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에 부탄의 국왕이 "나는 GDP가 아닌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기준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고 선언했고 부탄은 실제로 국민이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국명이 비숫하게 발음되는 북한은 비숫한 GDP를 가지고 국민이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되었다. 인간에 가치를 둔 국가와 이념에 가치를 둔 국가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활력이라는게 속도로 해결되는 것이가를 오랫동안 살펴보았는데, 그게 아닌듯 하다.
한국에서는 근로자들이 어느 정도의 임금을 받고서 노동생산성은 저조한데, 속도에 시달리고 있는 현장을 많이 보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명분으로 인생의 모든 여력을 갈아넣고 있었다. 많은 임금과 적은 노동시간으로 국가브랜드 1위를 달성한 독일은 기술이 발달하여 "외계인을
갈아넣었다"는 익살스런 오해도 받는다. 나찌시절과 같은 많은 진통을 겪으면서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를 만든 결과일 것이다.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속도는 한계가 있다. 한번은 수영과 스케이트같은 운동을
통하여 실험을 해봤다. 그러니까 천천히 하는 훈련을 해봤다는 것이다. 생각하고 보완할 여력이 있었다. 언젠가 한국빙상장에서 중국국가대표선수들이
훈련을 왔다가 느리고 보지못한 기술을 구사하는 내모습을 보고 넋이 빠지게 쳐다보던 생각이 난다. 원래 느리지만 근대화의 요구에 시달린 이후
느린것이 신기해진 중국의 생각을 읽는것 같았다.
한편으로 마음 아픈 일은 북한이나 한국이 주변정세로 인하여 빠른 근대화의 요구를 강요당한
일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념에 매몰되어 가면서 인간을 소홀하게 생각한 일들이 결국에는 경제성장의 하락, 경제성장률의 감소, 인구감소로 귀착될
것이라는 예상은 들어맞았다. 일본도 지나친 국가주의나 단체주의 사상이 인간의 가치를 대신하여 "나쁜 이념'으로 자리잡은 결과 이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느리다는 것은 게으르다는 것이 아니다. 여유있게 효율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효율성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가끔 늙어서 죽을 날만 남은 사람들이 속도를 외치면서 성마른 얼굴로 허덕거리는 것을 보면 어떤
사람이나 시간과 욕망의 노예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유를 찾지 못하면 타인에게 이용당한다. 독재권력이 생기는 이유중의 하나가 단기적
욕망에 구속된 사람들 때문이다. 평등을 구실삼아 독재권력밑에서 허덕이고, 영생을 구실삼아 종교적 억압에서 신음하고, 심지어는 한국에서 경제성장을
구실삼아 이상한 인간이 권력을 잡는 일도 있었다.
지난 몇년동안 한국의 근로현장을 보면서 북한과 상당히 유사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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