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금융위기를 겪을 무렵 내 자신도 가장 패기 넘치던 시절을 가장 암울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가운데 빛이 있었다. 그 전에 한때 남파공작원을 할 뻔 하다 북파공작원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부친은 지나친
정직함과 정(靜)적인 태도로 운수업을 하다가 실패를 하고 가족은 뿔뿔히 흩어져 온갖 비극을 맛보았다. 미군 비행장을 건설하는데, 다른 자동차
소유주들은 미군으로부터 연료를 필요량 이상으로 배급받아 남은 연료를 암시장에 내놓곤 했는데, 나의 부친은 남들이 다 하는 그런일 조차 하지 않아
주변 자동차소유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곤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유연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수단좋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부친은 끝까지 침묵으로
일관했고, 그 가운데 간간히 깊은 마음씀씀이를 보여주곤 했다. 그러던 부친이 세상을 등지고 꼭꼭 숨어버렸다.
어느 날 부친이 큰 병이 났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할 일은 치료보다 옆에 있어주는 것
뿐이었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안고 떠나는 부친옆에 있으면서 문명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서 뭐 할게 없을까 고민하던중 6개월동안
일본공작원훈련학교인 나까노학교의 훈련 프로그램을 본따 자기단련을 하고,무예에 관한 책 100여권을 읽으면서 느린 검도와 느린 무예훈련을 했는데,
짧은 시간에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는지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문명세계로 내려올쯤 두리뭉실하던 신체가 체중이 20여킬로가 빠지고 정신이 모아져
시력이 좋아지고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부친이 마지막으로 다녔던 병원은 독일인 수녀가 운영하던 병원이었는데, 부친의 옆에서 잠을
못자고 책을 읽으면서 원장수녀가 잠을 못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인간이 이타적인 마음을 지니면 저렇게 잠을 못자도 평화로운 모습을
지닐 수 있다는데 감동 받았다. 몇년동안 그 분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카톨릭교회에서 영세도 받았는데, 결국
세속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얕은 욕망들과 싸우느라 지금까지도 분주하기만 했던것 같다.
당시 나름 깊은 철학적 사고를 한다고 하는 나에게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접근을 했는데,
대게 종교란 명분으로 욕망이 적절하게 합체된 변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는 카톨릭교회도 냉담하고 종교랑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던것
같다. 간간히 무술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크리스찬이라고 엇갈고 크리스찬들에게는 나는 무술인이라고 엇갈았는데, 그냥 공학(工學/
engineering)을 공부하고 싶었다. 종교적 도덕이란 명분으로 이상하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던 탓에 차라리 공학적 몰입으로 인한
부작위(nonintentional)가 최소한의 도덕적 가치를 지킬 수 있겠다 싶었다. 훗날 대통령들을 보면서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다.
도덕성이 결여된 종교는 그냥 욕망의 또 다른 배출구였을 뿐이었던 것 같다.
한 번은 순진한 크리스찬인 친구가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동성애 반대운동을 하고 있으며
그 문제에 관한 입장좀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말하고 싶긴하나 말해서는 안될 것 같은 말을 지금 하고자 한다. 대게 어떤 논제에 집중을 하는
것은 그 집단이나 개인의 관심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실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으면 그 사람과 대화를 많이 해보면 그
사람의 대화중에 자주 나오는 화제가 있는데, 그것이 그 사람의 관심사인 것이다. 나 자신은 별로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할 일이 많아서
비도덕적인 일을 별로 하지 못하고 있음은 내 관심사 탓일 것이다. 왜 하필이면 동성애에 그렇게 집중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전에 어떤
교회를 가본적이 있는데, 그 교회는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의 관계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훌륭한 가정, 순수한 사랑이라는 표현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동성애에 관심이 집중되는것도 무리가 아닌듯 싶었다.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반한 것이 동성애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가치가 국가적 가치로 비화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다.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 극도로 혐오하는 면이 있는데, 첫째 정권을 잡기위해 북파공작원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했는데, 북파공작원을 폭력성을 가진 단체로
매도하고, 그 위세를 이용한 점에 있어서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자신의 종교적 가치가 반공이라는 것을 비화시켜
통일작업이나 남북협력의 길을 막아버린 점, 셋째, 크리스찬임을 내세우면서도 보편적으로 비도덕적이었던 점, 넷째, 국정원등의 국가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정부기관을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서 대국민 공작정치에 사용했던 점등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서 옳지 않은 점이 있음을 일찍이
파악하고 막을려고 했는데, 내 역량의 부족으로 막지 못한 점이 아쉽기만 하다.
다음은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수 마이클 센델(Michael J.
Sandel)의 [WHY MORALITY]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편 민주당은 공화당의 도덕적 성향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도덕적 판단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미덕의 정치에 저항했다. 공화당이 낙태를 금지하고 동성애자의 권리를 부인하고 교내기도를 장려할 때, 자유주의
진영은 정부가 도덕을 법률화하거나 국민의 도덕성에 관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국가통치술이 영혼통치술로 전환되는 곳에 강압정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강요해서는 안 되며, 모두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물론 마이클 센델은 현실적으로 정부가 도덕문제에 중립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연설명하고 있지만 보편적인 도덕이 아닌 독선과 아집으로 왜곡된 편향적인 도덕에 대해서는 공권력을 움직이는 힘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구나 부정부패의 수단으로서 종교적 도덕이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훨씬 큰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종교적이고 부분적인 도덕을
내세워 국가공동체에 위해를 가함은 그 종교단체에도 자해(self-injury)적 결과가 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난 날은 습관과 잘못된
판단으로 엄청난 결과를 보았지만 미래에도 이런 문제가 다시 발생한다면 국가적 자멸에 이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도덕적
오류를 한국도 가져서는 안되는 일이다.