%9C%ED%98%81


검사가 되고자 열심히 법률공부를 하던 덩달이가 책을 잃어 버렸다. 경찰아저씨가 책을 찾아 주면서 덩달이에게 말했다. “이게 자네 책임감?”

 

유머다.

 

사회에 이념 대립이 있으면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들은 가능한 이념대립을 중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당장 급하다고 이념 대립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게 되면(이젠 그러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매우 강렬한 적대적 패거리가 만들어진다. 책임감을 가지고 필요한 정책요구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눈오는 날 아침에 만원버스를 운전하며 서울시내로 내 달리고 있었는데, 마음이 위태로웠다. 살면서 그만큼 구체적인 책임감이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냥 얌전히 공부해서 추상적인 책임감속에서 적절히 어우러져 살 걸하는 생각이 났다.

 

청년기에 사법시험(1)을 시험 삼아 한 번 보았다. 문화사와 경제학, 형법이 커트라인을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공부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도무지 합격후의 진로에 대한 열정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 대학입학도 수석을 하고 사법시험도 수석합격을 한 검사출신의 인재가 5공 황태자로서 각광받고 있었다. 서슬이 퍼런 눈매는 형형했지만 군사정부의 2류 로서 왜곡된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야당 당수를 심하게 공격하니 순진한 내 친구가 저러면 자기가 야당 당수와 동급이 되는 줄 안다고 비꼬았다.

 

오랫동안 전문적인 분야만 공부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일 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객관화 시켜보기는 힘든 것 같다.

 

검찰 개혁이 이슈화되는 이때에 종종 검찰 출신 정치인이나 주변인물들이 검사 선후배 관계의 돈독함을 확신시켜 준다. 검찰이 내집단이라는 것을 꾸준히 확신시켜주고 있었다. 버스기사만큼의 책임감도 시험당할 곳이 없어서 그런지 꾸준히 자기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간혹 이념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돌파구를 찾을려는 노력도 한다. 그런데 바깥세상은 빨리 변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